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상선 시장의 침체로 해양플랜트 수주 경쟁에 나섰던 ‘조선 빅3’ 업체들이 동반 실적 부진에 빠져들고 있다. 이미 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의 조 단위 손실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들 업체가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다시 상선 수주로 눈을 돌릴 경우, 이들과 경쟁해야 하는 중소형 조선소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조선 강국 코리아가 덫에 빠졌다.

◇파업 채비하는 조선업종 노조들=20일 노동계에 따르면 주요 조선소 노사의 임금·단체협상이 중반전으로 치닫고 있다. 빅3 조선소 중에는 대우조선해양노조가 가장 먼저 단체행동에 돌입했다. 노조는 이달 1~2일 진행된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투표 참가 조합원 98%의 찬성으로 파업 돌입을 가결하고, 이달 7일과 8일 4시간 부분파업을 전개했다. 이어 9일과 10일에는 대의원 등이 참여하는 간부파업을 벌였다.

노조의 핵심 요구는 기본급 12만5천원 인상과 200억원에 달하는 통상임금 소급분 지급이다. 당초 회사는 이달 7일 통상임금 소급분을 지급할 계획이었으나, 유동성 부족을 이유로 소급분 지급 연기를 통보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손실 가능성이 제기됐다. 실적에 반영하지 않은 손실이 2조원에 달하고, 올해 2분기 영업손실이 최대 3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당초 노조는 이달 27일 시작되는 집중휴가 이전에 협상을 마무리할 계획이었으나, 휴가 이후 장기투쟁에 돌입하기로 전술을 수정한 상태다. 노조 관계자는 “노동자들 역시 회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대규모 손실과 올해 임금협상을 연관 짓는 것에는 반대한다”고 밝혔다.

2분기 1조원의 추가 손실이 예상되는 삼성중공업 노사의 임금협상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와 회사는 지난달 23일 교섭 상견례를 진행한 뒤 협상을 벌이고 있다. 올해 교섭에서 노동자협의회는 기본급 12만4천922원 인상 등을 요구했다. 회사측은 이주 내로 노동자협의회 요구안에 대한 입장을 내놓을 계획이다.

현대중공업노조는 파업 채비에 나섰다. 노조는 21일부터 사흘간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한다. 중앙노동위원회 쟁의조정을 통해 쟁의권을 확보한 상태다. 노조는 올해 임금협상에서 임금 12만7천560원 인상, 통상임금 1심 판결 결과 적용(정기상여금 통상임금 포함), 성과연봉제 폐지, 고용안정 협약서 체결 등을 요구하고 있다.

◇손실 키운 해양플랜트 저가수주=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의 실적 부진은 해양플랜트 부문 적자에서 비롯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운사들이 컨테이너선·벌크선 같은 상선 발주를 크게 줄이자, 국내 조선소들은 일감 확보를 위해 ‘제 살 깎기’ 식 과당경쟁을 벌이며 저가수주에 나섰다.

결국 수주 경험이 많지 않은 대형 해양플랜트 프로젝트에 낮은 가격으로 뛰어든 것이 부메랑이 됐다. 경험 미숙에 따른 잦은 설계변경, 기술과 노동력 부족에 의한 인도 지연 문제가 겹치면서 손실규모가 커졌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지분 31.46% 보유한 대주주이자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을 향한 책임론도 제기된다. 산업은행이 대주주가 된 뒤 대우조선해양의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줄곧 산은 출신 인사가 맡아왔다. 그런데도 부실을 방치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 산은은 자율협약이나 워크아웃 같은 고강도 구조조정 대신 '긴급 수혈'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유동성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면 산은과 수출입은행이 지원군 역할을 맡고, 선박 수주를 위한 전제 조건인 선수금환급보증(RG)도 책임지기로 했다. 뒤늦게 진화작업에 나선 꼴이다.

박향주 금속노조 정책국장은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계기로 산은의 관리능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며 "산은은 국민 세금이 투여된 국민기업의 대주주로서 이번 사태를 책임있게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중소형 조선소다. 빅3 조선소로 지원이 집중되면 될수록, 그렇지 않아도 경영난을 겪고 있는 중소형 조선소에 돌아갈 몫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박 국장은 "국내 대중소 조선소의 상생 발전을 위한 정부의 개입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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