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는 사태에 대한 진단부터 잘못됐다. '대통령' 직함에 어울리지 않게 귀를 닫은 채 한쪽 입장만 대변했다. 결국 국민 대다수인 노동자들을 외면하는 정책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비례대표로 19대 국회에 입성한 후 줄곧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활동한 한정애(50·사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내린 평가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처방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세대 간 갈등을 조장하는 임금피크제나 기존 정규직을 보다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언 발에 오줌 누기 식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 의원은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이고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상황에서 노동시장을 지금보다 유연하게 만들자는 것은 '나이 들어 모두 함께 불행해지자'는 말과 같다"며 "청년실업 해결의 출발점은 법원 판결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라고 강조했다.

한 의원은 얼마 전 새정치민주연합 노동담당 원내부대표를 맡았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6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그를 만나 노동현안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같은날 오전 박 대통령은 노동개혁을 주문하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어떻게 봤나.

"대통령이 문제의 원인을 잘못 보고 있는 것 같다. 진단을 제대로 해야 올바른 처방을 마련할 수 있는데 그게 안 되고 있다. 박 대통령이 당대표 시절 음양으로 노동계와 재계 인사를 많이 만났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현 상황을 보면 노동계 얘기를 10%나 들었는지 모르겠다. 양쪽을 함께 만났다면 대한민국 노사관계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있구나’ 하는 판단이 섰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쪽 입장에 치우친 말만 하고 있다. 대국민 담화를 보면 박 대통령은 지난 총선·대선을 관통했던 경제민주화라는 틀거리도 외면했다. 사회정의 차원에서 노동문제를 고민한 것 같지도 않았다. 노동계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느껴졌다."

- 정부 노동정책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경제가 어려워지면 역대 정권 모두 잘나가고 조직화된 대기업 노조에 책임을 전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손가락질할 대상이 필요했던 거다. 박근혜 정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정부는 기존 노동정책도 촘촘하게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도 못 받는 노동자들이 전체의 15% 정도인 200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법적으로는 이런 노동자들이 없어야 마땅하다. 이런 문제에 대한 자기반성이 없다. 두루누리 사업의 폭을 넓혀 영세 사업주들이 4대 보험 가입을 겁내지 않도록 만드는 것도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다.

30대 재벌기업의 사내유보금이 710조원이나 된다. 재벌 총수가 아니라 평범한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다. 하청업체가 자기들의 이익을 착취당한 것이다. 대기업 수익률에 비례해 하청업체 수익률을 보장해 주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대기업 총수들에게 ‘같이 좀 살고, 투자 좀 합시다’ 같은 말을 하기를 바랐는데 그러지 않았다. 정부가 별로 가진 것 없는 노동자들 대신 재벌 총수들에게 '당신들이 조금 더 내놓으면 여러 제도적 지원을 해 주겠다'는 말을 왜 못하나."

- 정부·여당이 임금피크제와 일반해고 요건 완화는 물론이고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과 파견업종 확대까지 검토하고 있는데.

"재계 서열 5위 롯데그룹이 구멍가게 식으로 운영되는 현실이다. 그만큼 재벌의 기업운영에 대해 손봐야 할 것이 많다는 뜻이다. 그런 상황에서 왜 정부가 대기업 운영을 투명하게 하고 적당한 제재를 가하는 것은 외면한 채 임금피크제에 목을 매나.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은 충분히 유연하다. 30대 대기업의 평균 근속연수는 9.7년밖에 안 된다. 이를 일반기업으로 확장하면 어떻게 되겠나. 정리해고와 일반해고를 포함한 우리나라의 전체 고용보호지수는 2.1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24위에 불과하다. 박근혜 정부가 이런 수치를 외면하고 있다.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이나 파견업종 확대는 이미 기업들이 하던 불법 관행을 합법화해 주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사회 양극화 요인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꼽으면서도 오히려 비정규직을 확산하려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청년실업을 비롯한 노동시장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한가.

"노동은 워낙 범주가 넓다. 온갖 사회 현상·이해관계를 담고 있어 쉽게 정의하기 힘들다. 정부·여당은 노동개혁을 거론하면서 너무 쉽게 ‘선진화하겠다’고 얘기한다. 정말 선진화하고자 한다면 선진화된 모든 제도를 통째로 들여와야 한다. 덴마크의 경우 비정규직이 정규직 보다 임금이 많다. 일자리 불안전성을 보다 많은 임금으로 보완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시간제 일자리나 비정규직 확산 정책을 펼치기에 앞서 양극화된 소득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청년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시급한 것은 노동시간 정상화다. 고용노동부는 아직도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행정해석을 유지하고 있다. 법원이 수차례 행정해석이 잘못됐다는 판결을 내렸는데도 말이다.

정부가 법원 판결을 수용해 대기업부터 단계적으로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라고 유도한다면 주말특근이 줄어들면서 평일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다. 생산시설이 증축되면서 부동산 경기가 살아날 수도 있다. 정부는 기존 일자리를 불안하게 할 것이 아니라 노동시간단축으로 일자리를 늘리고 시설투자에 나선 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에 정리해고 요건 강화와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노동자성 인정 등 노동계가 환영할 만한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임기 중반을 지나면서 정반대 얘기를 하고 있다. 한 가지 더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일자리의 88%는 중소기업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쌓아 두는 재벌 대기업의 이윤이 중소기업으로 흘러가는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공정거래 환경을 조성하고, 하청업체들의 공동교섭권을 보장해야 한다."

- 사회적 대화 논의틀과 관련해 노동계와 정부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정부·여당이 한국노총에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내부 대화기구에 복귀하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어불성설이다. 노사정위가 어떤 곳인가. 정부와 경영계는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노동계에 훗날을 약속하며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확산, 공공기관 초임삭감 등을 밀어붙이고 관철시켰다. 노동계 입장에선 어두운 기억 그 자체다. 그런 가운데 과거의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노동자들에게 더 큰 양보를 바라면서 다시 노사정위에서 논의하자고 한다.

사회적 대화는 노동시간단축이나 통상임금 범위 같이 노사가 신속한 정리가 필요하다고 공감한 사안에 한해 이뤄져야 한다. 이 같은 전제가 있다면 대화 틀거리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 그동안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활동하다 최근 노동담당 원내부대표를 맡았는데.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나.

"19대 국회 출발 당시 경제민주화 바람이 거셌다. 당시 환노위에서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근로자 정의에 특수고용직까지 포함시키는 쪽으로 여야가 의견을 모았다. 그런데 구직자까지 포함시키려고 욕심을 내는 바람에 지금은 모든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왔다. 당 차원에서도 원칙적인 접근으로 여러 노동관계법에 있어 타협에 이르지 못한 사안이 많다.

남은 기간 동안 보다 유연한 방식으로 타협점을 찾고 노동자들에게 보다 나은 근로조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정부·여당의 노동개혁과 관련해 노동계가 수용불가로 못 박은 사안은 환노위에서 최대한 막아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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