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는 최저임금 협상은 그만하고 일단 정부가 어느 정도 올릴 생각을 갖고 있는지, 공익위원들은 정부 뜻에 어느 정도 부응하려고 하는지를 먼저 솔직하게 공개하고 그 범위 안에서 그냥 정합시다. 3개월 동안 속된 말로 정말 빡세게 협상했는데, 인상률을 보면 왜 그렇게 결정했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네요.”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인 이정식 한국노총 사무처장은 9일 새벽 내년에 적용될 최저임금이 결정되자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이같이 말했다. 최저임금위 사용자위원인 김동욱 한국경총 기획홍보본부장 역시 “열심히 협상에 임했지만 소모적인 논란에, 보여 주기 식 회의만 한 것은 아닌지 회의감이 든다”며 “차라리 노사는 의견만 제시하고 정부가 책임 있게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고 밝혔다.

“이럴 바에는 정부가 결정하라” 항의성 비판 많아

올해 최저임금 결정 과정을 바라보면서 또다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끓고 있다. 최저임금위가 매년 최저임금을 결정하고는 있지만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결정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비판이 늘 제기되기 때문이다. 노동계와 경영계 일각에서는 “아무도 모른다 혹은 정부만 안다가 정답일 것”이라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최저임금위는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을 결정하면서 “협약임금인상률 4.4%와 소득분배개선분 2.1%, 협상조정분 1.6%를 반영해 8.1%로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나름 객관적인 지표를 근거로 인상률을 결정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최저임금법(제4조)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해 최저임금을 결정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소득분배조정분을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하겠다고 공약하기도 했다. 최저임금위와 최저임금법, 박근혜 대통령 모두 비슷하면서도 다른 기준을 밝힌 셈이다.

국회에도 23개나 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제출돼 있다. 대다수 법안이 최저임금 수준과 결정기준, 결정방식에 관한 것이다. 쉽게 말해 어떤 경제 혹은 통계지표를 반영해 어느 수준에서 누가 최저임금을 결정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이목희·유승희 의원은 “최저임금을 국회에서 결정하자”는 주장까지 내놓았다. 같은 당 문재인 대표는 “전체 노동자 평균 정액급여의 50% 이상 수준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새누리당에서는 김성태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을 담은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23개 개정안 중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단 하나도 없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관계자는 “단일 법안으로는 개정안 발의 개수도 많고 여야 간 논의도 가장 많이 했던 법안이 최저임금법”이라며 “결국은 제도개선을 통해 최저임금을 어느 수준으로 결정할 것인가가 핵심 문제인데, 이를 바라보는 여야의 눈높이가 달라 합의에 이르지는 못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하반기에 최저임금제도 개선논의 본격화

최저임금위도 이러한 비판과 논란을 의식해 올해 하반기부터 위원회 운영방식과 최저임금제도 개선논의에 나서기로 했다. 올해 최저임금위에서는 최저임금을 시급과 월급을 함께 고시하고 심의 참고자료인 소득분배율 지표에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을 추가하는 일부 제도개선을 이뤄 내기도 했다.

최저임금위 관계자는 “노사는 물론 정부 역시 최저임금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며 “노사정 주체들이 각자 제시한 의제와 안을 토대로 이른 시일 내에 제도개선 논의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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