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선근 공공교통네트워크 운영위원장

지난해 5월2일 서울메트로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열차가 충돌하는 대형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서울시와 서울메트로 경영진의 정책 실패에 기인한 사고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지하철에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려면 기존 시스템과 운영상 문제는 없는지 기술적으로 검토하고 안전 측면에서 철저한 사전검증을 해야 한다.

그런데 자동열차운전장치(ATO) 신호시스템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서울시와 서울메트로 경영진은 경영합리화 및 비용절감 중심으로 결정하고 추진했다. 서울메트로 2호선은 새롭게 도입한 ATO 신호시스템과 기존 자동열차정지장치(ATS) 신호시스템을 일정 기간 혼용해 사용하는 신호체계다. 철도 전문가들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기술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시스템"이라고 입을 모았다.

두 가지 신호시스템 혼용 이후 수많은 장애와 신호고장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끝내 시민 400여명이 중경상을 당하는 대형사고로 이어졌던 것이다. 새로운 신호체계 도입 과정에서 정책결정 오류는 스크린도어 도입 과정에서도 반복된다. 스크린도어 도입을 추진하면서 충분한 기술적 검토와 안전문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결정한 탓에 지하철 안전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상명하복·책임추궁 조직문화 바뀌어야

한국의 직장문화에서 가장 큰 병폐는 상명하복의 일방향 조직문화다. 서열 위주 유교문화·군대문화가 우리 사회에 아직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군대문화는 상명하복의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하며 무슨 일이든지 빨리빨리 하는 문화를 말한다. 상명하복의 일방주의 조직문화는 지하철처럼 시민안전과 서비스를 담당하는 네트워크산업에서 안전에 문제를 일으킨다.

지하철은 여러 부서에 있는 많은 직원들이 협업을 통해 안전을 지키고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렇기 때문에 경영진의 일방적인 지시와 지침만이 아닌 상하 양방향 소통이 필요하다. 역무·승무·차량을 비롯해 각종 기술(전기·신호·통신·궤도 등) 분야와 관제, 본사가 수평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해야 한다.

하지만 지하철의 조직문화는 어떤 문제점이 나타나면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책임을 추궁하는 문화다. 이런 조직문화는 사고가 발생하면 관련된 직원들에게 책임을 추궁하기 때문에 원인과 문제점을 은폐하도록 유도한다.

이런 조직문화는 정확한 원인규명과 합리적인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게 한다.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안전(조직) 문화를 '책임추궁'에서 '원인규명'으로 바꾸기 위해 사고 발생 때 사실을 밝히면 인센티브를 준다. 정확한 원인규명을 할 수 있어 사고를 줄이는 요인이 된다. 또한 항공과 철도에서 조직문화가 수평적일수록 안전과 서비스 질이 높다는 많은 연구 결과를 반영해 수평적 조직문화로 이끌기 위한 정책을 펴고 있다.

상왕십리역 열차충돌사고와 강남역 사고의 경우 많은 장애와 고장으로 위험성을 사전에 인지했음에도 예방하지 못했다. 현장 중심 안전관리와 안전시스템 개선이 필요한 이유다. JR동일본철도는 노사공동 안전활동을 통해 승객 안전과 서비스를 개선했다. 일본 국유철도는 1987년 6개의 여객회사와 하나의 화물회사로 분할 민영화됐다. JR동일본철도는 6개의 철도여객회사 중 7천600킬로미터를 운영하는 규모가 큰 회사다. JR동노조는 승객 안전과 서비스를 개선하는 활동과 관련해 노조도 막중한 책임이 있다고 보고 철도안전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교통서비스 생산자·이용자 참여 안전거버넌스 시급

이러한 다양한 노사공동 철도안전 활동은 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에서 기적 같은 일을 만들어 냈다. 도쿄를 중심으로 일본 동북지방 열차운행을 담당하던 JR동일본철도는 20미터가 넘는 대형 쓰나미로 인해 철도선로 수백 킬로미터와 수백 개의 역사, 많은 차량이 바닷물에 쓸려 나가는 피해를 당했다. 그렇지만 철도를 이용하던 많은 승객들 중에서는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사상자 발생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은 JR동일본철도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자기주도로 철도안전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더욱 안전하고 편리한 지하철이 되기 위해서는 교통서비스를 생산하는 현장 노동자를 대변하는 노동조합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용자인 시민들의 대표인 장애인단체를 포함한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안전전문가가 참여하는 노사민정 안전거버넌스를 만들어야 한다. 서울시가 서울모델에서 제안한 서울지하철 노사민정 안전위원회를 조속히 구성하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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