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복수노조 시행과 함께 도입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사용자들의 ‘신종 노조탄압’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용자들이 이른바 회사노조 설립을 측면지원한 뒤 조합원들을 회유·설득해 회사노조의 규모를 키워 주는 방식으로 독점적인 교섭권을 부여하고, 반대로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박탈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민주노총이 14일 오전 서울 정동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어떻게 악용되는가’라는 주제로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노동조합 관계자들은 “사용자들이 회사측과 가까운 신규노조를 동원하는 방식으로 창구단일화 제도를 악용하면서 기존의 단체협약이 무력화되는 등 노동조건이 저하되고 노사갈등이 증가했다”고 토로했다.

◇교섭질서 혼란 막는다더니=고용노동부는 2011년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도입하며 “기업 내 여러 개의 노동조합 중에서 사용자와 교섭할 수 있는 ‘대표노동조합’을 정하는 것으로서 교섭 질서의 혼란을 막고 교섭력을 높일 수 있는 제도”라고 홍보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낮은 임금과 고용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속속 노조를 설립했던 대학교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현재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에는 서울지역 17개 대학교 청소용역 노동자로 구성된 분회가 설립돼 있다. 이 중 14곳에 복수노조가 들어선 상태다. 복수노조 14곳 중 12곳은 한국노총 소속 A노조에 가입해 있다.

최다혜 지부 조직차장은 “대학 사업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기존노조 무력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라며 “원청인 대학이 직접 개입해 기존 노조를 파괴하고 회사노조를 설립한 경우, 하청업체들이 기존 노조 일부 조합원을 선동해 복수노조를 설립한 경우, 비조합원이 사측과 공모해 복수노조를 설립하는 경우”라고 설명했다.

이어 “회사와 결탁한 뒤 교섭권을 확보한 신규노조는 회사가 추진하는 해고나 구조조정 문제를 묵인·방조하거나 교섭 중 양보안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교섭을 교란시키고 있고, 이때 사용자들은 기존노조와 신규노조 조합원을 차별하며 기존노조를 고립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회사노조 내세워 노동시장 구조개악?=이날 간담회에서는 유독 A노조의 사례가 자주 언급됐다. 민주노총 소속 기존노조가 활동하던 사업장에 한국노총 소속인 A노조가 복수노조를 설립하면서 노사갈등과 노노갈등이 증폭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주로 보건의료노조·대학노조·공공운수노조 사업장에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김형식 보건의료노조 조직2실장은 “신규노조가 만들어질 때마다 A노조가 등장한다”며 “병원 관리자들은 ‘직원 모두 힘을 모아야 하니 A노조에 가입하라’는 식으로 강요하고, 보건의료노조 조합원은 따돌리는 방식으로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병국 대학노조 정책국장도 “A노조는 평소 존재를 드러내지 않다가 교섭요구노조를 확정할 때 나타나 조합원수가 많다는 이유로 교섭대표노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며 “그런데 A노조는 조합원 명단 등을 일체 공개하지 않아 조합의 실제를 확인할 길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해 양대 노총이 함께 실시한 복수노조 사업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의 69.2%, 한국노총 사업장의 73%가 “복수노조 제도 도입으로 단결권이 약화됐다”고 응답했다. 또 민주노총 사업장의 70.8%, 한국노총 사업장의 66.8%가 “복수노조 제도 도입으로 교섭권이 약화됐다”고 답했다. 사용자들이 기존노조를 약화시키려는 의도로 복수노조 제도를 악용할 여지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은정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악용해 기존노조를 무력화하려는 사용자들의 부당노동행위가 계속되고 있고, 심지어 회사노조를 앞세워 임금피크제 도입이나 취업규칙 개악을 시도하는 사용자도 있다”며 “창구단일화 제도가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 실현을 위한 교두보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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