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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vs 엘리엇이 아니라 삼성·엘리엇 vs 노동자

글로벌스탠더드, 세계 초일류를 외치던 삼성이 요 며칠 애국을 부르짖기 시작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인수합병에 초국적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개입하며 생긴 일이다.

삼성물산 주주가 합병된 회사의 주식을 너무 적게 가지도록 합병비율이 결정됐다며 올해 초 삼성물산 주식을 획득한 엘리엇은 합병 자체를 무산시키려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과 주류언론들은 ‘먹튀’ 해외 투기 자본이 삼성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라며 삼성을 둘러싸고 외국 투기자본과 국가 경제를 우선하는 애국 주주들이 한 판 승부를 벌여야 한다고 선동하고 있다.

공정한 주주가치나 국가경제 보호 따위의 말들이 난무하고 있지만 사실 양쪽의 의도는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없다. 합병을 추진 중인 삼성그룹은 이재용 부회장이 적은 돈을 들여 삼성그룹을 지배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고, 엘리엇은 삼성그룹 재편 과정에서 주식 매매차익을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삼성그룹이 합병을 성공시키면 제일모직 대주주인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물산이 소유한 삼성전자 지분 4%를 자기 돈 한 푼도 지출하지 않고 지배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엘리엇이 합병을 무산시키게 되면 엘리엇은 삼성을 상대로 경영권·배당·주식 가격 등에 대해 각종 요구를 하며 막대한 이득을 얻게 된다. 철저하게 이재용씨와 헤지펀드 엘리엇의 이해관계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하는 건 이 싸움의 결과가 다수 노동자들에게는 ‘손실’일 뿐이라는 점이다. 이재용씨와 엘리엇 중 누가 이기건 노동자는 손해다.

먼저 이재용씨가 이런 인수합병 방식으로 그룹의 지배구조를 장악하게 되면, 그는 세금 한 푼 안 내고 자산 500조원의 그룹을 상속받게 된다. 그가 내야 할 세금의 상당부분은 결과적으로 회사가 여러 형태의 손실로 치르게 된다. 그리고 한국의 '슈퍼 갑' 삼성은 자신의 손실을 구조조정과 각종 원하청 관계를 통해 노동자와 중소기업에게 전가한다. 결국 이재용 경영권 승계 비용을 국민이 대신 치르게 되는 셈이다.

다음으로 엘리엇이 요구를 관철시키게 되면 이는 곧바로 국부유출이다. 엘리엇과 같은 헤지펀드는 투자 수익 대부분을 곧바로 펀드 투자자들에게 배당한다. 엘리엇의 투자가 생산적 기업 활동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만큼 결국 국가의 부 일부를 빼 가는 것 이상일 수 없다. 엘리엇이 지분 획득에 투자한 돈과 고수익을 추구하는 헤지펀드 성향을 감안하면 이들이 노리는 이익은 수조원대일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돈은 모두 한국의 노동자들이 생산한 부가가치다.

요컨대 삼성-엘리엇 분쟁에서 노동자들이 얻을 것은 ‘손해’뿐이다. 애국으로 포장된 이재용 경영권 승계 프로젝트나, 공정한 주주가치로 포장된 엘리엇의 투기행각 사이에 노동자들의 이해는 없다.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건 삼성의 이익을 노동자 모두가 고루 누릴 수 있도록 총수 일가의 경영권을 제한하고 노동자의 통제를 높일 수 있는 수단이다.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에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는 국민연금이 경영에 적극 개입해 삼성의 경영전략 자체를 국민경제와 긴밀하게 연결시키고, 정부와 국회가 노동자들이 집단적 힘으로 재벌과 교섭할 수 있도록 무노조 정책을 규제하고 다양한 초기업적 교섭을 보장할 제도를 발전시킬 수 있다면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적산기업 불하로부터 시작해 정부의 각종 지원 속에 발전한 삼성의 소유권은 사실 따지자면 이재용씨보다는 국가가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전자·중공업·건설·유통·물류 등 한국의 모든 산업 최정점에 위치한 삼성에 대해 2천만 노동자 모두가 교섭할 권리가 있다는 것 역시 관점에 따라서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한편 진보진영 일부에서는 주주권리를 보호하는 것을 해법으로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이는 결국 엘리엇의 이해관계와 다르지 않다. 또 일각에서는 삼성의 경영권 승계와 투기자본의 공격을 제도적으로 방어해 주고 대신 삼성의 사회적 책무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이 또한 삼성이 한국에서 부를 축적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수탈해 온 역사를 너무 가볍게 여긴다는 점에서 결국 이재용씨의 이해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삼성과 엘리엇의 힘겨루기에서 지금 필요한 건 양쪽 중 누구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한국 다수 노동자의 이해관계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보다 명확히 하는 일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한지원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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