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노동위원회는 9·15 노사정 합의문과 이튿날 발의된 새누리당 노동법 개정안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6회에 걸쳐 싣는다. 첫 회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개정안이다.<편집자>

이용우 변호사

새누리당은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과 근로계약 갱신횟수 명문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기간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런데 새누리당의 기간제법 개정안은 아래와 같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개악안’임이 명백하다.

사용기간 연장과 관련해 첫째, 현행 기간제법은 기간제 2년 초과 사용시에는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무기계약 간주 규정을 두고 있고, 법원은 기간제 남용을 방지함으로써 노동자 지위를 보장하려는 것이 기간제법의 입법취지라고 판시하고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 개정안은 사용자에게 기간제의 장기간 사용을 전면적으로 허용해 주고 무기계약 간주 규정을 형해화한다는 점에서 법 규정과 법원의 판시 취지에 역행한다.

둘째, 정부와 새누리당은 노동자 신청을 조건으로 하는 사용기간의 ‘예외적’ 연장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2년 이후에도 해당 업무에 대한 계속고용이 필요한 상황에서 사용자는 해고를 무기로 무기계약 전환 대신 노동자 신청을 강제해 기간제 사용을 쉽게 관철할 수 있다. 결국 사용자는 4년 동안 자유롭게 기간제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고, 노동자는 지속적인 고용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기간제 사용기간의 ‘예외적’ 연장이라는 주장이 위선이자 기만인 이유다. 사실 2년 초과 이후 계속고용이 필요하다면 노동자 신청이나 사용자 선택에 맡길 것이 아니라 정규직 고용을 법으로 강제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럼에도 정반대 대책만 강구하니 정부와 새누리당이 자본의 ‘대변인’이라는 혹평을 듣는 것이다.

셋째, 사용기간을 연장하면 2년을 근무한 기간제 노동자의 무기계약 전환기회를 사실상 박탈한다. 추가 2년을 근무하더라도 사용자가 지급하는 최소한의 이직수당을 수령하면 무기계약 전환기회를 전혀 보장받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사용자는 이직수당 지급만으로 무기계약 전환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되는 것은 물론 무기계약 전환 거절시 판례에 의해 확립된 ‘갱신기대권 법리’에 따른 해고의 정당성 논란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결과적으로 사용자는 얼마 되지 않는 이직수당만 지급하면 모든 법적 부담에서 해방된다.

넷째, 사용자는 사용기간 연장에 따라 4년 동안 기간제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파견법 개악과 맞물려 기간제-파견-기간제 등의 탈법까지 활용하면 장기간 비정규직 사용이 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정규직 채용 유인은 사라진다. 한 번 비정규직은 영원한 비정규직이 되고, 기존 정규직 일자리마저 기간제 등으로 대체된다. 그야말로 기간제 노동의 전면화라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진다. 위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면,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은 기간제 노동의 전면화와 노동조건 악화로 귀결된다.

한편 새누리당의 기간제법 개정안에는 기간제 근로계약 갱신횟수를 2년의 범위 안에서 3회를 초과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갱신횟수 제한 조치는 일명 ‘쪼개기 계약’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사용자들에게 2년 내에 3번의 합법적인 해고 권한을 보장하고 갱신기대권 법리를 형해화할 우려가 있다.

한국의 고용실태를 보면 고용보호 정도가 낮고, 근속기간이 매우 짧으며, 기간제 등 비정규직 남용이 매우 심각하다. 박근혜 정부조차 상시·지속적 일자리에 대한 정규직 고용을 대선공약으로 내걸었을 정도다.

그럼에도 새누리당 개정안은 이와 같은 고용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법·정책적으로 타당성도 없다.

사실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은 2009년 이명박 정부 시절 ‘100만 해고대란설’을 퍼뜨리며 추진하다 실패한 방안을 재탕한 것에 불과하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실패한 정책을 재탕해 기간제 노동 전면화에 골몰할 것이 아니라 상시·지속적 업무에 대한 정규직 고용 원칙과 위반시 무기계약 간주를 법제화하고, 고용형태(정규직·무기계약직·기간제·단시간 등)에 따른 차별 금지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근로기준법에 명시해야 한다. 아울러 노동조합에 차별시정신청권을 부여하고 ‘열정페이’와 수습사원 부당해고 같은 청년 기간제 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법·제도 개선책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장그래가 원한 건 정규직이었지 희망고문이 아니었다. 노예와 같은 삶의 연장은 결코 개혁으로 불릴 수 없음을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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