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성희 기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로 간호사를 비롯한 보건의료 노동자의 인력부족 문제가 재조명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위원장 유지현) 조사 결과 노동자들은 "최근 3년 동안 노동조건이 악화됐다"고 호소했다. 여전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며, 절반은 업무 중 폭언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력부족으로 장시간 노동 시달리다 결국 이직

노조는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2015년 보건의료 노동자 노동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는 3월26일부터 5월29일까지 노조 산하 83개 지부 소속 조합원 1만8천629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대부분 여성(81.9%)이었다.

실태조사 결과 병원노동자의 60.6%가 "최근 3년 동안 노동조건이 악화됐다"고 응답했다. 업무량 증가(67.9%)를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했다. 승진 가능성이 희박하다거나 근로조건이 미흡하고, 내부경쟁이 강화됐다는 답변도 적지 않았다.

이는 의료인력 이탈로 이어졌다. 응답자의 62%가 "이직을 고민한다"고 답했는데, 주된 이유는 직무불만과 노동강도 강화(49.3%)였다. 낮은 임금수준과 결혼·출산 등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도 지목됐다.

배경에는 장시간 노동이 있었다. 병원노동자들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0.6시간이었다. 야간근무자는 13.1시간이나 됐다. 하루 평균 노동시잔은 2013년 9.3시간, 지난해 9.8시간으로 계속 느는 추세다.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49.8시간이었다. 우리나라 전체 임금노동자 주간 평균노동시간인 41.9시간(올해 3월 기준)보다 8시간을 더 일하는 셈이다. 이 역시 2013년부터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1일 평균 휴게시간은 38.2분에 그쳤다. 월 평균 결식(식사를 거르는 것) 횟수는 4.6회였다. 특히 간호사의 경우 1일 평균 휴식시간은 30분에 불과했다. 결식 횟수는 월 5.5회로 집계됐다. 1주일 중 1~2일은 바빠서 식사를 건너뛴다는 얘기다.

장시간 노동은 근무형태와 인력부족에서 기인했다. 인력이 불충분한 상황에서 교대근무를 하다 보니 개별 업무량이 늘어나는 것이다. 응답자의 50.8%가 3교대 근무를 하고 있고, 월평균 밤근무 횟수는 6.4회였다. 응답자의 80.5%가 "현장에 인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으며, 각 부서나 근무지에서 평균 11.3%의 인력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목을 따 버리겠다" 병원노동자 절반이 폭언 경험

병원 내 폭력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됐다. 병원노동자의 절반(49.8%)이 업무 중 폭언을 경험했다. 10명 중 1명꼴로 성희롱·성폭력(10%), 폭행(7.8%)을 당했다. 폭언의 경우 가해자 5명 중 3명이 환자 혹은 보호자(62.8%)였다. 의사(16%)와 상급자(14%)가 뒤를 이었다. 폭행과 성희롱의 주된 가해자 또한 환자였다. 응답자들은 "환자들로부터 목을 따 버리겠다는 폭언이나 의사의 '야!' 같은 막말을 상시적으로 듣는다", "만취한 환자가 간호사를 폭행하거나, 흥분한 보호자가 차트나 의자를 집어던지는 일이 있다"고 증언했다. "혈압을 잴 때 간호사의 팔을 만지는 등 불필요한 접촉을 당했다"는 응답도 있었다. 한 의사가 임신한 간호사에게 뜨거운 커피를 뿌린 사례도 있었다.

반면 폭언·폭행·성희롱을 당한 뒤 적절한 휴식을 보장받았다는 응답은 4.6%에 그쳤다. 폭언·폭행 피해자 86.2%와 성희롱 피해자 51%가 "그냥 혼자 참고 넘어갔다"고 답했다. 법적 대응을 했다는 답변은 각각 10%와 20.9%에 그쳤다.

이 같은 문제를 반영하듯 응답자들은 '조직이나 환자로부터의 인격적 존중' 수준을 묻는 항목에 100점 만점 중 각각 59.4점, 52.3점의 낮은 점수를 매겼다.

오선영 노조 정책국장은 "불안정한 상태인 환자·보호자를 응대하는 보건의료 사업장 특성상 폭언·폭행 노출빈도가 높은데도 대응매뉴얼조차 마련돼 있지 않으며 산업적 대응이 매우 미약하다"고 우려했다.

유지현 위원장은 "폭력이 일상화되고 장시간 노동이 고쳐지지 않다 보니 중간 연차 간호사들이 계속 이직하고, 이것이 인력부족 악순환으로 이어져 전체 산업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유 위원장은 "정부 정책과 사회 인식 전환을 통해 노동환경과 인력문제 개선이 환자 안전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숨겨진 장시간 노동과 폭력, 구조적 대책 시급


보건의료노조가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토론회에서는 보건의료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과 폭언·폭행에 대한 정책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주문이 잇따랐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 통계는 보건의료 사업장 인수인계나 묵시적 초과근로 같은 다양한 형태의 연장근로를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며 "노동시간 관리와 인력충원, 합리적 교대제 개편 같은 구조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이 노조 실태조사를 재분석한 결과 응답자의 15.4%가 주당 52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었다. 이들 중 74%가 "최근 3개월 동안 이직 생각을 했다"고 답했다. 주당 52시간 미만 근무자보다 13.4%포인트나 높았다.

김 연구위원은 "감정노동과 업무소진 수준 또한 장시간 노동자가 전반적으로 높았다"며 "독일처럼 고객 서비스 제공시간 못지않게 내부 노동자들의 쉴 권리를 보장하는 시간관리대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폭언·폭행에 대한 예방·사후조치 필요성도 제기됐다.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은 "유통서비스 사업장에도 폭언은 많지만 성희롱이나 폭행은 상당히 드물다"며 "이는 심각하게 받아들여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임 소장은 "폭언 외에도 감정노동과 업무소진의 주요 원인이 되는 고객의 무리한 요구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캐나다는 단계적 가이드를 통해 고객과의 대면 접촉시 불쾌한 언행문제를 해결하는 직무재설계와 작업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프랑스는 작업중지권 행사 유형 중 하나인 공격성 업무처리자 유형에 보건사회서비스업종을 포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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