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식 민주노총 대변인

기어이 재벌 회장님들을 위한 광복절 특사가 이뤄질 모양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13일 특사 논의를 위한 원포인트 국무회의를 연다고 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 형제,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주요 사면대상이다.

당연히 특권사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을 작정이다. 전가의 보도인 '경제 살리기'가 있기 때문이다. 정말 신물이 나는 말이다. 임금을 깎고 해고를 쉽게 하는 노동개악도 경제 살리기, 공공부문 민영화도 경제 살리기, 4대강 사업도 경제 살리기, 그리고 새누리당에 표를 찍는 것도 경제 살리기란다. 경제 살리기는 한국 사회 최대 신기루다. 수십 년째 심폐소생술 중이지만 늘 경제는 위기이고 그때마다 노동자들만 희생당해 왔다.

정부는 총수가 없으면 투자를 못해 경제난을 더 어렵게 한단다. 재벌개혁은 못할망정 이게 할 말인가. 기업문화가 봉건적이라고 역설하는 꼴이 아닐 수 없다. 1인 독재경영이야말로 적폐이며 경제문제를 낳는 지름길이다. 이를 개선하기는커녕 범죄를 저지른 회장들을 경영 일선에 복귀시켜야 한다는 정부·여당은 정경유착 종결자라 할 만하다.

더욱이 재벌 총수들의 경제범죄는 그 규모와 피해가 상상을 초월해 피해의 실체조차 체감하지 힘들 지경이다. 그러나 수백 수천 억원의 배임과 횡령은 얼마나 많은 이들의 피와 땀이 응고된 결실이었을까. 게다가 현대자동차처럼 대법원으로부터 불법파견 판결을 받고도 버젓이 법을 비웃는 마당에, 옥살이를 할 정도의 죄라면 그 죄과의 크기를 굳이 따질 것도 없다.

재벌사면, 사회통합·기본권 보호 어긋나

프랑스는 부정부패 공직자와 선거법 위반 사범은 아예 사면대상에서 제외한다. 힘 있는 권력자들의 부정은 그 힘만큼 큰 피해를 낳고 용서받지 못할 범죄임을 의미한다. 이와 달리 한국 정부는 기회만 되면 휠체어 석방에 안달이다. 사면권이 특정계층에게 남용되고 있다.

사면은 첫째 관용을 통한 사회통합을 추구하고, 둘째 민중의 처지를 살피지 못한 법의 한계로 인해 옥살이를 하는 약자들의 기본권과 양심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의 사면에서는 그런 정신을 찾아볼 수 없다.

노동자에게는 걸핏하면 끝까지 추적해 엄단하겠다며 사납게 법과 원칙을 짖어대던 박근혜 정권의 혹독함은 재벌들 앞에선 오뉴월 개 혓바닥처럼 늘어진다. 그랬다. 이번에도 생존권 투쟁에 나섰던 노동자나 양심수에 대한 사면은 감감무소식이다. 재벌사면의 명분을 위해 다수 도로교통 경범죄 사면을 끼워 넣겠지만 구색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진정 사회통합이 목적이라면 우선사면 대상은 사회적 약자들이어야 한다.

구속노동자 22명 … 사면 협의조차 없어

현재 민주노총 조합원 중 파업 같은 노동쟁의와 생존권 시위로 구속된 노동자는 22명이다. 조카를 살리고자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 노역형을 살고도 평생 자베르에게 쫓겼던 장발장. 이 시대의 장발장은 누구인가. 사면이 필요하다면 바로 그 장발장들에게 허락돼야 마땅하지 않는가. 그러나 과거 참여정부 시절과 달리 박근혜 정부에서는 노동자 사면에 대한 아무런 협의조차 없다.

대통령 사면권으로 재벌들의 죄를 사해 준다고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다. 그들이 범죄를 뉘우치고 부당하게 취한 사익을 사회에 환원이라도 했는가.

“무전유죄 유전무죄.”

오히려 사회반목만 더 키우고, 재벌들의 재범만 부추길 뿐이다.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이법위인(以法爲人·법은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을 강조하며 “사회적 약자의 눈물과 한숨을 담아내지 못하는 법은 제대로 된 법이 아니다”고 말했다.

사면은 무엇보다 악법에 고통받는 약자들의 기본권과 양심을 보호해야 한다. 양심수를 석방하라. 노동자의 권리를 사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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