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등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가 발표한 조정권고안이 추가 조정 절차를 밟을 전망이다. 삼성직업병피해자가족대책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조정권고안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조정권고안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조정권고안은 직업병 피해보상과 삼성전자의 사과, 재발방지 대책을 담고 있다.

소폭 수정이냐, 대폭 수정이냐는 삼성전자의 선택에 달렸다. 삼성전자가 조정권고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보상 대상과 관련해 조정을 요구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조정위가 제시한 조정권고안 이의신청 기간 마지막날인 3일 삼성전자가 이의를 제기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매일노동뉴스>가 쟁점을 분석했다.

삼성전자 생각보다 확대된 보상자 범위

삼성전자가 조정권고안 수용 여부를 놓고 고민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2일 “조정권고안을 검토하고 있고, (이의신청을 할지) 정해진 것은 없다”며 “회사가 여러 차례에 걸쳐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힌 내용이 포함돼 있어 고민”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힌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삼성전자가 고민하는 지점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조정권고안의 3가지 의제(사과·보상·예방) 중 삼성전자 입장과 가장 상이한 의제는 보상이다. 올해 1월 삼성전자는 ‘조정 안건에 대한 삼성전자의 제안서’를 조정위에 전달했다.

제안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회사 전현직 임직원이 산재를 신청한 이력이 있는 15종의 질병을 검토했다. 그중 근로복지공단이 업무 연관성을 인정한 백혈병·비호지킨림프종·재생불량성빈혈·뇌종양·유방암 등 5개 질병에다 산재 신청 이력이 없는 다발성골수종과 골수이형성증후군을 보상 대상으로 정했다. 삼성전자는 또 뇌종양과 유방암을 제외한 질병은 1년 이상 재직하고, 퇴직 후 10년 이내 발병한 대상자에 한해 보상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정위는 보상 대상 질병을 삼성전자보다 21종 더 늘렸다.<표 참조> 조정위는 28종의 질병을 1·2·3군으로 분류했다. 공단에서 산재를 인정받았던, 다시 말해 삼성이 보상하겠다고 밝혔던 질병은 1군에 대거 포함됐다. 뇌종양이나 유산·불임 같은 생식질환은 제한적 범위의 업무 연관성이 의심된다는 근거로 2군에, 난소암과 희소질환은 업무 연관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로 3군으로 분류했다.

조정위는 이와 함께 산재가 신청되거나 인정받지 못했더라도 관련 연구 혹은 외국 사례에서 반도체산업 종사자의 질병과 산업 연관성이 제기된 경우에도 이를 보상 대상에 포함했다. 1년 이상 재직하고, 퇴직 후 최대 14년 이내에 발병한 피해자도 보상을 받도록 했다.

가족대책위 "삼성전자 직접협상"vs 반올림 "조정권고안대로"

산업의학계는 반색했다. 한국산업보건학회는 "근로자에게 발병하는 질환은 현재의 자료와 과학적 방법론으로 직업 관련성 및 업무 연관성을 증명하거나 반증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며 "역학조사와 같은 방식으로는 직업관련성과 업무연관성을 밝히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학회는 이어 "조정위가 내놓은 조정권고안은 사회적 합의라는 형식을 통해 그동안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었던 직업 관련성 논란이 있는 질환의 치료와 보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가족대책위는 공익법인을 통한 직업병 피해자 피해보상에 이의를 제기했다. 보상액이 불분명하고, 공익법인 이사회 구성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대책위는 “공익법인을 설립해 보상 신청을 하라는 것은 아직도 많은 세월을 기다리라는 뜻”이라며 “삼성전자와 직업병 피해가족이 우선적으로 협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책위가 삼성전자에 직접협상을 요구한 것은 공익법인 설립까지 난항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애정 대책위 간사는 “공익법인이 설립돼 빠른 시일 안에 보상을 받으면 좋겠지만 삼성전자가 조정권고안을 모두 수용할 것 같지는 않다”며 “직업병 피해자들이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는 만큼 보상 문제는 피해자와 삼성전자가 직접 협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책위의 이의제기에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난색을 표했다. 이종란 반올림 활동가는 “조정권고안에는 올해 12월31일까지 발병한 대상자의 신청을 받아 우선적으로 처리한다는 내용이 있다”며 “공익법인을 통하면 보상이 지연된다는 말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조정위가 내놓은 조정권고안은 직업병 피해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대책위·반올림의 동의하에 시행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당사자들의 입장이 어떤 방향으로 수렴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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