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노동조합이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민주노총에서는 아직도 정부 지원금이나 보조금은 받아선 안 된다는 논쟁을 하고 있다. 좋게 보면 순진하고 현실로 보면 어리석은 논쟁이다. 정부 지원을 받으면 자주성이 훼손된다는데, 그렇다면 사용자한테서 전임자임금이나 노조사무실을 지원받는 것을 노동조합의 당연한 권리로 여기는 태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시비를 가릴 문제는 정부 지원금이나 보조금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적정한 집행과 책임 있는 보고, 그리고 투명한 공개일 것이다.

민주노총은 정부 보조금을 받을 것인가 하는 비현실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을 넘어, 그것의 수령과 사용 그리고 보고와 공개에 대한 올바른 원칙과 규정을 마련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노총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한국노총이 지난 노사정 '합의'를 하게 된 원인 중 하나로 정부 보조금 지급 중단을 통한 고용노동부의 압박이 거론됐을까. 정부 보조금은 주인 나리가 기분 좋을 때 마당쇠에게 주는 쌈짓돈이 아니다. 정부 예산으로 국회 심의와 의결이라는 민주적 과정을 거친다. 한국노총이 정부에 고분고분해져야 받는 주인 나리 쌈짓돈이라면 받을 필요도 없고, 받아서도 안 된다.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요즘 노동자들의 마당쇠여야 할 고용노동부 장관과 관료들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돈 갖고 장난치고 있다.

그렇다면 고용노동부가 한국노총에 주는 돈은 얼마일까. 궁금해졌다. 한국노총에 알아볼 수도 있겠지만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정보공개법) 절차에 따라 노동부에 물어봤다. 정부의 정보공개 사이트에 "2000년부터 2015년까지 한국노총에 지원한 국비 내역을 공개해 달라"고 청구했다. 답변 의무기간인 열흘을 지날 무렵 비공개라는 답변이 왔다. 세부 영수증까지는 아니라도 지난 15년 동안 이뤄진 연도별 국비 지원내역의 대략적인 개요는 공개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순진했던 것일까.

"정보공개법 제9조1항7호(비공개 대상 정보-법인·단체의 경영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 같은 법 제11조(정보공개 여부의 결정-제3자의 의견청취), 같은 법 제21조(제3자의 비공개요청)에 따라 비공개하니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노동부 답변이다. 물론 이해할 수 없다. 한국노총이 받은 국고의 연도별 개요가 한국노총의 경영상·영업상 비밀이라는 데 동의할 수 없다. 지출과 사용의 상세내역이야 부분적으로 비밀로 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한국노총이 해마다 얼마의 국비를 받는지 자체가 비밀이라니. 제9조 운운은 납세자로서 이해할 수 없다.

제11조와 제21조를 언급하며 비공개를 정당화시키는 논리도 납득할 수 없다. 한국노총에 공개 여부 의견을 물어보니 공개하지 말라고 주문했다는 투인데, 설사 한국노총이 비공개 의견을 냈더라도 연도별 국비 규모와 대략적인 내역에 대해서는 공개하는 게 정보공개법 제정 취지에 맞다. 민감한 사안의 세부내역이라면 모를까, 대략 얼마가 연도별로 지원되는지조차 비공개라니, 난감이다.

아무튼 노동부 답변은 한국노총과 노동부 사이에 국비 지원내역에 대해서는 그 수준에 상관없이 비공개로 한다는 상호 동의가 이뤄져 있다는 것인데, 이게 정부 재정의 투명성은 물론 노동조합으로서 한국노총의 자주성과 독립성에서 바람직한지 돌아볼 일이다.

노동조합이 국비를 지원받는 것은 당연하다. 선진국 노동조합들의 국제연대기금은 대부분 국비 지원으로 이뤄진다. 그렇다고 인건비와 일상활동비(조직·교섭·투쟁·교육), 건물비(전월세·매입비)를 국비로 메꾸는 것은 반대다.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결사체로서의 지속가능성을 해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사 혹은 노사정 합동사업, 산업보건안전, 조합원 복지, 국제 연대 등의 영역에서 국비 지원을 받는 건 찬성한다. 국비 수령과 집행 그리고 보고에서 원칙과 절차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전제 위에서다.

한국노총이 받은 국비가 얼마인지를 알려는 노력은 정보공개법이 보장한 범위 안에서 계속할 것이다. 이의신청을 할 것이고, 비공개 결정의 부당함을 설파할 것이다. 그리고 노동부를 넘어 전국 지자체가 한국노총에 지원한 자금이 얼마나 되는지도 차츰 알아볼 것이다. 민주노총에 들어가는 세금도 마찬가지다. 부패는 법이나 정부가 없애지 못한다. 보통 사람들이 정보를 요구하고 감시에 나설 때 부패를 척결할 수 있다. 불투명과 비공개는 쌈짓돈의 특징이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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