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자들의 입에서 놀라운 얘기가 잇따라 나왔다. 병원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성희롱, 상상을 초월하는 장시간 노동에 대한 얘기다. 24일 간호사·치료사·의료기사들이 함께 병원노동자들이 현장에서 겪고 있는 폭력과 불합리한 업무구조를 증언하는 집담회가 열렸다. 이날 집담회에는 공공병원과 사립병원, 대형병원과 중소병원을 대표하는 병원노동자 5명이 참석했다. 사안의 민감성 탓에 집담회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매일노동뉴스>가 비공개 집담회를 지상중계한다. 병원명과 참석자는 비실명으로 처리한다. 참석한 국립병원 간호사는 A로, 대학병원 간호사는 B로, 대학병원 의료기사는 C로, 요양병원 물리치료사는 D로, 사립대 간호사는 E로 표기한다. 사회는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이 맡았다.

병원 직무스트레스 유발자 '야간노동, 책임전가, 군대문화'

사회 : 각자 현장에서 받는 직무스트레스의 가장 큰 요인을 꼽는다면.

A : 나이트 근무(야간근무, 통상 밤 11시~오전 7시)다. 야간근무 자체도 힘든데 오버타임이 기본이다. 다음날 진행될 검사나 환자 처치 준비를 이때 다 해놓아야 해서 일이 정말 많다. 또 요즘은 '가만 있는 것은 노는 것'이라는 분위기라 관리자들의 제재가 심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안쪽 간호사실 책상에 엎드려 잠깐 쪽잠 자는 것도 어렵다.

B : 환자가 뭘 요구했는데 의사랑 즉각 연결이 안 돼서 대처를 못해 줄 경우다. 보통 환자 한 명이 컴플레인을 시작하면 다른 환자들도 줄줄이 한다. 의사 소견 없이는 간호사가 임의로 해줄 수 있는 게 없는데 책임은 모두 전가된다. 이때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다.

C : 윗선의 부당한 지시다. 의사가 진료도 안 하고 검사를 시킬 때가 있다. 일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업무지시를 받은 직원들은 공범이 되는 거다. 환자들이 이 검사 왜 하느냐고 물어보면 정말 난감하다. 저희 어머니도 무릎에 물이 차서 병원 왔는데 허리뼈부터 발끝까지 이유도 모르고 검사를 받은 적도 있었다. 의료기관평가인증시기 시간외근무도 문제가 크다. 이때는 오프(휴무) 직원들도 불려나와 '사복조'로 동원된다. 사복 입고 보호자를 가장해 병원 이곳저곳에 상주하는 건데, 인증팀 동선 보고하고 인증팀 오기 전에 간단히 청소도 해놓고, 인증팀이 병원 어떠냐고 물어보면 좋다고 대답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니 인증시기가 다가오면 그때 맞춰서 임신하거나 휴직하는 직원들도 종종 있다.

D : 저희 병원은 군대문화가 정말 세다. 매년 20대 초반 인턴들이 15명씩 들어오는데 초반 3주간 정신교육을 받는다. "낮은 연차 직원들은 말을 아끼고 생각을 아껴라. 동기와 감정교류를 하지 말아라. 상사를 사랑하라"는 말들을 반복적으로 듣는다.

야간근무 뒤 과로사, 응급실에서 중상

사회 : 병원노동자들이 호소하는 대표적 고충이 장시간 노동과 과로다. 어느 정도로 심각한가. 또 일을 하면서 건강권이 심각히 침해를 받은 사례도 있나.

C : 얼마 전 15년차 간호사 1명이 나이트 근무 직후 사망했다. 몇 년 전에 허리디스크 수술을 했는데 최근 계속 허리 통증이 심해서 진통제로 버텨 가며 일을 했다. 하필 부서장이 유난히 직원들을 쥐어짜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몸도 힘들고 스트레스도 높은데 최근 신규간호사 교육업무까지 억지로 떠맡았다고 하더라. 그 사람이 이틀 연속 나이트 근무를 하는데 물도 못 마실 정도로 아파하는 것을 모두가 지켜봤다. 그런데 치료 받으러 가라고 말을 못한 거다. 원래대로면 다음날 아침 8시에 근무가 끝나야 했는데 9시 넘어 끝나니까 진료도 못 받고 바로 집에 갔는데 결국 사망했다. 그런데 사측이 그러더라. 그 사람의 체력이 떨어졌던 거 아니냐고. 개인이 건강 관리를 못해 죽었다는 거다. 15년간 일하면서 직무능력을 검증받았던 사람이 죽는 것도 모르고 일했는데 그것을 어떻게 개인 책임으로 돌리나. 결국은 병원 직원이 죽을 정도로 아파도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없고, 직무스트레스가 극에 달해도 상담받을 곳이 없었던 게 이런 일을 초래했다.

A : 내가 25년차 간호사인데 그동안 병가를 딱 하루 받았다. 예전에는 병가를 쓰면 그 다음해 연가에서 까기도 했다. "죽을 거면 병원에 와서 죽어라. 일하다 죽어라"고 말하는 데가 병원이다. 인력이 없으니 누구 빠지면 안 돌아가니까. 동료 간호사가 임신부였는데 입덧이 너무 심해 얼음물만 마시면서 근무를 했다. 그런데도 쉴 수 있게 업무를 빼주지 않았다. 사람이 부족하니까. 사람이 안 죽어서 다행이지, 못할 짓이다.

D : 얼마전 남자 물리치료사 한 명이 양 손목 인대가 파열됐다. 물리치료사는 하루 8시간 동안 환자 10~15명에게 물리치료를 해 줘야 한다. 환자 중에는 몸을 제대로 못 가누는 분들도 많아 몸을 잡아 줘야 한다. 그러다가 다친 건데 손상이 심각해서 나중에 다시 치료사 일을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병원측은 산재 신청을 안 해주더라. 개인 부주의로 다쳤다는 이유다.

B : 우리 병원에서도 응급심폐소생술 환자를 혼자 조치하던 간호사가 손가락이 거의 잘려 나간 적이 있었다. 약물 앰플 수십개를 써야 하는데, 급하니까 앰플을 맨손으로 따다가 손가락이 잘린 거다. 나중에 봉합수술을 받게 했는데 결국 손가락이 기형이 됐다. 그래도 공상처리도, 장애 인정도 못 받았다. 간호사들은 아프다는 말을 잘 못한다. 일종의 직업병인데, 아프다는 말을 들어 주는 게 직업이니까 그 소리 안 하는 게 서로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A: 병원들이 대부분 산재 대신 병가나 공상으로 처리해 버리면서 숨기는 데 급급하니까 문제가 안 고쳐진다. 문제를 드러내는 게 큰 사고를 줄이는 기본인데….

병원, 폭언·성폭력 사각지대?

사회 : 병원에서 폭언·폭행·성희롱 문제도 자주 발생한다. 실태가 어떤가.

B : 수술실에서 의사들의 폭행이 가장 많이 일어난다. 응급상황에서 손발이 안 맞거나 하면 가장 위계가 낮은 간호사한테 욕설을 하거나 의료기구를 던지는 거다. 동료 간호사들이 묵인하는 건 심각하다. 폐쇄된 조직에서 오랜 기간 그런 폭언·폭행에 노출돼 있으니 무감각해진 거다. 결국 조직적 은폐가 일어난다.

A : 의사들 사이에서 간호사들 군기를 잡는 문화가 있다. 돌아가면서 병동 간호사 스테이션(대기실) 가서 트집 잡아서 물건 집어던지고 난리쳐서 기선 제압하고 오는 거다. 환자에게 폭행을 당하는 사례도 많다. 나이트 근무 중에 환자에게 맞거나, 환자한테 "너 밤길 조심해라, 내가 성폭행해 버린다"는 폭언을 당한 경우도 있다. 그래도 공론화를 못한다.

B : 환자들이 다 보는 중환자실 앞에서 의사가 간호사 머리채를 잡고 폭행한 사례도 있었다. 비정규직의 경우 성폭력에 더 쉽게 노출된다. 얼마 전에는 신규간호사 2명이 노래방에서 의사에게 유사성행위 수준의 성추행을 당했다. 계약직 간호사들이었다. 계약직은 팀장 추천을 받아야 정규직이 되니까 팀장이나 의사들이 따로 불러내고 술자리에서 허리 끌어안고 그러는 거다.

D : MT에서 여직원들 죽 세워 놓고 외모 순위를 매기거나 춤추기를 시킨다. 남직원 얼굴에 호일을 붙인 뒤 여직원들이 그 위에 입술 모양을 선명하게 만들라고 하거나, 남직원 몸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여직원들이 입으로 불어서 떼게 하는 게임을 시키기도 했다. 일상적인 성희롱도 심하다. 환자들 치료하고 있는데 관리자가 와서 "너 요즘 엉덩이 커진 거 같다", "어제 남자친구랑 어땠어"라고 하는 식이다. 그러다가 한 관리자가 직원에게 "너희 집에 가서 같이 자자", "그런 바지는 남친이 벗기기 좋으라고 입고 다니는 거냐"는 말까지 해서 노동부에 진정을 냈다.

병원, 왜 유독 폭력에 입 다무나

사회 : 여러 현장에서 폭언이나 성폭력 사건이 공개되는데 유독 병원에서만 얘기가 잘 안 나온다. 그 이유는 뭔가.

B : 병원 시스템이 수직적인데 업계도 좁다 보니 일이 터지면 업계에 다 소문이 나는 분위기가 있다.

E : 병원은 불특정 다수가 오가는 공간이다 보니 이미지가 훼손되면 파장이 크다. 노조도 그런 문제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병원 내 노사관계도 있고.

A : 드러내는 것 자체도 수치스러운데 불이익도 걱정해야 한다. 사건이 외부로 노출되면 가해자뿐 아니라 주변 관리자들도 다 책임을 져야 하는 분위기다. 심지어 가해 의사 주변 의사들까지 '나도 원장 눈 밖에 나는 거 아닌가' 하고 겁을 먹을 정도니까.

C : 의사가 처방 오더를 내리면 아래에서 수행하는 구조가 그대로 병원 조직문화가 됐다. 위쪽 결정단위만 있고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거나 직종을 아우르는 소통구조가 없다. 그냥 통보식이다. 이런 가부장적, 남성우월적 문화를 타파해야 한다. 이런 문제도 공론화해야 한다.

A : 이런 문제가 해결되려면 일단 인력 충원, 그리고 인간적 대우를 충분히 하고 직업적 자존감이나 소명의식을 채워주는 곳이 돼야 한다. 유휴간호사들이 60%나 있는 이유는 병원이 비인간적이고 매력적이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D : 노동법이라도 잘 지켜졌으면 좋겠다. 재활치료사들은 큰 병원에서는 수요가 없어 대부분 중소 개인병원에 간다. 그러니 노동법을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인권침해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대책도 없는 경우가 많다.

E : 병원의 영리추구를 제어하지 못하면 의사들의 권위를 못 깬다. 의사 권위가 높아진 이유가 환자 주머니에서 돈 나오게 하는 존재라는 거다. 예전에 우리 병원에서 간암수술 권위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의료기구를 바닥에 집어던지는 통에 간호사가 다친 일이 있었다. 병원이 그러더라. "그 의사 내보내면 건당 수천만원짜리 수술을 누가 하냐, 안 된다"고. 병원 구성원들이 평등한 관계가 되려면 이런 수익 중심 의식을 버려야 한다. 또 병원 분위기나 노동조건이 좋아야 직무스트레스나 이직률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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