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등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조정위·위원장 김지형)가 1천억원 규모의 공익법인을 설립해 직업병 피해보상과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애초 삼성전자가 제시했던 피해자 재직기간을 1년 이상으로 일괄적으로 정하는 등 보상 대상을 넓혔다.

조정위는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법무법인 지평 브리핑룸에서 조정권고안을 발표했다. 조정위는 지난 1월부터 직업병 피해협상 주체를 개별적으로 만나 조정권고안을 마련했다. 직업병 보상 대상자는 삼성전자에서 최소 1년 이상 근무하고, 퇴직 후 최대 14년 이내 발병한 피해자로 정했다. 애초 삼성전자가 제시했던 안보다 대상이 확대됐다. 조정위는 직업병 피해협상 참여자들이 조정권고안 수용 여부를 10일 안에 밝혀 달라고 요청했다. 그동안 직업병 피해협상에는 삼성전자·삼성직업병피해자가족대책위원회(가대위)·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 참여했다.

보상대상 질병 늘리고 재직기간 완화

조정위는 삼성전자 반도체·LCD사업부에서 발병한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해 공익법인을 설립할 것을 제안했다. 조정위에 따르면 공익법인 발기인은 대한변호사협회·한국산업보건학회 등이 각 1인을 추천해 선정한다. 공익법인은 조정권고안에서 제시된 보상대상 질병과 보상기준에 따라 보상 대상 피해자를 선정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실무 역할을 한다.

조정위는 조정권고안에서 보상대상 질병을 1군부터 3군까지 선별해 최소근무기간(재직기간)과 최대잠복기간을 구분했다. 재직기간은 모두 1년으로 정했고 잠복기간은 달리했다. 이를테면 백혈병과 유방암은 근로복지공단과 법원이 산업재해로 인정한 1군에 속한 질병인데, 조정위는 최소근무기간을 1년, 최대잠복기간을 14년으로 잡았다. 즉 삼성전자에서 1년 이상 재직했거나, 퇴직한 지 14년 이내라면 보상 대상에 포함시킨 것이다. 삼성전자는 백혈병과 유방암의 경우 5년 이상 재직한 노동자에게 보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림프종과 다발성골수종은 잠복기간을 14년으로, 골수이형성증과 재생불량성빈혈은 잠복기간을 10년으로 정했다. 2군인 뇌종양은 잠복기간을 14년으로, 3군인 베게너 육아종증 등 희소질환은 잠복기간을 5년으로 명시했다. 역시 3군인 난소암과 희귀암 잠복기간은 10년으로 정했다.

다만 피해자 중 2011년 1월 이후 입사자는 보상 대상에서 제외했다.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들의 보상 여부도 언급하지 않았다. 보상대상에서 배제되는 피해자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반도체공장에서 근무한 협력업체 노동자 황아무개씨는 2011년 11월 이후부터 근무했다. 조정위는 “반도체 산업 종사자에게 발병한 질환은 업무관련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 범주로 한정했다”며 “사망한 근로자에게는 위로 보상금을 지급하고, 보상액 산정은 공익법인이 정하도록 위임한다”고 설명했다.

협력업체 노동자 보상방안 언급 없어

재발방지 대책과 관련해 공익법인은 삼성전자 재해관리 시스템을 점검한다. 조정위는 삼성전자의 내부 재해관리 시스템을 강화하고, 건강연구소를 통해 사업장 안전에 대한 연구와 조사활동을 실시할 것을 주문했다. 영업비밀에 대한 내부 기준 마련도 요청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LCD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에 대해 영업비밀을 이유로 공개를 거부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조정위는 공익법인이 옴부즈맨 시스템을 통해 삼성전자의 산업보건관리 현황을 점검할 것을 제안했다. 옴부즈맨 시스템은 환경·안전·보건 분야의 전문가 3인 이상이 삼성전자로부터 보건관리 현황에 대한 자료를 매년 제출받아 검토하는 방식이다. 필요한 경우 보고서를 작성해 시정을 권고할 수 있다. 공익법인이 삼성전자로부터 자료를 제공받아야 하고, 사업장 현장점검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없어 제대로 된 감시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조정권고안에 대해 피해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당사자들은 “검토해 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권고안 내용 중 회사가 여러 차례에 걸쳐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힌 내용이 포함돼 있어 고민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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