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2015년 대한민국은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다. 온통 뒤틀려 있다. 법치의 근간인 헌법이 무시로 묵살되고 노동법은 액세서리처럼 취급된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야합은 비정상 나라의 정치적 역관계가 투영된 필연적인 귀결이다. 어이없는 대실책을 저지른 한국노총과 정부 노동정책의 거수기로 전락한 노사정위원회를 탓해 봐야 소용없다. 전략을 설계하고 우선순위를 결정해 온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집권 핵심 세력이 문제다. 우격다짐식 노동개혁을 앞세워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재벌 자본의 입맛대로 관철한 집권 수뇌부를 심판하지 않고선 그 어떤 정치적 비판도 지금으로선 한가하고 무익하다.

박근혜 정부의 행태가 해도 해도 너무한다. 청년일자리 창출과 동떨어진 임금피크제를 빌미로 세대갈등을 부추긴다. 청년더러 중동으로 가라더니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찾아왔고, 뜬금없이 이벤트에 불과한 청년희망펀드를 대통령이 선창한다. 사장 맘대로 쉽게 표적해고하고 불이익한 취업규칙 변경도 가능하게 함으로써 아예 헌법이 보장한 노동 3권의 밑동마저 뿌리 뽑으려 한다. 결정적으로 노동조합 바깥의 1천800만 비정규직-중소·영세 사업장 등의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라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양극화 수렁에 빠져 필사적으로 헤어나오려 몸부림치는 노동자 서민을 자신의 콘크리트 지지율로 가려 버렸다. 집권여당 대표는 대통령 아바타로 전락해 민생을 개선할 최소한의 정치적 출구마저 봉쇄했다. 이제 이 암울한 자본천국 대한민국의 변화는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국민, 특히 최대 집단인 노동자들에게 달려 있다.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벼르고 있고 민중 단위들은 10만 민중총궐기 조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 사회를 아틀라스처럼 받쳐 온 노동하는 서민들의 분노가 예사롭지 않다. 단순히 핍박받는 대다수 국민의 삶이 망가지는 것뿐만 아니라 이러다간 나라가 공멸로 치달을 수도 있다. 위태로운 남북관계와 사회 불평등 구조화 및 고착화로 사회통합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해지는 절망공화국에서 청년은 꿈을 잃고 중장년층은 노동지옥 속에 생존의 벼랑 끝으로 다시 내몰리고 노년은 비참한 생의 마지막을 두고 망연자실하다. 사회적 노동의 모든 과실이 먹이피라미드의 최상층에 천문학적 규모로 쌓여 전체 사회의 존망이 풍전등화다. 우리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민주주의 고유의 정신으로 싸우지 않으면 우리 후대가 맞을 세상은 사람으로 살기 더욱 힘든 세상이 될 것이다. 도처에서 사회적 약자들의 아우성이 솟구치고 차라리 싸우다 죽자며 고공 하늘집으로 오르고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 말자며 몸부림치는 이유다. 투쟁이 사람답게 사는 유일한 방책이 되고 있다. 비감하다.

더 이상 민주노총과 민중조직 단위의 투쟁만으로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을 막아 낼 순 없다. 민주주의를 짓밟으며 양극화의 최대 피해자들을 다시 사각지대로 내몰면서 재벌 자본의 초과이윤을 극대화하려 혈안이 된 파렴치한 권력 앞에서 모든 민초들이 일어서야 한다. 노동조합 바깥의 대다수 노동자들은 무엇으로 노동개악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겠는가. 수구보수 언론의 파상공세로 노동개혁의 본질을 거꾸로 알고 있는 경우가 허다한 게 현실이다.

‘박근혜 정부 노동정책, 개혁인가 재앙인가’ 국민투표는 사회적 발언권이 거세된 비정규직과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 영세 자영업자들, 저임금 여성노동자들, 청년학생들 등 우리 사회의 가장 소외되고 고립된 국민이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는 매개다. 잃어버린 목청을 다시 되찾는 통로다. 국민투표는 질식 직전인 우리 사회를 되살리는 산소호흡기이며 심폐소생술이다.

전국 방방곡곡 1만곳에서 진행되는 국민투표가 민주주의의 본령을 다시 일깨울 것이다. 쉼 없는 노동으로 이 사회의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만들고 제공해 온 진짜 주인인 민중이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민주노총 총파업과 민중총궐기와 함께 삼위일체가 된 국민투표가 정부의 잘못된 노동개악을 막고 진정한 노동의 대안을 찾는 분기점을 만들 것이다. 편찮으신데도 기어이 오신 백기완 선생님의 서슬 퍼런 결기로 시작된 국민투표는 수백만명을 돌파해 국민 심판의 새로운 장을 열 것이라 확신한다. 국민투표 1호 투표소가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 설치됐다.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국가인권위원회 고공농성장 앞과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새누리당사 앞 단식농성장, 광화문역 지하 장애인 농성장, 강남역 앞 노점상에도 투표소가 만들어졌다. 민란을 선동하는 첫 화살이 활시위를 떠났다. 시작이 반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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