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지난 23일 한국ILO협회 창립 20주년을 기념하는 강연 및 세미나가 열렸다. 한국ILO협회는 한국이 국제노동기구(ILO)에 가입한 지 4년이 되던 1995년 11월 ILO 이념을 우리 사회에 구현하기 위해 노사와 공익 분야에 종사하는 인사들이 주축이 돼 설립한 사단법인이다. 대표는 우정노조(현) 위원장과 초대 노동부 장관을 지낸 권중동 회장이 현재까지 맡아 오고 있다. 설립 20돌과 마침 내년이면 ILO 가입 25주년이 되는 것을 기념해 협회는 “ILO 가입 25년의 과제”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발제자인 이승길 교수와 토론자들(김기우 박사 외 특히 노동계측)이 발표한 한국의 ILO 가입 25주년 이후 한국 사회의 노동환경 발전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비판적이었다. 지난해 정식이사국으로 선임되고 무려 가입 25년이 됐는데도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길은 멀어만 보인다는 평가다. 이러한 평가 아래 토론자들은 정부의 노동기본권 보호를 위한 의지와 실행을 촉구했다.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전체 협약 중 고작 27개만 비준한 데다, 이른바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것은 심각한 문제다. 결사의 자유 협약(제87호·제98호)과 강제근로 협약(제29호·제105호)이 대표적이다. 공무원 쟁의행위가 전면적으로 금지돼 있는 것은 물론이고 박근혜 정부에서 전교조는 아예 법외노조화됐다. 최근에서야 법원 판결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설립이 겨우 가능하게 됐으나, 구직노동자들의 노동권 보장은 기약이 없다. 노조간부에 대한 강제수사와 파업을 무력화할 정도의 강력한 민형사상 책임 규정은 ILO의 단골 지적사항이다.

ILO 협약은 노동자 기본권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명국 노동자로서 보호받아야 할 최소한의 노동기본권이란 말이다. 보편적 수준에서 노동기본권을 우선적으로 보장한 후에야 개별국가 고유의 특성을 반영할 수 있을 따름이다. 고유의 특성이더라도 협약에서 정하는 최하한 수준을 넘어서야 존중받을 수 있다.

ILO 협약 기준에서 본다면 이번 노사정 3자의 노동시장 구조개혁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노동기본권을 존중하는 문명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할 수 있다.

우리에게도 도약의 경험이 있다. 10년 전인 2007년 6월12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96년 이후 한국 노사관계 진전을 이유로 회원국 만장일치로 그동안 해 온 "감시 활동"을 "즉시 완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참여정부가 추진하던 ‘노사관계 선진화’ 추진의 성과가 어우러진 결과였다.

현재는 어떤가. 부끄럽기까지 하다. 올해 6월 ILO 총회 기간에는 고용 및 직업에 있어 차별을 금지하는 협약 제111호의 이행 여부 확인을 위한 분석보고서 채택 권고를 받았다. 사실상 우리나라를 비정규·이주·여성 노동자에게 고용차별을 하는 국가로, 지금까지 무려 3차례나 국제적으로 공인받은 것이다. 2000년 이래 높아만 가는 국제 수준의 노동권 보호 수준을 우리나라만 따라가지 못한 탓이다.

다행스럽게도 노사정 합의의 주요 목적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개선”이다. 협약 제111호 이행 그 자체다. 그럼에도 합의문에는 정작 이에 대한 구체적 실천방안이 빈약하다. 비정규·이주·여성 노동자들을 위한 보호대책은 과연 무엇이 있었던가. (그 원인을 잘 알 수는 없지만) 아주 익숙해져 이제는 너무나 당연히 받아들이게 된 “아버지가 아들의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요지의 광고만 그 대책을 대신하고 있다.

국제적 기준을 벗어난 노동기본권 차별국가라는 오명을 벗어던지기 위해서라도 노사정 합의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비정규·이주·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을 최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노동(자) 차별을 과감히 걷어 내야 한다. 권중동 회장은 이 같은 차별 해소를 "DECENT WORK"라고 불렀다. 모든 노동자는 노동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노동의 기본가치”를 실현해야 한다. 이중구조도 이러한 틀 안에서 풀 수 있지 않겠나.

ILO 협약이 노동현장에서 갖는 의미를 되새기는 이번 토론회를 개최한 협회에 감사한다. 우리 사회 노동기본권이 더도 말도 덜도 말고 ILO 협약만 같았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 본다. 한국ILO협회 창립 2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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