▲ 정기훈 기자

이달 1일 임기를 시작한 김상구(46·사진) 금속노조 위원장은 기아자동차 출신이다. 덩치가 큰 완성차 노조들이 2006년 산별노조로 조직형태를 변경한 뒤 줄곧 금속노조 위원장은 현대차 출신이 도맡아 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김 위원장의 당선은 일종의 이변이다. 이번 선거가 경선이 아닌 단독선거로 치러졌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례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기아차 출신이 위원장에 당선됐다기보다는 현대차 출신이 선거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겠죠. 금속노조 위원장보다 (완성차) 지부장이 메리트가 크다는 뜻일 겁니다.”

생각보다 솔직한 답변이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단독선거로 싱겁게 끝난 금속노조 선거와 달리 기아차지부 임원선거는 현재 4파전으로 진행 중이다. 현대차지부도 다음달 치러질 임원선거를 앞두고 예비후보자 간 합종연횡이 한창이다. 노동계 안에서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정파들이 완성차 선거에 몰빵하려고 금속노조 선거를 버렸다”는 논평 아닌 논평을 내놓기도 한다.

금속노조 얘기를 좀 더 해 보자. 1997년 현대그룹노조총연합과 전국민주금속노조연맹·전국자동차노조연맹 등 3개 조직이 통합해 통합 금속연맹을 결성하고, 2001년 조합원 3만명 규모의 ‘꼬마 금속노조’가 출범했다. 금속연맹과 금속노조는 2006년 겨울 금속산별 완성대의원대회를 거쳐 조합원 15만명 규모의 국내 최대 산별노조로 재탄생했다. 우리나라 산별노조운동의 빛나는 족적이다.

꼬마 금속노조로부터 15년, 완성 금속노조로부터 8년여가 흘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선수는 완성차 선거에 나가고, 금속노조 선거에는 2진이 나간다”는 암묵적인 룰이 보이지는 않지만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금속노조가 ‘무늬만 산별노조’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이런 현실 때문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4일 오전 서울 정동 금속노조 사무실에서 김상구 위원장을 만났다. “기아차 출신 금속노조 위원장이 과연 현대차지부를 컨트롤할 수 있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현대차지부를 컨트롤 못하고요. 할 수도 없습니다. 제가 앞으로 2년간 해야 할 일은 공조직 대표로서 조합원들과 꾸준하게 소통하고, 조직적 결정에 충실히 복무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수중에 1억원밖에 없는데 10억원짜리 산별노조를 지을 수 있을까요? 우리의 실력을 인정하고, 하나라도 좋아지게끔 노력하는 수밖에요. 노력했는데 안 좋아지면? 그것도 우리의 실력인 거죠.”

대공장노조가 임금피크제 반대하는 이유

- ‘박근혜 노동개혁 정면돌파’를 공약하고 위원장에 당선됐다. 정부발 노동개혁 정국에서 금속노조 새 집행부의 투쟁방향은 무엇인가.

“임금·단체협상에 연동된 일상적 투쟁으로 노동개혁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위력적인 총파업으로 돌파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다. 금속노조는 노동악법이 국회에 상정되거나 정부가 각종 가이드라인을 밀어붙일 때 전면적인 총파업에 나서기로 결의한 바 있다. 이때의 파업은 2시간 또는 4시간짜리 시한부파업이 아니다. 정치총파업이다.”

- 민주노총이 올해 들어 3차례 파업을 벌였다. 어떻게 평가하나.

“위력적이지 못했다. 조직적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지가 앞섰다고 본다. 현장 조합원들은 아직도 정부의 노동개혁이 자신의 삶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입체적인 조직화 계획 속에서 조합원들에 대한 교육선전이 이뤄져야 한다. 열심히 파업을 준비한 활동가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지금은 투쟁할수록 지치는 상황이라고 본다.”

- 임금피크제가 노동개혁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금속노조 사업장에서도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이미 현대차를 비롯한 상당수 사업장에서 임금피크제를 시행 중인데. 그럼에도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노조들이 임금피크제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 ‘우리는 이미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고 있다’는 방어논리를 편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내가 볼 때 현대차·기아차·한국지엠지부 같은 대공장노조에게 임금피크제는 사활을 걸 정도의 사안이 아니다. 오히려 임금피크제를 수용하면,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대공장노조들이 청년일자리 문제 해결에 동참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왜 반대하느냐? 우리가 임금피크제를 받아들이는 순간 그 피해는 90%가 넘는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에게 미치기 때문이다.”

- 임금피크제 논란의 발단은 정부가 청년고용 대책의 일환으로 임금피크제를 들고나왔기 때문이다. 노조는 임금피크제가 청년고용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노조가 제시할 수 있는 청년고용 해법은 무엇인가.

“사실 조직된 노동자들도 정년을 보장받기 힘들다. 대공장노조들이 임단협 때마다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하는 것은, 기존 조합원들의 고용 역시 불안하다는 방증이다. 노동자들은 국내 제조업을 살리라고, 투자를 확대해 일자리를 늘리라고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그런데 재벌기업들은 어땠나. 2세도 모자라 3세로 이어지는 재벌독재 구조를 만들기 위해 하라는 투자는 안 하고 비정규직만 늘렸다. 임금피크제를 하면 일자리가 늘어난다?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만들어지는 일자리가 온전한 일자리일 리 만무하다.”

- 정부는 기간제 사용기간을 늘리고, 파견 허용범위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새누리당이 발의한 파견법 개정안에는 파견 허용범위를 뿌리산업까지 확대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제조업과 뿌리산업은 한 몸이다. 실제 완성차 공장에서 직영으로 일하고 있는 시설관리 노동자나 주조부문 노동자들이 파견으로 넘어갈 수 있다. 안전사고가 나도 완성차 업체는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금속 조합원들에게 직결되는 사안이다. 반드시 막아 낼 것이다.”

"공장 울타리 넘어 … 산별노조 기본정신 잊지 않았다"

- 얼마 전 한국노동연구원이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내놓았다. 광주에 자동차공장을 지어 노동자들에게 적정임금(연봉 약 4천만원)을 지급하는 대신 하청업체에 적정단가를 보장하자는 제안이다. 이에 대한 위원장의 견해가 궁금하다.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는 노동 3권이 보장될 때 가능하다. 하지만 이미 동희오토 사례를 통해 노동 3권이 보장되지 않은 자동차공장이 어떻게 막장으로 가는지 지켜봤다. 문제는 또 있다. 예를 들어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차종, 또는 기아차 화성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차종을 새 공장에서 만들게 한다면 어떤 문제가 벌어질까. 같은 차를 만드는데 어떤 공장은 비용이 높고, 어떤 공장은 비용이 낮아진다. 내가 자본가라도 기존 공장을 축소하려고 할 것이다. 노동자들 사이에 엄청난 갈등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 금속노조는 명실상부한 국내 최대 산별노조다. 그럼에도 산별교섭 파급력이 크지 않다. 완성차지부의 중앙교섭 불참이 가장 큰 이유로 지적되는데.

“지금까지의 중앙교섭은 산별교섭이라고 부르기에 부끄러운 수준이다. 15만명에 달하는 노조 조합원 가운데 중앙교섭에 참가하는 사업장 조합원은 1만8천여명에 불과하다. 대부분 영세한 사업장이다. 지적한 대로 큰 노조들이 중앙교섭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산별교섭을 위축시킨 결정적 요인이다. 하지만 우리 실력이 그 정도인데 ‘왜 중앙교섭에 안 들어오느냐’고 비난만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이미 현장에서는 필요에 의해 ‘헤쳐 모여’가 이뤄지고 있다. 현대차 계열사 노조들이 연대회의를 구성해 통상임금과 같은 의제에 단일한 목소리를 내고 있고, 불황에 빠진 조선업종 노조들 역시 함께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철강부문 노동자들은 공동 임단투를 벌이기도 한다. 애초에 우리가 설계했던 산별노조의 모습과는 다르지만, 공장 울타리를 뛰어넘자는 산별노조의 기본정신은 잊지 않았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