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명색이 노동개혁의 내용을 논의하고 합의하려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다. 그런데 의제가 초라하기 그지없다. 임금피크제를 통한 청년고용 늘리기? 나이 든 정규직 노동자의 월급을 500만원 깎았다 치자. 대한민국 기업 어디에 500만원으로 청년노동자 2명을 월급 250만원에 채용한다는 규정을 갖고 있나. 사회주의 계획경제나 통제경제도 아닌데 그것을 어떻게 법으로 강제하겠는가.

사회적 대화를 통해서라고? 대화는 대등한 위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대등함은 힘의 균형을 전제로 한다. 김대중 정부 초기 노사정위원회가 가능했던 것은 노동조합이 힘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친노동자 정부 따위를 노사정위 전제조건으로 꼽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외부적 제도나 조건보다 내부 역량, 즉 노동조합의 힘이다. 물론 힘에는 물리적 동원력뿐만 아니라 정책 입안능력, 정책 실행능력, 조직 운용능력, 인력 경영능력, 재정능력이 포함된다.

또 다른 의제는 취업규칙을 사용자 마음대로 바꿀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인데, 이는 19세기 격렬한 노동자 투쟁을 통해 확립된 집단적 자치에 기반한 노사관계 토대를 허물려는 시도다. 왜 단체교섭권이라는 말은 있는데, 개인교섭권이라는 말은 없는가. 답은 간단하다. 개인교섭은 교섭이 아니라 노예계약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단결해 집단·단체로 모여 사용자와 교섭할 때만이 대등한 위치에서 협상을 할 수 있다. 그 토대를 흔들겠다는 발상이 취업규칙 제도를 변경하려는 배후에 도사리고 있다.

명실상부한 사회적 대화기구로서 노사정위가 논의해야 할 노동개혁 의제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가장 시급한 것은 국제기준에 못 미치는 노동권을 개선하는 일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은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에 관한 국제협약도 비준하지 못한 나라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임금과 노동조건에서 상대적으로 나은 것은 그들이 결사의 자유를 누리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비정규 노동자들이 그렇지 못한 것은 여러 이유가 있으나,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이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은 김대환 노사정위원장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따져야 한다. 아니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해 따져야 한다. 도대체 선진국 대한민국은 언제 ILO 협약 제87호(결사의 자유)와 제98호(단체교섭권)를 비준할 것이냐고. 강제노동 금지 협약 제29호와 제105호를 언제 비준할 것이냐고. 김무성·문재인 대표를 만나 따져야 한다. 전경련 회장과 경총 회장을 만나 따져야 한다. 조중동을 비롯한 언론사 기자들을 불러 놓고 따져야 한다.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에 관한 ILO 협약도 비준하지 않은 나라에서 무슨 임금피크제며 무슨 취업규칙 변경이냐고. 큰 그림 없이 잔가지만 잡고 야단법석 떨지 말라고 따져야 한다.

그 다음 의제는 근로기준법을 모든 사업장에 적용하는 것이다. 한국전쟁 때 만들어지고 40년도 전에 전태일 열사가 자기 몸 불사르며 지키라 외친 근기법이 1인당 GDP 3만달러의 대한민국에서 왜 무용지물인지 따져야 한다. 노동부가 채용한 근로감독관이 부족하다면,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에게 사법경찰권을 주고, 노동조합 간부에게 명예감독권을 부여해서라도 근기법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 반세기도 전에 만들어진 근기법조차 지키지 못하는 업주라면 대한민국에서 사업을 할 수 없도록 하는 합의를 김동만 위원장은 만들어 내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 경영참가에 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을 개선·강화함과 동시에 중장기적으로 노동자 이사 도입을 요구해야 한다. 노동자 이사제는 재벌개혁을 위한 출발점이다. 해고와 채용이 자유로운 덴마크는 노동자 이사제로 유명하다. 덴마크 정도의 노동유동성을 원한다면 노동자 이사제는 필수 코스다.

끝으로 노동부와 기획재정부, 노사정위 공무원을 상대로 임금피크제를 시범운용하자고 요구해야 한다. 장관이 마음대로 취업규칙을 바꾸는 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해야 한다. 노동부와 기획재정부·노사정위에서 이뤄진 성과를 바탕으로 임금피크제 도입과 취업규칙 변경 여부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

기왕 들어가는 노사정위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진정한 노동개혁의 길, 비정규직과 청년을 위한 진정한 노동개혁의 길이 무엇인지 허심탄회하게 폭넓게 진지하게 논의해 보시라. 지질한 잔챙이 이슈인 임금피크제나 취업규칙 말고 통 크게 허심탄회하게 진짜 쟁점을 토론해 보시라. 대한민국 노사관계 제도의 그랜드 디자인을 짜시라. 총연맹 위원장은 그래야 한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