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희 공인노무사(민주노총 제주본부 미조직비정규사업국장)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이 노동자들의 목을 옥죄고 있다. 지난달 13일 정부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노동법 개악안의 기초를 잡았고, 노사정 합의 직후 새누리당은 근로기준법·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등 각종 노동법 개악안을 제출했다. 그런데 노사정 합의 주요 내용이지만 개악안에서 빠져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저성과자 해고제도다.

근기법 제23조는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등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해고 등의 사유가 정당한지 여부는 해고를 한 회사에서 입증하도록 돼 있고, 단지 성과가 낮다는 이유로 인한 해고는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 저성과자 해고제도란 업무성과를 평가한 후 저성과자로 분류되면 교육·배치전환 등의 교정기회를 부여하되 개선되지 않을 경우 해고를 하더라도 정당한 해고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 역량평가기준 매뉴얼에 따르면 업무성과 평가 항목은 매우 주관적인 것으로 구성돼 있다. 예컨대 “기획력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추진할 능력이 있는가?” “업무수행시 질적·양적으로 성실하게 수행하는가” 식이다. 현재 각 현장에서 진행되는 업무평가 기준도 주관적인 평가 위주로 구성돼 있다.

저성과자 해고제도를 요약하면 평가자의 주관적인 기준으로 성과평가를 하고, 그 내용을 기준 삼아 해고를 하겠다는 것이다. 지금도 주관적인 성과평가를 통한 해고를 노동조합 탄압수단으로 악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제는 저성과자 해고제도를 대놓고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저성과자 해고가 도입되면 노동자들의 삶은 그 어느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해진다.

저성과자 해고제도는 자본의 무기가 돼 노동자들에게 돌아올 것이다. 정리해고를 대체할 수 있는 데다, 부당노동행위를 무력화해 노동조합 간부와 조합원을 '저성과자'라는 명목으로 해고할 수 있게 된다. 노동자 사이의 경쟁은 더욱더 심해질 것이다. 회사 탄압에 대응할 수 있는 노동조합과 단체협약도 무력화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저성과자 해고제도를 법 개정이 아닌 지침(가이드라인)으로 도입하겠다는 계획이다. 대법원 판례로 저성과자 해고제도 기준을 마련해 놓고, 추후에 법제화하는 식의 판례법으로 법제화하겠다는 속내로 보인다. 노동자들이 뭉쳐 싸우지 않는다면 정부 지침(가이드라인)은 법원에 의해 판례화될 것이고, 저성과자 해고제도가 일상화되면 정부는 법제화를 시도할 것이다.

새누리당 개악안 중 구직급여(실업급여) 수급자격 기준을 상향하고(현행 18개월 중 180일에서 24개월 중 270일 이상 고용보험 가입으로 변경), 수급액을 축소(구직급여 수급자의 66%가 적용받는 하한액이 현행 최저임금 기준 90%에서 80%로 감소)하는 내용이 특히 눈에 띈다. 해고자가 늘어나는 것에 대비한 조치일까. 정부가 도입하려는 저성과자 해고제도가 어떠한 결과를 낳을지 추측되는 부분이다.

전국대학노조 제주한라대학교지부의 얼마 남지 않은 조합원들이 2년째 업무평가에서 최하위점을 받고 있다. 올해 학교는 이를 이유로 조합원들의 임금을 동결시켰다. 3년 연속 하위점을 받으면 면직할 수 있도록 규정해 놓은 대학 취업규칙이 내년 2월 어떠한 칼날로 다가올지 걱정이다. 노동을 통해 생존하는 노동자에게 해고는 살인이다.

헌법 제32조는 “국가는 근로의 의무의 내용과 조건을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주주의 원칙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노동법 개악에 맞서 노동자들의 총력투쟁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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