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우리나라가 국제노동기구(ILO)에 가입한 지 25년이 되지만 ILO가 권고한 189개 협약 중 비준협약은 27개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ILO 185개 회원국 평균(지난해 말 기준 비준협약 42개)보다 적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73개)에 비해서는 3분의 1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국은 1991년 ILO에 가입해 지난해 6월 정이사국으로 선출됐다. 그럼에도 국제 위상에 걸맞지 않게 국제노동기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ILO협회(회장 권중동)는 창립 20주년을 맞아 23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 하나스퀘어강당에서 ‘한국 ILO 가입 25년의 과제’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한국ILO협회는 95년 10월 창립했다.

ILO 핵심협약 8개 중 절반만 비준

이승길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세미나에서 “오늘날 세계화 추세에서 노동 분야에 대한 국제기준을 준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한국 노동외교의 핵심 속성은 방어적 성격을 띠고 있다”며 “ILO 비준협약이 185개 회원국은 물론 선진국(OECD 회원국)에 비해 크게 적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밝혔다.

특히 우리나라는 ILO 핵심협약 8개 중 4개만 비준한 상태다. 우리나라가 비준하지 않은 강제근로에 관한 협약(29호)은 171개국이, 강제근로 철폐에 관한 협약(105호)은 167개국이 비준했다.

노동권의 기본이자 핵심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의 보호에 관한 협약(87호)은 147개국이 비준했는데도 한국은 아직 비준하지 않고 있다.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에 관한 협약(98호·비준국 156개)도 마찬가지다.

차별금지에 관한 협약(100호 균등보수에 관한 협약·111호 고용 및 직업에 있어서의 차별철폐에 관한 협약)은 비준했지만 남녀 차별과 정규·비정규직 간 차별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아동노동 금지에 관한 협약(135호 취업상 최저연령에 관한 협약·182호 가혹한 형태의 아동근로 철폐에 관한 협약)만이 그나마 지켜지는 협약이다.

이승길 교수는 “우리나라는 ILO에 가입한 후 교원·공무원의 단결권을 보장하고 복수노조를 허용하면서 일정 부분 국제기준에 맞게 노동관계법을 수정해 왔다”면서도 “한국의 경제적 위상과 ILO에서의 역할을 고려할 때 개선할 점이 많기에 노동법·노사관계를 국제기준에 맞게 혁신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속가능한 사회, 디센트 워크에서 찾아야

권중동 회장은 세미나에 앞서 열린 한국ILO협회 창립 20주년 기념식 기조연설에서 “인간의 가치는 노동의 역사와 더불어 발전하고 있다”며 “ILO는 189개나 되는 국제노동기준을 제시하고 비준과 시행을 독려하고 있는데, 한국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 회장은 “현시대는 인간다운 노동과 노동의 존엄성을 요구하고 있고 ILO는 이를 위해 디센트 워크(Decent Work, 양질의 품위 있는 일자리)를 요구하고 있다”며 “그것이 실현될 때 지속가능한 사회·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일하는 모든 사람이 자유와 공평 그리고 생활의 안전과 노동기본권을 보장받고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아니하는 인간다운 생산적인 노동”이라고 정의했다.

기무라 아이코 일본ILO협의회 이사장은 축사에서 “격차와 빈곤이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많은 사람이 일과 생활에 위협을 받고 있다”며 “디센트 워크야말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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