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 중에서 노동계가 가장 반대하는 것이 ‘일반해고’ 제도다. 정부는 일반해고가 ‘쉬운 해고’가 아니며, 해고 절차를 강화해 분쟁을 없애는 제도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말은 1998년 정리해고 제도가 도입될 때도 똑같이 했던 이야기다. 그때도 정부는 정리해고를 하려면 긴박한 경영상 이유가 있어야 하며, 정리해고 요건과 복잡한 절차가 있기 때문에 쉽게 해고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긴박한 경영상 이유’는 법원에서 ‘미래에 올 경영상 위기’까지 인정해 주는 것으로 바뀌었고, 정리해고를 위한 절차는 오히려 정리해고를 정당화하는 사전 구조조정으로 변했다. 그 결과 한 해 100만명 가까운 사람들이 ‘회사 사정’으로 명예퇴직을 하거나 정리해고를 당하고 있다. 이미 쉬운 해고가 가능해진 것이다.

정리해고로도 모자라 경제단체들은 꾸준히 ‘일반해고’ 도입을 정부에 제안해 왔다. 정리해고는 집단해고 성격을 갖는데, 기업들은 이러한 집단해고 외에 일상적인 개인해고를 원한다. 지금까지는 그런 일상적인 구조조정 대상이 비정규직이었다. 인력을 줄일 필요가 생기면 "계약해지"라는 말 한마디로 비정규 노동자들을 회사에서 내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비정규직은 2년이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2년에 한 번 해고하고 다시 채용하는 데 비용이 들어간다. 기업들은 이런 비용조차 아까워한다. 그래서 기업들은 자신이 원할 때 마음껏 일을 시키고, 원할 때 해고할 수 있는 구조를 원한다. 그 제도가 한편으로는 ‘기간제’의 기간제한을 없애는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일반해고’를 도입하는 것이다. 기간제한이 없으면 마음껏 비정규직으로 부려먹다 해고할 수 있다. 일반해고는 정규직으로 부려먹다 기업이 원할 때 해고한다는 점에서 본질은 같다.

기업들이 일반해고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해고 당사자의 이름 앞에 ‘저성과자’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해고는 ‘저성과자 해고’다. 고용노동부의 연구용역보고서에 의하면 성과가 낮은 사람은 경고를 하고, 그래도 안 되면 다른 업무로 배치하고, 그 이후에도 성과가 나지 않으면 해고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성과가 나지 않는다"는 표현은 참으로 자의적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회사 업무는 영업직이 아닌 다음에야 개인의 성과를 측정하기 어렵다. 대다수 업무는 상호 연결돼 있고 그 안에서 개인의 성과는 조직사회의 문화와도 연관된다. 그리고 경제의 흐름이나 정세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런 조직사회에서 개인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적다. 개인이 성과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성과’에 따라 해고하겠다는 말은 기업이 일상적으로, 마음대로 해고 대상자를 정하겠다는 얘기다.

기업 마음대로 해고하면서도 ‘저성과자’라는 딱지를 붙이는 순간 모든 책임은 해고 당사자에게 돌아간다. 정리해고나 계약해지의 경우 노동자들은 불만을 제기하고 투쟁할 수 있다. 정리해고는 노동자들에게 귀책사유가 없는데도 경영상 이유로 해고를 하는 것이기에 노동자들은 부당함을 호소하고 싸운다. 쌍용자동차나 콜트·콜텍에서 보듯이 많은 이들이 정리해고의 부당함을 인정하고 연대한다. 기간제 계약해지의 경우에도 노동자들은 ‘갱신기대권’을 주장하며 싸우고 이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승리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성과자 해고’는 그렇지 않다. 노동자들이 부당함을 호소하려면 자신이 직접 ‘저성과자가 아님’을 증명해야 한다. 대부분 증명에 실패할 것이다. 인사에 관한 권한과 자료는 모두 기업이 갖고 있고 노동자들은 그에 대한 접근권이 없기 때문이다.

기업은 자신들이 임의로 해고기준을 정하고 함부로 해고하면서도 사회적인 비난을 받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다. 해고를 당한 노동자는 ‘저성과자’라는 사회적 낙인이 찍힌 채 불만을 표시할 권한도 없이 쫓겨나게 된다. '저성과자'라는 사회적 낙인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고 노동자의 자존감을 바닥까지 끌어내려 침묵하게 만든다. 사람을 모욕 주고 비참하게 만들면서 해고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일반해고다. 얼마나 반인권적인 제도인가. 도대체 이 사회는 사람의 삶과 권리를 무너뜨리는 일을 어디까지 용납하려고 하는가. 성과가 낮더라도 기업 안에서 함께 도모하고 격려하며 공동체의 힘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은 어디에도 없다. 기업은 노동자의 삶과 사회에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오로지 노동자들끼리만 죽고 죽이며 유지되는 이 구조를 우리는 도대체 어디까지 용납해야 하는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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