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우리나라의 고용시스템 개혁과 노사관계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은 누구나 동의하는 바다. 그 둘을 묶어서 노동개혁이라고 칭할 수 있다. 분명 노동개혁은 이뤄져야 한다. 그 이유는 우리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제도와 현실의 부조응을 심하게 겪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실업과 노령빈곤, 노동시장 양극화, 저녁이 없는 삶 등은 다 그러한 부조응의 폐단들이다. 관건은 노동개혁을 어떤 내용으로, 그리고 어떠한 절차 내지 과정을 통해 이루느냐에 있다.

주지하듯이 권위주의 시대 한국의 국가는 대기업에게 다양한 혜택을 주면서 전략적으로 산업을 육성했다. 대신 기업은 개별 근로자들을 채용한 뒤 쉽게 해고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 퇴직금 제도를 강제해 종업원들이 퇴직 후 노후빈곤에 빠지지 않게 책임을 나누도록 만들었다. 한마디로 그 시기에는 성장과 일자리 그리고 복지 문제를 모두 다 고용을 통해 해결하려 했다. 그 결과 국민 중에 고용된 상태에 있는 이와 그렇지 않은 상태에 있는 이 간의 사회적 온도차는 심할 수밖에 없었다.

고용안정과 노동권 억압으로 이룬 경제성장

그러한 시스템이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보다 경제성장을 위한 노동력의 안정적 공급 때문이다. 국가가 복지를 제공할 여력과 의지가 없었던 터라 기업도 부를 창출해 그것을 일정하게 피고용인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 제공에 써 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 가지 제도는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를 거치면서 정리해고제·파견근로제 등의 도입과 국민연금의 확대 및 퇴직연금제의 도입 같은 노동-복지제도 개혁을 거치면서 일정하게 변모해 갔다.

과거 한국 노동자들은 일단 채용되면 쉽게 해고되지 않는 고용안정을 누릴 뿐 아니라 연차가 지나면 호봉승급과 임금상승의 혜택을 일정하게 받으면서 물가인상 속에서도 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길을 부여받았다. 그에 대한 대가로 그들은 한편으로는 장시간 노동 투입을 강요당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집단적으로 권리주장을 하는 기회, 즉 노조활동의 자유를 심하게 제약받았다. 기술력과 숙련이 낮은 상태에서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의 양적인 투입이 기업 초과이윤 창출의 중요한 수단인 상황에서 국가는 노동조합을 통한 집단적 보이스(voice)의 표출로 지속적인 노동투입이 제약되지 않게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후자를 위한 중요한 수단은 노조가입 요건을 특정기업에 고용된 사람으로 제약하는 것과 노동조합 활동을 기업 단위에서 하도록 묶는 것 등 다양한 방식이 동원됐다.

이후 한국 경제가 일정한 성장 수준에 오르고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노동자들의 권리의식은 성장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장시간 노동 투입의 문제, 노동조합의 활동제약 문제는 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면서 단행된 일련의 제도개혁을 통해 변화를 보였다. 주 40시간(주 5일) 근무제가 제도로 정착됐고, 노동조합 결성에 대한 여러 가지 속박이 일정하게 풀려 노조결성의 자유가 신장됐다.

정부, 개혁 과정서 노동-자본 평형감각 있었나

우리는 새로운 노동개혁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것은 미래 한국 자본주의가 어떠한 사회적 분업(social division of labor)을 추구하면서 지속가능하고 성원들이 행복한 사회경제시스템으로 나아가느냐를 결정하는 중차대한 과제다. 이는 필연적으로 갈등을 동반한다. 그 과정에서 상이한 이해를 갖는 노동과 자본 모두 과거 자신을 속박해 온 굴레를 벗어 버리면서 보다 많은 자유와 권리를 성취하고자 할 것이기에 그러하다. 국가는 이들의 이익추구가 사회적 필요 및 가치와 조화되는 방식으로 논의의 지형을 짜고 개혁 방향을 설정하는 데 역할을 해 줘야 한다.

최근 이뤄진 노사정 타협은 향후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업을 하고 일을 함에 있어 적지 않게 영향을 끼칠 다양한 조치를 담고 있다. 그것은 과연 어떠한 방향성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청년고용 창출력 증대와 노동시장 양극화 해결을 최대 목표로 삼는다고 하는데 과연 이번 타협안에 담긴 조치들을 통해 그러한 목표가 달성될 수 있을까.

주지하듯이 이번에 단행된 개혁논의의 저변에는 대기업이나 공기업의 정규직 유노조 사업장에 근무하는 조합원들이 누리는 권리가 과도하며, 그들이 제도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양보해서 그 재원으로 청년고용을 창출하겠다는 ‘기울어진 구도’가 깔려 있었다. 그리고 이번 타협은 정규직 노조원들을 대표하는 최고의 조직체로부터 그러한 양보를 받아 내는 것이 핵심이었고, 대체로 정부는 목표로 한 바를 이뤘다고 볼 수 있다.

타협안을 보면 대체로 기존 정규직 노동자들이 향유한 권리를 축소시키고 기업의 자유를 보다 보장하는 쪽으로 기울어진 내용이 두드러진다. 기존에 정규직으로 채용된 이들이 누린 해고로부터의 보호조치를 보다 완화시킨 점, 근로시간단축을 미온적인 수준에서 단행한 점, 비정규직을 보다 길고 폭넓게 사용하도록 한 점, 그리고 기존에 고용돼 있는 근로자들에게 불이익이 되는 조치를 기업이 그들 대표체의 동의가 없이도 단행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둔 점 등이 대표적이다. 또 정년연장이나 통상임금 규정 등 이미 노동시장에 새롭게 던져진 주제들이 기업에 심한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하려는 목표도 함께 담겨 있다.

산업재해로 규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확장한 점이나 실업자가 받을 수 있는 지원을 일정하게 확대시킨 점 등은 분명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측면을 담고 있긴 하지만 기업에게 선물로 제공된 확장된 자유의 큰 함의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약한 것들이다.

노동권 약화 노린 노동개혁 '잘못된 방향'

노동개혁 방향은 일하는 사람들이 안정되고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시키고 그것이 기업하는 사람들의 이해와 최대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쪽이어야 한다. 그것은 응당 일하는 이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조직체의 역할이 강화되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선용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까지 포함돼야 한다.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98년 사회협약의 경우 기업에게 유리한 결정적인 조치들뿐 아니라 노동의 조직적 권한과 사회적 안전망을 대폭 강화하는 조치들이 담겨져 있었기에 그것은 그야말로 ‘대타협’이라고 불릴 만한 것이었다. 그에 비하면 이번 타협은 조직노동이 내준 것에 비해 얻은 것이 훨씬 적은 기울어진 타협이다. 이를 두고 ‘대타협’이라고 칭하기도 사실 머쓱하다.

게다가 이번 타협의 본래 목적인 청년고용 확대와 관련한 직접적인 방안들이나 비정규직 남용을 제한하는 조치들은 매우 추상적이고 미온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기업에게 해고의 자유를 확대시키고 노동조합의 간여로부터 벗어나는 조치들을 쉽게 단행할 수 있도록 하고 비정규직의 사용기간을 늘려 주는 등의 조치들이 과연 현실에서 선용돼 청년고용 창출과 양극화 해소로 이어질까.

결국 이번 타협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타협 자체보다 공을 쥐게 된 정부의 노력과 의지가 더욱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보호의 담벼락에 구멍을 내되 후벼 파지는 않겠다”는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할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mjnpark@kl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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