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지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노동자는 말 그대로 노동으로 먹고사는 사람이다. 자본이 아니라 자기가 제공하는 노동에 대한 대가로 생계를 유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는 직장을 잃으면 곧바로 소득을 잃게 되고 나와 내 가족의 생계는 위태로워진다. 생계만 위태로워지는 게 아니다. 가정에서보다 직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대다수 노동자들에게 일터는 돈벌이 수단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원치 않게 직장을 잃으면 사회에서 맺은 인간관계도 잃고 급기야 자기 자신도 잃게 된다. 많은 것을 잃는 대신 돌아오는 것은 가난·박탈감·고립감·막막함·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의에 반해 직장을 잃지 않을 권리, 즉 안정적인 일자리는 헌법이 정하는 노동권의 핵심이자 모든 노동관계·사회관계의 전제이자 필수요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로기준법이 해고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근기법 제23조는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휴직·정직·전직·감봉, 그 밖의 징벌을 하지 못한다”고 정하고 있다.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는 부당해고라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법원은 해고가 정당하기 위해서는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 있는 사유”가 있어야 한다고 일관되게 판결하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실적이 부진하거나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는 해고를 당할 수 없다.

그럼에도 지난 9월13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사실상 실적이 부진한 경우에도 해고가 가능하도록 길을 텄다. 해고뿐만 아니라 정직·전직·감봉·배치전환 등의 인사조치가 가능하도록 합의한 셈이다. 여타 제도와 달리 법을 개정할 필요도 없다고 한다. 정부가 마련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곧바로 일반해고가 가능하도록 하겠단다.

노사정위원회는 이를 "근로관계 개선"이라고 표현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공정해고"라고 불렀다. 실적이 부진한 사람은 해고되는 것이 정의요, 공평한 결과라는 취지다. 언뜻 그럴듯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실적 부진자는 객관적인 개념인가. 그렇지 않다. 실적 부진이라는 것은 철저하게 기업 입장에서 기업이 평가한 결과다. 기업은 마음대로 기준을 정해 노동자를 평가할 수 있다. 반면 평가 결과가 불공정해도 노동자는 항의할 수 없다. 불공정하다는 것을 입증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신 사용자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매일매일 실적 압박을 받으며 피 말리는 전쟁을 해야 한다. 결국 저성과자 해고제도가 도입되면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적, 경쟁자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평가의 속성상 하위 20%에 속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생기기 마련이다.

상대 평가에는 기준이 없다. 굳이 기준이라면 경쟁자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경쟁자를 이기기 위해 노력하는 만큼 경쟁자 역시 나를 꺾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노동강도는 더욱 세질 수밖에 없다. 저성과자라는 낙인도 간과하기 어렵다. 상사 눈 밖에 나면 저성과자가 된다. 입바른 소리를 하면 저성과자가 된다. 그러다가 해고되면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내가 게을러서 해고됐다고 스스로 탓하게 만드는 것이 저성과자 해고제도다. 일상적인 구조조정, 회사에 잘 보이는 사람만 살아남는 무한경쟁, 그것이 바로 박근혜 정부가 주장하는 ‘공정해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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