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언제부터인가 ‘고용-노동’이라는 표현이 익숙해졌다. 알다시피 원래 노동(labor)은 고용(employment)의 상위개념이다. 노동은 고용을 매개로 해서 이뤄질 수도 있고, 고용이 아닌 형태로도 가능하다. 고용은 노동의 특수한 역사적 형태이며, 노동은-옛 철학자의 말씀처럼-유적존재로서 인간성의 핵심을 이루는, 지구상에 인류사회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함께할 그 무엇이다. 고용 없이 노동은 가능하지만, 노동 없는 고용은 성립할 수 없다.

현대 산업사회에서 고용은 단순히 누군가가 행하는 노동의 특수한 형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한 인간의 물리적 생존의 절대적 기회를 제공하는 것일 뿐 아니라 그의 사회적 존재성의 핵심 기반을 이루기도 한다. 고용은 한 사람의 사회 구성원이 지니는 사회적 신분을 가리키며, 그러하기에 사회인으로서 그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그가 행하는 사회적 소통과 활동의 기초 틀을 규정한다. 우리말로 "사회에 진출한다"는 말은 사실상 "어느 직장에-정규직으로-고용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나.

서두에서 언급한 ‘고용-노동’이라는 표현에는 고용과 노동이라는 두 개의 유관단어를 함께 묶어 사고하려는 지향이 함축돼 있다. 이는 한국 사회의 현재 상황에서 요구되는 정책의제의 성격과 관련해 별도의 의미를 갖는다. 말하자면 고용은 노동시장적 의제를, 노동은 노사관계적 의제를 가리킨다.

노동문제에서 고용문제를 분리한 것은 과거 우리 사회에서 그다지 큰 문제로 여기지 않던 고용이라는 주제를 하나의 독자적인 사회문제(social problem)로 바라보게 됐음을 의미한다. 오랫동안 노동부로 칭해졌던 정부부처도 몇 년 전부터 고용노동부로 이름을 바꾼 바 있다. 여기에는 노동문제로 해결되지 않는 고용문제만을 향한 별도의 정책적 관심과 노력을 행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노동문제는 대체로 누군가가 고용된 이후 겪는 처우의 정당성에 관한 문제, 특히 노동인권의 문제가 주를 이뤘다. 고도성장기 완전고용에 가까운 노동시장 상태를 구가했던 그 시절 고용은 노동에 비해 그다지 문제될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90년대 우리 사회에서 노동문제가 민주화와 자주적 노동조합의 제도화를 통해 일정하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자리를 잡아 가려 할 즈음, 세기말을 전후해서 고용문제라고 하는 새로운 주제가 우리 사회에 급부상하게 됐다.

오늘날 우리 사회 고용문제의 핵심주제는 일차적으로는 지역과 세대를 초월해 사회 구성원들에게 고른 고용기회를 제공하는 문제이고, 이차적으로는 그들의 고용이 사회적 시민권 보장이 담긴 최소한의 양질의 성격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고용문제가 발생하게 된 원인의 주요한 축으로 노사관계라고 하는 요인을 들지 않을 수 없다. 80년대에 억지로 왜곡시킨 기업별노조라고 하는 한국식 제도에 대기업과 공공부문 중심 노동운동의 고양이 결합되면서 결과적으로 90년대 이후 노동시장 질서는 노조의 보호를 받고 고임금·고복지·고용안정을 누리는 중심부와 그렇지 못한 주변부로 구분돼 갔고, 그들의 차이는 심화돼 갔다.

그러한 속에서 사회 구성원들에게 고른 고용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점차 어려워졌다. 고용을 매개로 한 사회적 시민권의 배분은-의도적·비의도적으로-불균등하게 이뤄지게 됐다. 여기에 비용절감과 리스크 회피를 추구하려는 자본의 전략이 더해져서 정규직 약화와 비정규직 양산이 도모되면서 고용문제는 더욱 심각해져 갔다.

고용문제의 이러한 발발에는 노사관계가 다른 식으로 작동하지 못한 것이 분명 하나의 주요한 원인을 제공한다. 따라서 고용문제를 해결하려면 노사관계의 새로운 작동을 통해 그 답을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고용문제 해결을 위해 지금 같은 식의 노사관계를 접고 파괴시키고 무시해야 하나. 공격해야 할 지점, 지양해야 할 대상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러한 답을 찾는 구체적인 노력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은 고용문제 해결이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노사관계 강화와 같이 가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고용문제 해결을 위해 노사관계를 제치고 파괴한다면, 이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혹여나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이나 도덕성 훼손을 도모하면서 여론에 편승하려는 전략을 편다면, 그것은 정치적 무능과 무책임을 의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노동조합 역시 노사관계의 제도화된 권력자원을 전국·지역·업종, 나아가 사업장 곳곳에 산재해 있는 고용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누리는 작은 제도권력의 정당성이 계속해서 살아나고 커질 수 있다. 노동은 고용보다 크며, 노동조합은 고용조합이 아니다. 그리고 아니어야 한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mjnpark@kl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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