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동희 공인노무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최근 감정노동이 화두다. 사회학뿐만 아니라 인접 학문에서 이와 관련한 보호방안과 연구가 쏟아지고 있다. 안전보건공단은 ‘감정노동 근로자의 건강관리방안 연구’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일부 서비스 사업장에서는 감정수당이나 휴가를 담은 단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일부 국회의원은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을 제출해 놓은 상태다. 최근 서울시는 공공부문 감정노동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대체적인 연구나 현황, 법안은 감정노동자에 대한 ‘보호’ 관점에서 출발한다. 고객이나 제3자의 폭행이나 폭력·성희롱 같은 가해로부터 감정노동자를 보호하는 방안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감정노동이 보호 개념에 국한된 것인지, 주된 가해 대상이 ‘고객이나 제3자’인지, 그리고 적극적 권리로서 감정노동에 대한 거부권이나 사용자에 대한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노동법에는 감정노동에 대한 별개의 개념이나 구분이 없다. 근로기준법은 제2조1항3호에서 “근로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감정노동은 정신노동 개념에 포함돼 해석되고 있다.

법원에서 감정노동에 대한 의의나 정의가 쟁점이 된 것은 서울남부지법 사례가 유일하다. 해당 사건은 SK텔레콤 고객센터 노동자가 감정노동과 사과 강요, 징계 경고로 인해 우울증이 발생해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안이다.

1심에서는 “배우가 연기를 하듯 타인의 감정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노동, 이른바 감정노동”이라고 규정한 후 회사의 보호의무 위반행위에 대해 70% 과실을 인정했다(서울남부지법 2012가단25092). 항소심에서는 원심과 달리 상병 발생과 관련해 사업주가 보호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서울남부지법 2013나8125 판결).

법원도 근로계약상 보호의무를 사용자의 주요한 의무로 파악하고 있다. 즉 “사용자는 근로계약에 수반되는 신의칙상의 부수적 의무로서 피용자가 노무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생명·신체·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물적 환경을 정비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야 할 보호의무를 부담하고, 이러한 보호의무를 위반함으로써 피용자가 손해를 입은 경우 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대법 97다12082, 대법 96다53086)고 판시하고 있다.

노동자는 사용자에 대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자신의 생명·신체·건강을 해치는 행위나 환경과 관련해 필요한 조치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그리고 이런 권리를 제한하거나 권리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은 사용자에게 채무불이행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사용자의 불이행 조치가 산업안전법 위반일 경우 형사책임도 물을 수 있다. 노동권 자체에 사업주에게 적극적으로 인격권과 건강권을 요청할 수 있는 권리가 내포된 것으로 봐야 한다.

감정노동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인격이나 감정을 제한하거나 억압하는 행위, 그와 같은 조치나 사용자의 방임행위, 적극적 보호조치를 하지 않아 건강을 해치는 행위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단순히 심신이완 프로그램이나 감정수당, 불충분한 가이드라인에 머물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단체협약 체결이나 사업장 환경개선, 나아가 법령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감정노동의 주요 발생요인은 고객이나 제3자뿐만 아니라 사업장의 억압적 구조 또는 극심한 성과주의 관리 시스템, 사업주와 관리자의 폭행 같은 전근대적 노무관리에 기인한다. 실제 감정노동 관련 정신질환 발생 사례를 분석하면 이런 문제들이 드러난다.

결국 감정노동 발생요인에 초점을 맞춰야 실마리가 풀린다. 보호의 관점에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특히 제669조 직무스트레스에 의한 건강장해 예방조치)이나 가이드라인 제정, 감정노동의 산재보험법 명시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보호의 관점을 뛰어넘어 노동자 권리로서 인격권과 건강권을 실현할 수 있는 관점으로 시급히 전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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