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공기관에 이어 공공병원에도 임금피크제 도입을 압박하고 나서면서 의료의 질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청년고용 확대는커녕 기존 노동자들의 퇴직러시로 이어져 병원 현장을 기형적으로 만들 것이라는 비판이다.

행정자치부는 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지역발전위원회 중회의실에서 2016년 임금피크제 도입기관 CEO회의를 열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각 지방의료원장에게 공문을 보내 참여를 독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자부는 지난달 지방출자·출연기관 임금피크제 도입권고안을 지자체에 시달했다. 이에 따르면 전국 33개 지방의료원은 내년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이나 내후년(상시근로자 300인 미만)부터 전 직원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야 한다.

신규채용 효과 없고 숙련노동자 차별

그러나 병원 노동자들은 "신규채용 효과도 없고 병원 현장 특성에 맞지도 않는다"고 반발하고 있다. 도입권고안에 따르면 임금피크제에 따른 신규채용 목표치는 정년연장으로 인한 퇴직연장자 증가분만큼이다. 신규채용자의 인건비는 총 인건비 인상률 한도에서 임금피크제를 통해 절감한 재원으로 충당한다.

그런데 절감 재원이 나올지 의문이다. 공공병원들의 정년퇴직자가 매우 적기 때문이다. 근속연수가 평균 10년 수준에 불과한 병원사업장 특성 탓이다. 보건의료노조 홍성의료원지부에 따르면 홍성의료원의 경우 연평균 정년퇴직자는 1~2명 수준이다. 올해와 내년에는 한 명도 없다. 지부 관계자는 "지방의료원들이 모두 비슷한 처지"라고 말했다. 정진후 정의당 의원이 앞서 발표한 '13개 국립대병원 임금피크제 관련 별도정원 요청서'도 이 같은 현실을 뒷받침한다. 요청서에 따르면 13개 국립대병원의 2016년 총 정년퇴직 예정자(정년 60세 미적용)는 196명으로, 전체 정원(2만6천90명)의 0.75%에 그쳤다.

높은 숙련도가 필요한 병원 현장에서 오히려 임금피크제가 조기퇴출제로 악용될 소지도 있다. 도입권고안에 따르면 임금피크제 대상자들은 별도 직군으로 분류된다. 기존 직위나 직무가 아닌 새로운 직무를 개발해 적용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57세에 이른 수간호사가 임금피크제를 적용받게 될 경우, 기존 직위나 직무에서 물러나 새로운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자칫 퇴출을 종용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단일한 임금체계 깨질 가능성도 높아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은 "임금피크제를 계기로 병원 직원들이 단일하게 적용받아 온 임금체계 자체가 개편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직종에 따라 서로 다른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실장은 "병원사업장은 직종이 다양한데 서로 차등을 둔 임금피크제가 도입된다면 이는 결국 나중에 직무직능급이나 성과연봉제 도입, 더 나아가 저성과제 퇴출제로 이어질 수 있다"며 "결국 노조와 교섭을 통해 임금을 결정하는 체계 자체가 깨지고 노동조건과 고용을 전면 훼손하는 방향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진락희 홍성의료원지부장은 "협업이 중요한 병원 업무 특성상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인해 직무 간 차별 가능성이 높아지면 업무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며 "이는 환자들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정부가 억지로 임금피크제를 강행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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