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묵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기업의 고령자 퇴출프로그램에 제동을 거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고령노동자의 자발적 퇴직을 유도하려는 목적으로 시행된 인사발령은 무효라고 봤다.

서울남부지법 민사13부(진창수 부장판사)는 하나대투증권 노동자 3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전직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1일 밝혔다.

하나대투증권은 2010년 5월 간접투자상품의 일종인 랩(wrap) 영업을 활성화한다는 명분으로 랩영업부를 신설했다. 랩영업부에는 50대 중·후반 부장·부부장·차장급 고령 노동자가 주로 배치됐다. 이들은 △기본급 감액을 위한 회사의 직군전환 요구 또는 명예퇴직 요구에 불응하거나 △노동조합 활동 전력이 있거나 △30년가량 근무한 장기근속자였다.

회사측은 당시 “신설 부서의 정착을 위해 연륜 있는 직원들의 협조가 필요하다”며 인사조치를 단행했다. 그런데 정작 영업에 필요한 고객상담실이나 사무집기·보조인력은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소송을 낸 노동자들은 랩영업부로 옮긴 뒤 실적 저조를 이유로 인사관리파트로 소속이 바뀌었고, 실적 부진을 이유로 또다시 대기발령 명령을 받았다. 소속이 바뀌는 사이 이들의 연봉은 50% 수준으로 낮아졌다.

더구나 소송 과정에서 랩영업부 팀장이 2012년 “랩영업부의 구성은 명예퇴직·직군전환 거부자들을 정상적인 업무환경이 아닌 곳에 배치해 퇴직을 유도하는 것”이라는 취지의 내부 업무보고서를 작성한 사실까지 드러났다.

재판부는 “전직의 업무상 필요성은 거의 없거나 크지 않은데, 전직으로 원고들이 입게 되는 생활상 불이익은 적지 않다”며 해당 인사조차기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어 “원고들에게 전직 이후 삭감된 연봉 1억1천만~1억2천만원을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원고측 대리를 맡은 이학준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는 “이 사건에서 보듯이 기업들은 퇴출 대상 직원을 선정한 뒤 인사발령을 통해 비정상적인 근무환경에 잡아 두는 방식으로 저성과를 만들고, 다시 단계적으로 인사발령을 내려 결국 해당 직원의 퇴사를 유도하고 있다”며 “이번 판결이 정부 주도 일반해고 허용 논의에 경종을 울린 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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