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효진 변호사(경기도의회)

30대 과로사 산업재해 신청 비율 최대,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한 열풍, 대한민국 행복지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27위….

세 가지 뉴스 속 현상에서 공통적인 원인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 노동자의 장시간 근로 문제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법정근로시간을 주 40시간으로 정했는데 예외적으로 12시간 연장근로를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는 이에 더해 토·일의 각 8시간 휴일근로를 허용하는 해석을 더하고 있다. 결국 실제 노동현장에서는 합법적으로 최장 주 68시간의 근로시간 적용이 가능하다. 통계치를 인용하자면, 2013년 기준 한국인 연평균 근로시간은 2천163시간으로 OECD 34개 회원국 중 2위이며 평균 1천770시간과 비교하면 연간 393시간 더 많다. 즉 대한민국 노동자는 2개월 이상을 더 일하고 있다.

장시간 근로는 근로자 건강을 위협하고 일·가정 양립 저해, 직업능력개발 기회 축소, 노동생산성 저하, 고용률 감소로 이어진다. 이제는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고서라도 해결해야 할 정책과제가 됐다. 어쩌다 대한민국이 이렇게까지 일만 하는 사회가 됐을까.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근로시간을 희생하며 장시간 근로가 노동문화로 굳어진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 이면에는 낮은 임금을 감추기 위해 복잡하고 왜곡된 임금체계를 만들어 내고 각종 수당으로 장시간 근로를 유인한 기업들이 있다. 더욱이 정부도 장시간 근로의 사회경제적 문제를 외면하고 법령 정비를 등한시한 채 경제성장이라는 미명 아래 현장의 불을 끄지 못하도록 부추긴 책임이 크다. 근로자 1인의 근로시간을 줄이면 그 자체로 근로자의 시간당 생산성이 높아질 확률이 높다.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공정 개선이나 설비투자 등에 자본을 투입해 더 높은 생산성을 달성할 수도 있다. 줄어든 근로시간을 대신할 신규인력을 채용하는 쉬운 방법도 있다. 주 35시간 근로제를 시행하는 프랑스나 연평균 근로시간이 1천388시간에 불과한 독일이 고용창출 목적에서 근로시간단축 논의를 시작했음을 상기할 수 있겠다.

이번 노사정 합의에서 휴일근로시간을 연장근로시간에 포함해 주당 근로시간을 총 52시간으로 제한하도록 해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시정을 시도한다고 한다. 하지만 단계적 시행과 특별연장근로 허용 등으로 얼마나 실효성 있는 시도가 될지 의심스럽다. 그래도 실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법·제도 정비 방안의 첫 단추가 끼워진 만큼 활발한 논의를 진행하고 더불어 행정단속 방안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임금 감소를 부담해야 하는 노동자들에게 이해를 구하고 근로시간단축을 위한 노사정의 공동노력이 필요함은 당연하다.

반세기 넘도록 방치된 장시간 근로 문제를 법령 정비로 한순간에 해결할 수는 없다. 너무 열심히 하루 종일 일하는 사람들과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 양 극단에 있는 상호 간의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한쪽 끝에서 막 벗어나 노동시장에 갓 진입한 청년들이 그동안의 왜곡된 장시간 노동 관행에 익숙해지지 않아야 한다. 복잡한 임금체계에 속아 자발적 연장근로와 생산성 저하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일하다 죽어 나가는 비극을 막고 상품화된 노동의 가치를 바로잡아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자. 해법은 근로시간단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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