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한국인사조직학회·한국인사관리학회는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공동으로 발표회를 열어 금융·제약·조선·도소매·자동차부품 5개 업종 임금피크제 모델을 내놓았다. 은행권의 경우 4~5년간 연평균 최대 50%까지 임금을 삭감하는 내용을 담았다. 노동계는 3개 학회가 만든 모델이 노사자율 해결을 해치는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높은 임금삭감, 숙련인력 이탈로 이어질 수도

3개 학회는 이날 제시한 모델에서 금융업을 대표적 고임금 업종으로 분류한 뒤 임금조정률을 높게 설정했다. 예컨대 은행권은 평균 4~5년에 걸쳐 연평균 40~50%의 임금을 감액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를테면 만 56세부터 임금피크제를 적용해 정년 60세까지 5년간 기존 임금의 절반을 받으면서 일하라는 의미다. 이 경우 연봉 5천만원을 받던 노동자는 5년간 총 1억2천500만원의 임금을 삭감당하게 된다. 보험을 포함한 기타 금융업에는 같은 기간 연평균 25~30%의 임금감액률을 제시했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는 "복리후생은 현행 수준을 유지하되, 임금피크제 적용 직원을 별정직으로 전환하거나 실무형 전문직무 또는 마케팅직무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직무·직책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3개 학회 자료에 따르면 조선업 모델에서는 2~5년간 10~20%의 임금을 감액한다. 금융업보다 상대적으로 적용 기간이 짧고 감액률도 낮다.

대·중소기업 간 격차가 커서 규모별로 제도적용 방식이 다른 데다, 숙련기술이 요구되는 산업 특성상 높은 수준의 임금감액이 인력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특히 조선업은 장시간 노동이 만연해 노동시간단축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는 제언이 뒤따랐다.

자동차부품업 역시 조선업과 유사하게 평균 2~5년에 걸쳐 연평균 15~20%의 임금을 감액하되 노동시간단축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는 모델이 제시됐다. 3개 학회는 제약업종의 경우 2~3년에 걸쳐 연평균 20% 내외, 도·소매업종에서는 3~5년에 걸쳐 연평균 15~20%로 임금을 감액하는 모델을 내놓았다.

노동계 "사실상 가이드라인, 노사정 합의 무시" 반발

노동계는 반발했다. 허정용 금융노조 정책본부장은 “기존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은행권은 다른 업종에 비해 정년을 2~3년 더 연장(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하면서 그에 상응해 임금삭감 폭을 크게 설정했다”며 “이런 사례가 3개 학회 실태조사에 반영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허 본부장은 “최근에는 평균 3년간 20~30%의 삭감률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있다”며 “노사가 제도개선을 논의 중인 상황에서 나온 3개 학회의 모델 발표가 산별중앙교섭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단가 후려치기 같은 원·하청 불공정거래에 시달리는 자동차부품업체에 임금피크제까지 도입하라고 권고하는 것은 가혹한 처사라는 지적도 나왔다. 강훈중 한국노총 대변인은 “원청의 횡포로 저임금 사업장이 다수인 자동차부품업종의 실정을 고려하지 않은 모델”이라고 비판했다.

강 대변인은 “정부는 9·15 노사정 합의를 통해 노사협의로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기로 했다”며 “정부가 학회를 앞세워 사실상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은 이러한 합의를 무시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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