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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주년 특별좌담] 한국 근현대사 노동자 투쟁, 그 오래된 미래노동운동사로 본 노동권의 현주소
윤성희  |  miyu@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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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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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성희 기자

광복 70주년을 맞은 2015년 8월 도심 곳곳에 태극기가 휘날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광복절 축사에서 광복 후 한국 현대사를 경제도약의 역사로 정리했다. 애국과 국민 통합, 경제성장을 강조하는 기념행사가 잇따랐다. 그러면서 호명되지 못한 존재가 있다. 바로 노동자다.

광복 이후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은 3만1천배 이상 증가했다. 반면 성장의 주축이었던 노동자는 늘 배제됐다. 노조 조직률은 1977년 25.4%에서 지난해 10.3%까지 줄어들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변곡점마다 존재를 드러냈다. <매일노동뉴스>는 이승원 노동자역사 한내 사무처장과 박준성 역사학연구소 연구원(노동자교육센터 운영위원)과 함께 노동운동 역사를 돌아보는 광복 70주년 특별좌담을 마련했다. 사회는 이호동 민주노총 해고자복직투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맡았다. 특별좌담은 지난 19일 저녁 서울 마포구 매일노동뉴스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일제강점기·독재정권 치하에도 노동자들이 있었네

사회 : 한국 근현대사에서 나타난 핵심적인 노동자 투쟁은 어떤 게 있나.

박준성 : 1929년 원산총파업, 해방 직후인 46년 9월 총파업, 87년 7·8·9월 노동자 대투쟁이다. 우리 역사에서 품을 팔고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등장한 것은 조선 후기다. 노조운동이 본격화된 것은 1919년 3·1운동 이후로 볼 수 있다. 이 시기 노동운동을 집대성하고 1930년대에 펼쳐진 혁명적 노조운동의 발판이 된 것이 원산총파업이었다. 원산지역 노동자 거의 전체라고 할 수 있는 3천여명이 참여해 80여일간 싸웠다. 하루 8시간 노동, 최저임금 같은 요구가 이때 나왔다. 파업 과정에서 '규찰대'라는 선진적 노동자들의 활동이 돋보였던 반면 개량적·조합주의적인 지도부의 한계도 드러났다. 식민지시대 노동운동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세계노동운동사에서도 한 자리를 차지하는 투쟁이었다.

식민지시대 노동운동의 경험은 해방 직후인 1945년 11월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 건설로 이어졌다. 전평이 지도한 게 46년 9월 총파업이다. 철도노동자들이 먼저 나섰다. 당시 미군정이 월급제를 일급제로 바꾸고 지금처럼 '산업합리화'를 명분으로 철도노동자 25%를 자르려 했기 때문이다. 35만명이 참여한 9월 총파업은 10월 인민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노동자 파업을 계기로 민중항쟁이 전개된 의미 있는 사례다.

그리고 70년대부터 이어진 민주노조운동이 전두환 정권 치하를 거쳐 폭발한 것이 87년 7·8·9월 노동자 대투쟁이다. 세 달 동안 3천300건의 쟁의가 발생하고 1천300여개 노조가 만들어졌다. 노동자 대투쟁의 연장선상으로 매년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리게 됐고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가 결성됐다.

사회 :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만약 달리 진행됐다면 한국 사회를 바꿨을 만한 사건도 있나.

이승원 : 1980년 5월 '서울역 회군'이 가장 안타깝다. 당시 사북탄광 노동자들이 벌인 사북항쟁 등 여러 노조들의 투쟁이 벌어지면서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분위기가 고조됐다. 그런데 그때 심재철 당시 서울대 학생회장이 서울역 앞 광장에 모인 10만 대학생 시위대 해산을 결정했다. 작은 사건이었지만 사회 분위기를 반전시킨 사건이었다. 그 일이 아니었다면 신군부 정도는 꺾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박준성 : 1945년 9월 총파업과 10월 인민항쟁이 각각 진행됐다는 점이 아쉽다. 이런 일은 80년대에도 반복됐다. 80년 광주항쟁을 계기로 80년대 민주화 운동과 변혁적 노동운동이 전개됐는데, 6월 항쟁과 7·8·9 노동자 대투쟁 역시 분리돼 진행됐다. 6월 항쟁으로 직선제를 쟁취하면서 '대통령만 잘 뽑으면 민주화가 온다'는 분위기 속에 재야 민주정치세력과 학생세력은 뒤로 물러났다. 노동자들의 투쟁도 따로 전개됐다. 이게 사회변혁운동으로 결합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지금도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민주화시대에도 외면받는 '노동'

사회 : 현재 한국 사회의 노동권 수준을 평가한다면.

박준성 : 여전히 자신이 노동자라는 인식이 낮은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노조활동이나 파업에 우호적이지 않다. 심지어 전태일 열사를 계기로 마석 모란공원에 민족민주열사묘역이 형성됐는데, 여기서도 '노동'이 빠져 있다. 민주나 민족 속에 노동이 흡수되거나 배제된 상징적인 표시 같다.

이승원 : 특수고용직 같은 가장 차별받고 힘든 사람들의 노동 3권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 교사·공무원들은 아직도 노동 3권 쟁취를 걸고 싸운다. 이게 우리 수준 같다. 저변에는 사상통제와 반노동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다.

한내에서 제주 4·3 항쟁 역사기행을 하면서 받은 질문이 “노동자단체가 왜 4·3 항쟁을 다루느냐”였다. 민중항쟁과 노동자 투쟁이 다른 역사가 아닌데 이를 분리하는 사고가 매우 팽배하다.

박준성 : 그런 의식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게 학교 교육이다. 90년대까지 국정교과서에는 노동운동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지금은 일부 교과서에서 원산총파업이나 전태일 열사의 분신을 다루지만 비중이 턱없이 작다. 보수세력이 최근 역사교과서를 다시 장악하려 하는데, 아예 노동운동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또 하나, 교사들조차 전국교직원노조(전교조)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이라는 전교조 강령에는 노동이 빠져 있다. 이것도 노동에 대한 우리 사회 의식의 표현 아닐까.

'노조하기' 군사정권 때보다 지금이 더 어렵다?

사회 : 민주화와 경제성장 속에서도 노조 조직률이 10%대를 못 벗어나고 있다. 노동운동이 답보 내지 후퇴한 이유는 뭘까.

이승원: 전평 관련 기록물을 보면 설립 당시 조합원이 50만명에 달했다는 내용이 있다. 당시 조직노동자의 25%에 달하는 규모다. 그런데 미군정의 탄압과 이승만 정권의 반공주의, 한국전쟁을 겪으며 노동자들을 빨갱이로 몰아 숙청하는 '사상적 말살'이 이뤄졌다. 79년 한국노총에서 쓴 한국노동운동사를 보면 대한노총을 '빨갱이인 전평을 깨부수고 자유로운 민주주의에 의거해 설립했다'는 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 같은 반공주의가 아직도 한국 사회의 상당 부분을 좌우하고 있다. 노조의 투쟁이 조금만 과격해져도 빨갱이가 된다. 지금도 조합원들이 "부모님에게서 앞장서지 말라는 말을 듣는다"고 한다. 그게 조직률의 한계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복수노조 문제로도 나타난다. 복수노조가 있으면 어떤 정책상을 가진 노조인지를 생각하기에 앞서 과격하냐 아니면 타협주의냐를 따지고 선전하고 있지 않나.

박준성 : 식민지시대나 군사정권하에서는 노조활동을 목숨 걸고 했다고 말하면 "지금은 더 어렵다"는 얘기가 반드시 나온다.(웃음) 자본이 노동자의 일상까지 지배하면서 계급의식보다는 소비자 의식이 커졌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역사를 보면 노동자들이 알아서 노조에 들어오고 노조가 알아서 굴러간 적은 없었다.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면서도 노조활동을 했던 그런 기풍이 저하됐다는 생각이 든다.

이승원 : 자본주의체제가 공고화되면서 조합원들이 사는 데 노조가입이 유리한지 아닌지를 매우 계산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됐다. 노동운동이 노조로서의 의식을 갖고 이를 극복하기보다는 조합원의 경제적 이익이라는 말초적인 문제에 치중하고 있다. 그런 점들도 현재의 문제를 야기했다고 본다.

박준성 : 노조가입이 내게 불리할 것 같다는 건 “노동운동이 우리 생존과 보다 나은 삶을 담보해 줄 것 같지 않다”는 말이다. 노동운동이 전체 노동자 문제를 등한시했기 때문은 아닐까. 노동운동의 지향 중 하나가 쪽팔리게 살지 말고, 조직된 노동자의 힘으로 사회 전체의 문제를 바꾸자는 것인데, 정말 그런 의지를 가져왔느냐고 물어보면 좀 '쪽팔린다'는 생각이 든다.

이승원 : 노동운동사 교육이 현장에서 점점 소홀해지는 문제도 짚어 볼 필요가 있다. 현장에서 요구하는 교육은 1시간 내지 2시간짜리다. 짧은 시간에 쫓겨 우리 노조는 무슨 투쟁을 했다고 나열하고 끝나는 교육으로는 노동운동에 대한 편견을 깨지 못한다. 노동운동사 교육은 노동자 관점에서 역사를 조망하고, 역사 속에서 나와 노동의 위치를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그런 인식을 세워야 올바른 목표를 갖고 투쟁할 수 있다.

'기억과의 전쟁' 계속되는데 '안 팔리는' 노동운동사

사회 : 두 분 모두 노동운동사 교육과 기록활동에 몸담고 있다. 답답한 점이 있을 것 같은데.

이승원 : 노조가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데 너무 인색하다. 한내가 23일로 창립 7주년을 맞는다. 이에 맞춰 사진으로 보는 노동운동사를 기획했다. 그런데 사진을 구하다 보니 아쉬운 점이 많더라. 지금은 해산된 노조에 투쟁 당시 사진을 요청하니까 "사무실 이사 몇 번 하다가 없애 버렸다. 다 끝난 일인데 뭐…"라고 하더라. 현재 활동하는 사람들도 기록 차원에서 인터뷰를 요청하면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입을 열면 누가 다친다"는 식이다. 치열했던 투쟁을 기록으로 남기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비판도 하고 칭찬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 투쟁이 일단락된 다음부터는 기억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기억한다는 것은 자본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잊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저항할 수 있다. 노동자들이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박준성 : 연구자들도 장사가 안 되는 노동운동사 연구를 잘 안 하려 하고, 노동자들도 자기 역사에 무관심하다. 조지 오웰은 역사를 지배하는 세력이 현재와 미래를 지배한다고 했다. 노동자가 역사의 주체라면 당연히 자기 역사를 장악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노동운동의 의미와 정당성을 이해할 수 있다. 역사는 과거 노동자들이 가졌던 전망을 배우는 것뿐 아니라, 새로운 세상에 대한 전망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기제이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그저 자료수집이나 기억 차원을 넘어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기 역사 쓰기를 했으면 한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때 100만명이 참여했다는데, 그 사람들이 당시 투쟁의 경험을 모두 썼다면 지금의 노동운동이 풍부해졌을 것이다.

이승원 : 미래세대에 현장교육을 해 줄 곳도 없다. 박정희기념관 앞에 초등학생들이 줄 서 있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국내에 역사 관련 전시관이 1천개가 넘는데 노동 관련 전시관은 하나도 없다. 수많은 역사표지석이 세워지고 있지만 노동과 관련해서는 전태일 동상 외엔 없다. 280여명의 열사가 있는데도 분신 장소 하나 표시돼 있지 않다. 심지어 태국에도 노동운동 전시관이 있다. 한국은 노동운동 수준에 비해 역사 쪽이 일천하다. 활동가들이 이런 부분에 힘을 모았으면 한다.

박준성 : 지난해 개관한 울산노동역사관 1987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승원 : 사실 개관에 반대했다. 노동운동의 메카라는 울산에서 구청 힘을 빌려 현대자동차 자본이 기부채납한 건물에 전시관을 만든다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울산 북구청 예산 문제로 내년에는 어떻게 운영될지 모른다. 자본이나 권력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면 노동자들이 역사관이나 기념관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이 올해 20주년을 맞아 민주노총사를 쓴다고 한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민주노총이 민주노조 전체의 역사를 쓸 때가 아닌가 싶다. 노동운동사 관련 자료들은 79년에 나온 한국노동운동사를 토대로 한 것이 많다. 그런데 역사가 왜곡된 부분이 적지 않다. 민주노총은 소위 '돈 안 되는' 노동운동 역사 교육·연구·기록에 평생을 바친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역사를 서술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들어 줘야 한다.

"과거 망각은 현실 배신으로 이어진다"

사회 : 우리 사회에 불안정노동, 즉 비정규직이 확산되면서 사회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 비정규직의 기원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해법은 없나.

박준성 :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쓰이게 된 건 90년대부터다. 70~80년대엔 생산직 노동자들이'공돌이' 혹은 '공순이'로 불렸다. 노동자를 천대하고 비하하는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그 말이 거의 사라진 시점이 87년 노동자 대투쟁 때였다. 그런데 이후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생겼다. 비정규직의 열악한 처우와 노동자를 낮게 보는 사회인식이 이 말을 '공돌이'처럼 노동자에 대한 부정적 낙인을 찍는 명칭으로 만들어 버린 것 같다.

이승원 : 결국은 차별해소와 재원 문제다.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한국 사회의 부는 기업과 대학이 모두 가져갔다. 노동운동이 그 돈을 끌어내서 분배하는 투쟁을 해야 한다. 하지만 대기업 노동자들이 그 돈을 '자신이 일해서 번 돈'이라는 착각에 빠져 기업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 조합원들도 사내적립금을 사업장 내 비정규직 임금에 쓰자고 하면 동의하지만, 사회 양극화 해소를 위해 쓰자고 하면 반발한다고 하더라. 그 돈은 다단계 하도급 노동자들과 민중에 대한 착취로 모은 것이다. 노조는 그 돈을 사회에 내놓자고 사용자들과 싸울 수 있어야 한다.

박준성 : 노동운동사 속에서 노동운동의 주요 요구는 노동시간단축이었다. 긴 투쟁의 성과로 주 5일제 노동이 법제화됐는데 노동자 스스로가 그 성과를 까먹고 있다. 대공장노조 대의원들이 잔업·특근 확보를 성과라고 생각하고, 조합원들이 이를 지지하지 않나. 노동자가 개인생활이나 노조활동을 할 시간을 더 확보하고 일자리 창출 효과도 있다는 점에서 노동시간단축이 해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사회 : 노동권이 제대로 자리잡기 위해 노동운동이 풀어야 할 과제는 어떤 게 있나.

박준성 : 강조하고픈 것은 노동해방 운동의 복원이다. 1920년대에 건설된 조선노동총연맹의 첫 번째 강령이 "노동자·농민이 해방되는 새로운 사회 건설"이었다. 이후 전평에도 이 지향은 이어졌다. 한국전쟁

때 증발한 줄 알았지만 1990년 전노협의 주요 정신인 '평등사회 앞당기는 노동해방 세상'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것이 민주노총으로 제대로 수렴되지 못한 것 같다. 지금은 집회 때 묵념에서조차 '노동해방 투쟁에 앞장선 선배 열사들'을 찾지 않는다. 레닌이 "독수리는 닭보다 낮게 날 수 있지만 닭은 독수리처럼 높게 날 수 없다"고 했다. 독수리의 꿈이 없는 한 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또 하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현실의 배신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70년대 민주노조운동에서 투쟁의 핵심 의제는 임금이었지만, 임금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긴 것이 노동자로서의 자존이었다. 노조활동을 통해 노동자로서의 자존을 지킬 수 있다는 의식이 지금은 후퇴한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가 말하는 대로 노동자가 '임금노예'가 될수록 자존과 존엄은 상실되고, 타인에 대한 존중도 약화된다.

이승원 : 노동운동 활동가들이 역사 문제에 힘을 집중해 줬으면 한다. "역사를 모르면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자본과 권력이 어떤 거짓말을 해도 그걸 간파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현재 활동가들이 역사에 소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를 바탕으로 사회와 노동자 계급 전체의 문제를 놓고 투쟁에 나서야 한다. 1945년 9월 총파업 때 전평이 인민에 대한 쌀 배급을 주요 요구로 내세웠던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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