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지난 7월22일 부산고등법원은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금속노조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가 2010년 11~12월 진행한 파업투쟁을 "무형적·정신적으로 방조했다"는 이유로 당시 지회 조합원이자 금속노조 미조직국장이었던 최병승에게 ‘업무방해 방조죄’를 적용하는 판결을 내렸다. 공교롭게도 5년 전인 2010년 7월22일은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로 일하다가 해고된 최병승이 현대차와 파견근로관계에 있기 때문에, 파견법에 따라 현대차와 직접적 근로계약관계에 있다고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날이다. 완성차 작업장의 사내하도급을 불법파견으로 인정한 판결을 근거로 지회는 현대차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했고, 2010년 울산1공장 점거농성이 진행됐다. 이 투쟁이 업무방해죄에 해당하고, 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최병승에게 업무방해 방조죄를 적용한 것이다.

현대차의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사실은 이미 2004년 고용노동부가 확인한 바 있다. 그해 12월 노동부가 당시 현대차 울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1만여명 전원이 불법파견근로에 해당한다고 확인한 후 지회는 “불법파견 철폐”를 요구하며 파업투쟁을 벌였고 이를 이유로 비정규직 80여명이 해고를 당했다. 해고된 비정규직들은 현대차를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으나 노동위원회·행정법원·고등법원 모두 원청이 사용자가 아니라고 결정했고, 막대한 소송비용과 시간 때문에 최병승을 포함한 2명의 해고자만 대법원에 상고해 2010년 7월22일 판결이 나오게 된 것이다.

불법파견근로에 부당해고를 당한 비정규직들이 10년 넘게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반면 불법을 저지른 현대차나 사내하청업체 누구도 처벌받은 적이 없다. 검찰은 2006년 말 불기소처분으로 현대차의 불법파견 사용에 면죄부를 줬고, 2010년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계속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현대차와 사내하청업체에 어떠한 처벌도 한 바 없다. 반면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내건 비정규 노동자의 파업에 대해서는 즉각 "불법파업"이라고 낙인을 찍었다.

이번 부산고법 판결은 검찰·노동부의 사용자 편향적 법집행을 정당화해 줬을 뿐만 아니라 ‘업무방해 방조죄’라는 기발한 무기를 제공해 줬다. 당시 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이자 금속노조 미조직국장이었던 최병승이 지회 점거농성을 지지하는 집회에 참석해 발언을 한 것이 업무방해를 방조한 범죄행위라는 논리다. 이런 식이라면 상급단체가 소속 조합원의 투쟁을 지원하는 것도, 노동자 투쟁에 시민들이 연대를 표시하는 일도 모두 업무방해 방조죄에 해당할 수 있다. 실제로 2009년 쌍용차지부 파업투쟁 과정에서 연대집회를 개최하고 지원업무를 했다는 이유로 금속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간부들에게 업무방해 방조죄가 인정됐고, 지난해 4월 조합원의 차량기지 철탑농성을 지원하는 집회에서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철도노조 위원장이 업무방해 방조 혐의로 기소됐다.

이는 2006년 말 삭제된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을 법원 해석으로 되살려 낸 것에 다름 아니다. “노사 자율성을 침해하고 국제노동기준에 배치되는 문제”가 있어 삭제됐던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이, 노조운동과 시민사회의 ‘무형적·정신적’ 지원마저도 처벌할 수 있는 보다 포괄적 규제로 되살아나고 있는 꼴이다. 2013년 한국을 방문한 유엔인권옹호자 특별보고관 마거릿 세카기야는 이듬해 열린 유엔인권이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보고서를 채택하면서, 노동조합 또는 조합원에게 업무방해죄와 막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인정하는 것은 “단순히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의 활동들을 범죄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활동에 오명을 씌우고 다른 사람들이 노동권을 주장하는 데 합류하는 것을 저지하기 때문”에 특히 우려스럽다고 지적한 바 있다.

최병승의 상고로 이 사건은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노동자의 헌법상 기본권 행사를 범죄시하고, 다른 사람들이 노동권 옹호에 연대하는 것을 저지하는 반헌법적 법해석을 대법원이 인정할 것인지 눈을 부릅뜨고 함께 지켜볼 일이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