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베트남노총(VGCL)이 만든 '2009~2014년 노동분쟁과 파업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5년 동안 모두 3천120건의 파업이 일어났다. 그중 2천440건(78.3%)이 산업화가 상대적으로 진전된 남부에서 발생했다. 베트남 최대 도시인 호찌민에서 일어난 파업이 620건(19.9%)이었고, 호찌민을 둘러싼 산업벨트인 빈즈엉 성과 동나이 성이 각각 938건(30.1%)과 479건(15.4%)을 기록했다. 베트남에는 63개 성이 있는데 핵심 산업 지대인 호찌민·빈즈엉·동나이 3개 성에서 일어난 파업만 2천37건으로 그 비중이 65%나 됐다.

기업의 국적으로 나눠 보면, 파업의 75%가 외국인 투자기업에서 일어났다((2천337건). 대만 기업이 764건(24.5%), 한국 기업이 760건(24.4%)으로 두 나라 기업에서 일어난 파업이 절반에 달했다. 그 뒤를 일본 기업이 이었는데 206건(6.6%)이었다. 연도별로는 2009년 342건, 2010년 507건, 2011년 993건, 2012년 601건, 2013년 384건, 지난해 293건으로 2011년을 정점으로 점차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다. 업종별로는 섬유·봉제업이 1천138건(36.5%)으로 파업이 가장 많았고, 신발·피혁 561건(18%), 목재가공 329건(10.6%), 전자 218건(7%) 순이었다.

파업 이유는 임금과 노동조건 같은 이익분쟁이 1천272건(40.7%)이었고, 권리분쟁은 959건(30.7%)이었다. 이익분쟁과 권리분쟁이 동시에 일어난 경우은 832건으로 집계됐다(26.7%).

2010년 전에는 사용자들이 관련법을 준수하지 않아 파업이 자주 발생한 반면 그 후로는 노동자들의 권리와 이익 요구가 커진 게 파업의 주된 이유가 되고 있다. 파업은 대부분 하루나 이틀 동안 진행됐고, 평균 700여명이 동참했다. 물론 엔도 스테인리스(12일)와 후에퐁 제화(35일)처럼 장기간 분쟁이 이어지거나, 포우첸처럼 1만8천명이 참여한 대규모 파업도 있었다. 파업이 이웃 공장으로 번지는 모습을 띠는 것도 특징적이다.

모든 파업은 사용자들이 법률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자발적으로 발생했다. 노동조합이 조직하거나 주도한 파업은 단 한 건도 없었다. 노동자들은 고물가가 불만이었고, 기업들은 은행의 고이자가 문제였다. 노사관계를 둘러싼 경제 조건이 어느 해보다 어려웠던 2011년에만 1천건에 육박하는 파업이 일어났다. 이후 파업이 차츰 줄어든 것은 세계 경제 상황이 위기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함에 따라 기업의 노동력 수요가 줄었고, 정부와 기업(그리고 사실상 정부 통제를 받는 공식 노동조합)이 분쟁 예방을 위해 노력한 결과다. 모든 파업은 경제적 이유로 발생했다. 정치파업은 없었다. 물론 파업 과정에서 기계시설 파괴나 인명 살상이 일어난 적도 없다.

베트남노총이 꼽는 파업 이유는 노동자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열악한 노동조건, 사용자의 관련법 위반, 사용자의 대화 의지 부족, 사용자의 단체교섭 지체와 회피, 사용자의 정보 독점 등이다. 여기에 언어 장벽 같은 문화 차이도 한몫한다. 사용자들이 사회보험 의무를 회피하거나 무시함으로써 노동자들이 실업보험과 건강보험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문제도 파업 발생의 배경이 되고 있다.

2011년의 경우 한국 기업인 금양 비나와 한남 인터내셔널이 각각 20억동과 9억7천만동의 사회보험비를 납부하지 않아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노동조합 결성을 허용하지 않고, 노동조합세를 납부하지 않으며, 노조가 있더라도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않는 사용자들이 여전히 많다. 노조로 조직된 노동자가 800만명이 넘는데도 단체협약의 보호를 받지 못하거나, 단체협약이 있더라도 그 내용과 질이 형편없어 실질적으로 단체협약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그럼에도 베트남 정부는 인력과 예산 부족을 이유로 법 집행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노동운동 주체 입장에서 볼 때 노동조합 ‘조직’은 존재하나 노동조합 ‘운동’은 존재하지 않는 현실도 파업과 노사 분쟁이 자주 발생하는 원인이다.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권리증진과 이익개선이라는 본연의 임무보다는 공산당과 정부의 눈치를 보는 데 익숙하다 보니, 노동자들의 불만을 일상적으로 해소할 제도와 구조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노동조합이 전적으로 노동자 편에 서지 못하고, 노사 연결고리로 자기 역할을 한계 짓는 문제도 심각하다. 여기에 산업별 조직이 아닌 지역별 조직이 주도하는 베트남 노동조합운동의 구조적 특성이 가미되면서 기업별 노조주의가 횡행하는 것도 잦은 노사 분쟁의 배경으로 볼 수 있다.

하와이에서 열렸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이 결렬됐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협상 성사를 위해 베트남 정부는 공식 노조인 베트남노총(VGCL)에 속하지 않은 독립노조 결성까지 허용하기로 방침을 굳힌 상태다. 향후 노사관계 불안정과 노사 분쟁 증가를 예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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