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성희 기자

토요일 저녁 6시45분쯤 됐을까. 서울 강남역 스크린도어 장애물 감지 센서가 이상하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도구를 챙겼다. 강남역 승강장까지는 40분도 걸리지 않았다. 센서는 스크린도어 개폐문 양쪽 날개 격인 비상문과 고정문 끝에 하나씩 달려 있다. 가는 동안 비상문쪽 센서이길 바랐다. 수동으로 열 수 있는 비상문쪽이면 간단한데, 고정문쪽은 승강장쪽으로 들어가야 겨우 센서에 손이 닿는다. 도착해 보니 고장난 센서는 하필 고정문쪽이다. 발을 헛디뎌 선로에 떨어지지 않으려면 거미처럼 유리문에 바짝 붙어서 움직여야 한다. 스크린도어를 마스터키로 열고 선로 쪽으로 들어갔다. 아뿔싸, 한 발짝 떼자 검은 열차가 눈앞에 다가왔다.

지난 8월29일 지하철 정비노동자가 강남역에서 목숨을 잃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숨진 노동자는 선로쪽으로 들어가자마자 승강장에 진입한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이고 말았다. 이 노동자는 서울메트로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체인 유진메트로컴에 입사한 지 갓 1년을 넘긴 28세 청년이었다. 내년 1월이면 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렸을 젊은 노동자가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세상을 등진 것이다.

청년은 왜 선로쪽으로 들어갔을까

2인1조로 근무하도록 정한 안전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느니, 스크린도어가 열리면 열차가 멈추는 시스템이 무너졌다느니 하는 여론의 질타가 이어졌다. 맞는 지적이다. 그런데 그런 사후약방문 말고, 근본적인 개선 방법은 없을까.

서울지하철노조 한 조합원은 "(고인이) 자동문을 열고 거기 매달려 팔을 뻗어 센서를 닦으려 했던 것 같다"며 "스크린도어가 열려 있으면 열차가 못 들어오게 제어됐거나, 고정문이 열려 승강장 안쪽에서 수리할 수 있었다면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고정문을 수동 개폐가 가능한 비상문으로 바꾸면 된다는 얘기다.

승객 안전을 위해서도 고정문을 비상문으로 바꾸는 일은 시급하다. 만약 사고가 나서 열차가 멈췄는데, 출입문이 스크린도어 고정문에 막힌다면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 정부 생각도 같다. 국토교통부는 2010년 ‘도시철도 정거장 및 환승·편의시설 보완 설계지침’을 통해 스크린도어 벽체를 모두 여닫을 수 있는 구조로 개선하라고 요구했다.

요구는 먹혀들지 않았다. 2015년 사고가 난 강남역처럼. 무엇이 정부 요구를 무력화했을까. 질문을 "청년노동자는 왜 선로쪽으로 들어갔을까"가 아니라 "왜 선로쪽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을까"로 바꿨더니 사고현장에서 무엇인가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광고다.

스크린도어는 거대한 광고판이다. 지하철역에는 전동차 1번·4번 출입문과 차량 연결구간에 설치하는 A형, 차량 중앙 스크린도어 고정문에 설치하는 B형, 스크린도어 상단에 설치하는 C형 광고물이 있다. 상단에는 동영상이 나오는 PDP까지 설치돼 있다. 강남역 사고는 바로 B형 광고물에서 발생했다. 고정문을 숙주로 삼아 거대한 광고비가 오가니 사고의 뿌리는 애초부터 돈 문제였던 것이다.

신생업체에 22년간 광고독점권 준 서울메트로

민간사업자가 제 돈으로 스크린도어를 설치한 뒤 유지·보수 업무를 수행하면서 대신 독점적 관리권을 갖는 BOT(Build-Own·Operate-Transfer) 방식은 특히 그렇다.

이렇게 민간사업자가 운영하는 역은 서울메트로 2호선 12개역과 1·3·4호선 12개역이다. 사업시행자는 공교롭게도 모두 유진메트로컴이다.

<매일노동뉴스>가 4일 강남역 스크린도어를 제작·운영하는 유진메트로컴과 서울지하철공사(서울메트로)가 맺은 실시협약서를 입수해 살펴봤다. 서울메트로는 2004년과 2006년 두 차례에 걸쳐 유진메트로컴과 '스크린도어 제작·설치 및 운영사업 실시협약서'를 체결했다.

1차는 2호선 12개역, 2차는 나머지 1·3·4호선 12개역이 대상이다.

강남역·삼성역·교대역·신도림역·사당역·서울역·시청역·종로3가역·홍대입구역처럼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핫 플레이스'다. 유동인구가 많은 알짜역이니 광고비도 덩달아 비싸진다.

현재 1차 12개역에서는 스크린도어 면적의 33%, 2차 12개역은 20.75%를 광고로 채울 수 있다. 서울메트로가 협약서에서 유진메트로컴에 보장한 연간 최소 광고매출은 1차 12개역에서 116억4천300만원, 2차 12개역에서 103억800만원이다.

실제로 민자역사 선정기준도 처음부터 광고수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진메트로컴이 2차 실시협약을 맺은 시기인 2006년 11월 당시 강경호 서울메트로 사장은 "수익적으로 미흡한 역사는 예산사업으로 하고, 광고가 잘되는 곳, 혼잡도가 많은 곳은 민자를 유치한 것 같다"고 서울시의회에서 답했다.

협약 내용도 특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파격적이다. 1차 12개 역사를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은 무려 22년이다. 2차 12개 역사의 경우 16년7개월 무상사용권을 보장했다. 이 기간 동안 유진메트로컴은 광고를 독점할 수 있다.

불변사업수익률은 1차 9.14%, 2차 9.09%다. 최근 5년간(2010~2014년)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수익률은 5.8% 수준이다. 국민연금 수익률의 최소 두 배에 가까운 수익을 거두는 셈이다. 유진메트로컴이 산술적으로 100억원의 광고매출을 올린다고 가정했을 때 20여년 동안 2천억원을 웃도는 매출을 보장받는 것이다. 총사업비(1차 428억원, 2차 451억원)를 두 배 이상 웃도는 규모다.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손해 보는 장사를 할 수 없는 구조다.

유진메트로컴이 2호선 12개역을 완공한 2006년 매출은 124억원으로 2005년(7억원)보다 1천800% 급증했다. 23억원이던 적자도 19억원 순이익으로 전환됐다. 이듬해 매출액은 204억원, 당기순이익은 24억원으로 늘었다. 2차 협약에 따라 12개역을 추가로 완공한 2008년부터는 매출액이 300억원대를 넘어섰다. 지난해에는 매출액 420억원을 기록했다.

1·2차 사업비는 모두 교보생명과 한국교직원공제회로부터 장기차입금 형태로 빌렸다. 담보는 서울메트로와 맺은 실시협약서였다. 지난해 기준으로 대주주 2명(정흥식·신광재)에게 16억8천만원, 경영권 없는 우선주를 가진 교보생명과 교직원공제회에 4억2천만원을 배당하고도 대주단 차입금을 70억원 가까이 갚았다.

▲ 윤성희 기자

첫 스크린도어 민자사업에 단독입찰한 신생업체

이쯤 되면 이런 엄청난 행운을 거머쥔 유진메트로컴이라는 회사가 궁금해진다. 유진메트로컴은 사실 스크린도어 사업을 따내기 전만 해도 실적이 전혀 없었던 회사다. 유진메트로컴은 2003년 10월 설립했다. 설립한 그달 서울메트로에 스크린도어 사업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생회사가 1년 만에 428억원 규모의 2호선 스크린도어 사업을 낙찰받는 희한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게다가 스크린도어는 애초에 민자유치대상 사업이 아니었다. <매일노동뉴스>가 입수한 '2008년 서울시 시민감사관 직권감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시는 2003년 12월 옛 건설교통부(국토교통부)에 스크린도어가 민자유치대상 사업에 해당하는 사회기반시설로 볼 수 있는지 질의했다. 당시 건교부는 "사회간접시설 중 도시철도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도시철도에 스크린도어는 포함하기 어렵다"고 회신했다.

그런데도 서울메트로는 추가 검토를 생략하고 이듬해 2월 민자사업 추진을 결정한 뒤 사업설명회를 열었다. 이어 같은해 4월 단독 응찰한 유진메트로컴을, 그것도 사업 재공고 과정도 없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2인 이상 유효한 경쟁입찰이 성립해야 한다"는 서울메트로 회계규정과 스크린도어 설치사업추진계획을 어기면서 말이다.

같은달 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사업설명회에는 LG·현대·한진 등 대기업을 포함한 30여개 업체가 참여했다. 그런 만큼 서울시의회에서도 단독 응찰이 석연치 않다는 반응이 나왔다. 그러나 강경호 당시 사장은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만 답했다.

속전속결 계약이 이뤄진 배경에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이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취임 직후인 2003년 강경호씨를 서울메트로 초대 사장으로 앉혔다. 강씨는 현대건설 출신이자 범현대 그룹에 속하는 한라기업 부회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같은 시기 서울메트로 상임감사에는 김백준씨가 선임됐다. 현대종합금융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고 2002년 서울시장 선거캠프에서 활약했던 최측근이다.

서울메트로 스크린도어 담당부서에서 일했던 김아무개씨는 "스크린도어에 대한 개념 자체가 불분명한 때였는데 기술력도 경험도 검증되지 않은 업체를 바로 선정한 것에 대해 의혹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업추진 과정에서 시의회 반대가 있었는데도 이명박 전 시장이나 서울메트로의 의지가 워낙 강해 정말 빠르게 사업이 추진됐다"며 "서울시 공기업이나 교통부문에 이명박 전 시장의 영향력이 안 미친 데가 없었다"고 귀띔했다.

공사비 높여 주고 … 쏟아지는 의혹

특혜 시비는 계속 불거졌다. 2008년 시민감사관 직권감사에서는 서울메트로가 유진메트로컴과의 협약에서 다른 역사보다 설계원가를 부풀려 잡았다는 점이 적발됐다. 이 바람에 사업권 보장기간을 연장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2004년 12월 1차 협약에서는 한 역사당 공사비가 26억4천만원이었다. 반면 같은 시기 도시철도공사가 발주한 김포공항역사 스크린도어의 경우 한 역사당 공사비는 21억원이었다.

2006년 2차 협약에서도 역사당 25억원이 책정됐는데, 같은해 10월 서울메트로가 다른 업체와 체결한 5개 역사 평균비용(21억원)보다 높다. 감사보고서에도 서울메트로가 먼저 사업비용 기준을 세운 뒤 민간사업자와 협상을 통해 적정금액을 책정해야 하는데도 기준 없이 계약을 추진하면서 다른 역보다 더 높은 가격을 쳐 줬다는 지적이 담겼다.

이뿐만이 아니다. 공사기간과 설치비도 다른 공사와 차이가 났다. 유진메트로컴은 1년2개월에서 1년6개월에 걸쳐 스크린도어 가동문 1개당 3천400만원을 들였다. 하지만 서울메트로가 발주한 97개 역사 시공업체 4곳은 4~11개월 안에 공사를 마무리하고, 1개당 1천600만~2천400만원만 써야 했다. 이처럼 공사가 제각각 이뤄지면서 역사별로 구조와 설비, 시스템이 달라져 유지·보수가 더욱 어려워졌다.

이로 인해 매년 스크린도어 고장건수가 늘고 있다. 지난해 스크린도어 장애건수만 1만7천337건이다. 이 중 20%가 단 4개 역에서 발생했다. 네 곳 모두 4개월 만에 개당 1천600만~2천만원으로 공사를 했던 곳이다.

실시협약서에는 광고독점권 혜택을 준 서울메트로(갑)가 오히려 저자세를 보인다는 느낌이 드는 문구도 들어 있다. 1차 협약서에는 "승강장 구역에 갑(서울메트로)이 신규 광고물을 설치하려 할 경우 을(유진메트로컴)의 스크린도어 광고에 영향을 고려해 설치한다"는 표현이 나온다. 서울메트로도 과하다고 여겼는지 2차 협약에서는 해당 조항을 뺐다.

권한은 많지만 안전책임은 그에 맞게 지고 있지 않다. 국토부는 2010년 도시철도 정거장 및 환승·편의시설 설계 지침을 마련해 모든 안전보호벽에 비상문 도입을 권고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올해 4월 승객 안전을 위해 안전보호벽을 모두 비상문으로 개폐할 수 있도록 개선하라고 주문했다.

실시협약서에도 "광고면에 대해 비판적 사회여론이 조성되거나 의회·감독기관의 시정권고가 있으면 광고면적이나 위치를 조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지만 지금까지 실현된 적은 없다.

서울메트로는 뒷짐만 지고 있다. 서울메트로 설비처 관계자는 "광고를 철거하라는 건 사실상 장사하지 말라는 얘기인데 (유진메트로컴이) 가만히 있겠느냐"며 "계약상 서울메트로와 동등한 협약대상자인 이상 강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해법은 스크린도어 사업 '공공 환원'

그렇다면 청년노동자의 황망한 죽음이 되풀이되지 않을 방안은 마련되고 있을까. 서울메트로는 "강남역 사고를 계기로 전 역사 승강장에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고 스크린도어 센서 시스템을 개선하는 등 안전조치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방안이 아닐뿐더러 민자역사에서는 사업자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 유진메트로컴이 직접 나서 안전조치를 취해야 하는 게 함정이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스크린도어 센서 변경은 유진메트로컴측이 하기로 했다"면서도 "비용이 과도하게 드는 등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민간투자법)상 논란이 있는 부분은 우리가 강제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협약을 해지하면 법적 문제가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오선근 공공교통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은 “스크린도어 문제는 시스템을 공공영역으로 되돌려야 풀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 위원장은 "민자협약이 수익보장에 초점을 맞춘 이상 문제가 잇따를 것"이라며 "당장 계약해지가 어렵다면 유인책을 마련해 공공성을 위한 조치를 이행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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