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78)씨는 전기와 물이 끊긴 채 부서져 가는 쪽방 건물에서 살고 있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9-20구역이다. 그간 김씨는 월 20만원의 기초연금과 자녀들이 보내 주는 약간의 용돈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4.96제곱미터(1.5평) 쪽방에서 월세 15만원을 내고 식사는 대부분 무료급식으로 해결했다.

그런데 건물주가 올해 초 세입자들에게 퇴거명령을 내리고 5월부터는 철거공사를 시작했다. 화장실 문에 이어 빈 옆방을 부수면서 김씨가 사는 방에 소음과 먼지, 파편이 날아왔다. 지난달부터는 전기·물이 끊겼다. 김씨는 "우리도 시민인데 경찰도, 구청도 우릴 보호해 주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쪽방부터 상가까지 스며든 '강제퇴거'

빈곤사회연대를 비롯한 8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2015 반빈곤 권리장전'은 지난 10일 도시빈민 권리장전 보고서를 발표했다. 대학생 130여명이 참여한 반빈곤 권리장전 실천단이 지난달 29일부터 이날까지 도시빈민·영세상인들의 강제퇴거·인권침해 사례를 조사한 내용을 담았다.

9-20구역 건물주가 건물 안전수준이 나쁘다며 세입자들의 반발에도 철거·보강공사를 시작한 뒤 세입자 45명 중 7명만 남았다. 남은 이들은 단전·단수로 인한 더위와 악취·불안감을 견디고, 떠난 이들은 높아진 월세와 생활비 부담을 호소한다. 동자동 쪽방촌처럼 공동체가 형성돼 있고 쉼터나 무료급식소가 가까운 곳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강제퇴거 사태는 쪽방촌 전체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최근 동자동에 재건축사업이 활발한 상황에서 철거 요구가 연이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동자동 쪽방촌에서는 건물 69채에 1천200여명이 살고 있다. 주거민의 70% 이상이 기초생활수급자다. 대개 50대 이상 노인층이다. 평균 주거비 21만5천원인 쪽방이 이들의 마지노선인 셈이다.

빈민보다 사정이 나은 영세상인들도 철거 위협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서울·경기지역 임차상인들은 점포주로부터 강제철거 요구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1억~4억원의 권리금을 내고 5년부터 18년까지 한곳에서 영업을 했다.

그런데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상가임대차법)상 임차인 보호기간은 5년에 불과하다. 임대료 인상률을 제한해 주지도 않는다. 그러다 보니 보호기간이 지나면 무조건 재계약을 거부하거나 임대료를 인상해 퇴거를 압박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용만두'는 지난해 점포주의 딸이 그 자리에서 장사를 하겠다고 나서면서 재계약을 거부당했다. 점포주가 낸 명도소송에서도 졌다. '만복'은 건물 리모델링을 이유로 퇴거명령을 받았다. 올해 3월 강제퇴거 계고장을 받은 상태다. '신신원'은 2013년 점포주로부터 보증금과 월세를 두 배 올려 주지 않으면 1년 후 퇴거시키겠다는 통보를 받았고, 이듬해 두 차례 강제철거 집행에 시달렸다.

"가난한 사람도 권리가 있다"

실천단은 이날 오후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고서를 토대로 만든 '2015 도시빈민 권리장전'을 발표했다. 이들은 "서울시는 쫓겨나는 약자들의 문제에 책임감 있게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실천단은 △서울시의 공공쪽방대책 마련 △재개발지역 주민들의 재정방안 마련 △노점상과 지역상인의 공존을 위한 자율질서 보장 △임차상인의 안정적인 장사 권리 보장 △홈리스 일자리·주거 지원 △가든파이브 이주상인 보상계획 수립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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