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동훈 공인노무사(노무법인 현장)

요리사는 칼을 새로 구입하면 잘 때도 그 칼을 쥐고 잔다고 한다. 어느 야구선수는 새 글러브가 익숙해질 때까지 자신의 손에 맞게 별도의 비용을 들여 길들이기 작업을 맡기기도 한다. 대가로 불리는 유명한 요리사가 TV에 출연해 익숙하지 않은 도구로 요리를 하다 손을 베는 장면도 있었다. 장인이나 대가들이 수십 년에 걸쳐 같은 작업도구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바로 익숙함 때문이다.

버스노동자들에게 고정노선과 차량이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버스회사에 입사하면, 수습기간을 거쳐 1~2년 정도 예비기사로 일을 하게 된다. 예비기사는 정해진 노선도, 정해진 차량도 없다. 빠진 고정기사의 노선과 차량이 그날그날 자신의 노선이 되고 차량이 된다. 그러다가 퇴사자가 있거나 새 차량이 들어오면, 예비기사 중 오래 근무한 노동자에게도 고정노선과 차량을 갖게 되는 기회가 생긴다.

예비기사에게 고정기사 발령은 그 자체가 곧 승진이다. 동료들에게 한턱을 내거나 가족이나 지인에게 어깨 한번 펴는 날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최근 출고된 차량이나 자동변속기가 장착된 저상버스를 배차받는 것이 장기근속 버스노동자들에게는 두 번째이자 마지막 승진이 될 수 있다.

최근 중앙노동위원회가 “임금·근로시간 등 근로조건이 유사하다고 해도 차량 및 노선의 수시 변동으로 예비기사에게 상대적으로 피로감 내지 긴장감이 가중되고, 달리 승진제도가 없는 버스기사에게 고정기사로의 전환은 사실상 가장 중요한 근로조건 내지 근로형태라 할 수 있다”고 판정한 이유다.

그런데 일부 버스회사에서 인사명령이나 징계의 종류로 고정기사를 예비기사로 발령 또는 징계하는 사례가 나온다. 특히 대부분 버스회사는 예비기사에서 고정기사로 전환하는 절차가 마련돼 있지 않다. 그저 관행적으로 입사순서에 따라 배정할 따름이다.

그러니 고정기사에서 예비기사로 강등된 버스노동자가 다시 고정기사로 복귀할 수 있는 절차나 기준을 두고 있는 회사는 더욱 드물다. 결국 회사에 밉보인 고정기사가 난데없이 예비기사로 강등되고, 언제 다시 고정기사로 복귀할 지는 알 수 없다. 회사의 재량이다. 중징계인 정직조차 정직기간이 끝나면 당연히 복직되는 것과 비교하면 예비기사로 강등하는 것은 버스노동자들에게 가혹한 징계임이 분명하다.

예비기사 발령이나 징계가 부당하다고 주장하면, 회사는 노선이나 차량 변경이 있을 뿐 근로시간이나 임금 손실은 없으므로 인사 재량권을 남용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정말 그럴까.

고정기사의 출퇴근시간은 운행순서에 비례해 순차적으로 정해진다. 그러나 예비기사의 출퇴근시간은 들쑥날쑥할 수밖에 없다. 길게는 2시간 앞당겨지기도 하고 늦춰지기도 한다. 생활리듬이 깨질 수밖에 없다. 노선이 변경되면 새로운 노선의 정류장이나 길을 새로 익혀야 한다. 수시로 바뀌는 노선은 승객의 안전과도 직결되는 중대한 문제다.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 대목이다. 같은 차량이라도 연식(年式)이나 기존 운전자의 습관에 따라 변속기나 제동장치 등 차량 상태는 미세하게나마 차이가 있다. 그 차이가 운전자에게 얼마나 예민하고 중대한 노동조건인지를 이해하고 공감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걸까.

아직 노동위는 이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태도의 판정을 내리고 있다. 사안마다 특수성이 있겠지만, 예비기사로 강등되는 것이 버스노동자들에게 얼마나 중대한 노동조건인지에 대해 최소한의 고민과 공감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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