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은 대중의 심리를 파악하고,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속설이 있다. 대중의 심리는 시대적 상황과 조건 그리고 권력관계 지형에 따라 형성된다. 정치인은 목표 달성을 위해 대중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이때 정치인이 일으키는 대중의 감정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정치인이 일으킨 호의와 감동, 관대함은 오랫동안 남지 않으며 대중의 행동을 격발하지 않는다. 반면 정치인이 대중에게 심는 증오는 이와 다르다. 집단적 증오는 참을수록 커지고, 끝내는 폭발적 행동으로 나타난다. 정치인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증오의 감정을 이용하는 것은 이러한 까닭에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최근 발언도 이런 유형이다. 그는 지난 2일 국회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한 뒤 기자들과 만나 "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 등 대기업·귀족노조가 매년 불법파업을 일삼고, 공권력을 투입하면 (노조가) 쇠파이프로 (전경들을) 두들겨 팼다"며 "공권력이 그들에 대해 대응하지 못해 우리나라는 여태껏 (국민소득) 3만불을 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31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그는 "현대차노조는 청년일자리 창출을 위한 임금피크제는 막으면서 불황에 임금인상과 성과급 지급, 65세로의 정년연장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기득권 노조들이 언제까지 노동개혁을 외면할 것이냐"고 비난했다.

김무성 대표가 연일 노동계를 향해 쏟아 내는 말에는 증오의 감정이 배어 있다. 아니, 김무성 대표는 대기업 노동조합에 대한 집단적 증오를 격동시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하반기 국정과제로 노동개혁을 언급했다. 김무성 대표는 '해결사'를 자처하면서 그 화살을 노동계에 돌리고 있다. 그는 대기업 노동조합이 노동개혁의 걸림돌이라면서, 양극화와 청년실업 책임을 노동조합에게 떠넘겼다. 즉 "소수 대기업 노동조합의 이기심 탓에 다수 국민이 저성장과 경기침체에 허덕이고 있다"는 식의 집단적 증오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김무성 대표의 발언은 청년실업과 경기침체 책임이 정부와 여당에 있지 않다는 식으로 들린다. 이런 면에서 보면 김무성 대표는 유능한 정치인일 수 있지만 나라를 이끌어 가는 여당 대표로는 함량 미달이다.

문제는 김무성 대표가 사실관계마저 왜곡했다는 점이다. 김무성 대표는 "노조가 쇠파이프를 휘둘러 전경들의 눈을 실명시켰다"고 말했는데 이는 근거 없는 발언으로 드러났다. 파장이 커지자, 김 대표 스스로 해당 발언을 철회하는 소동을 벌였다. 왜곡된 발언은 또 있다. 김무성 대표의 언급처럼 현대차지부가 임금피크제를 막고 있는 것일까. 이는 사실과 다르다. 현대차는 이미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고 있다. 현대차지부 단체협약에 따르면 조합원 정년은 만 58세가 되는 해의 12월31일로 하되, 조합원 본인이 원하고 건강상 결격사유가 없을 경우 2년간 정년이 연장된다. 연장된 첫해(만 59세)에는 전년도 기본급의 100%, 이듬해(만 60세)에는 기본급의 90%를 받는다. 이처럼 현대차는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고 있음에도 김무성 대표는 거짓말을 했다.

김무성 대표의 주장대로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면 청년일자리가 창출될까. 임금피크제는 기존 노동자의 정년을 연장하면서 고용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다. 정년을 65세로 연장한 일본에서 시행된 제도다. 정년을 연장한 유럽의 경우 노동시간단축을 통해 기존 노동자의 고용을 유지했다. 유럽과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임금피크제와 노동시간단축은 기존 노동자의 고용을 유지하는 제도이지, 청년일자리를 창출하는 제도는 아니다. 그런데도 김무성 대표는 다른 나라 제도를 모방하면서, 엉뚱하게 청년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선동한다. 임금피크제를 실시해 청년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주장이야말로 아버지의 임금을 깎아 자식의 일자리를 만드는 구멍가게 식 셈법에 불과하다.

청년일자리를 만들려면 재벌을 개혁해야 한다. 30대 재벌그룹에 쌓여 있는 사내유보금이 710조원을 넘었다. 재벌 대기업은 감세를 포함한 온갖 지원을 받으면서도 청년일자리 창출에는 매우 인색하다.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쌓아 둔 재벌그룹의 곳간부터 열어야 한다. 김무성 대표도 지난 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재벌개혁을 언급하지 않았는가.

진정으로 노동개혁을 원한다면 말을 가려서 해야 한다. 특정 대상에 대한 증오는 국민통합보다는 분열, 세대화합보다는 갈등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앞뒤 가리지 않고 나오는 대로 말을 쏟아 내면 후유증이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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