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고용보험이 어느덧 20주년을 맞았다. 1995년 7월 이 제도가 처음 도입됐을 당시에는 생경했다. 실직자들에게 생계를 보조하고 취업훈련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였지만 활용도가 낮았던 탓이다. 고용보험이 빛을 발했던 것은 98년 외환위기 이후부터다. 실업자가 대량으로 발생하면서 실업급여 수급자들이 대폭 늘었다. 애초 3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됐던 고용보험은 98년 10월부턴 1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됐다. 외환위기 첫해인 98년 실업률이 8.6%까지 치솟았지만 2000년에는 절반(4.1%) 수준으로 떨어졌다. 고용보험이 뒷받침했기에 가능했다는 평이다. 지난해 12월 현재 고용보험 가입 사업장은 193만5천곳, 피보험자는 1천193만1천명이다.

고용보험에도 그늘이 있다. 고용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전체 임금노동자 가운데 286만7천명(15.3%)이 고용보험 적용제외자다. 가사노동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초단시간 노동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가입 대상자인데도 가입하지 못하는 이들을 포함하면 393만7천명(21%)이나 된다. 약 400만명의 노동자는 어떤 지원도 없이 생계 곤란을 겪으며, 일자리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취약계층에 사회보험 일부를 지원하는 두루누리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취약계층 지원과 고용보험 가입률이 제고됐지만 아직은 걸음마를 뗐을 뿐이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 실업급여 수급기간과 수급금액은 꼴찌나 다름없다. 실업급여 수급기간과 수급액은 더 늘리고, 적용제외자는 끌어안아야 한다. 지난 노사정 협상에서도 이 문제가 논의됐다. 당시 정부는 최대 2조5천억원의 재원을 조성해 실업급여 수급기간과 수급액을 늘리겠다고 제안했다. 그런데 노사정 협상이 결렬되자 정부 제안은 흐지부지됐다. 다만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달 1일 “정기국회 전까지 노사정 논의를 거쳐 실업급여 보장성 강화와 재취업 촉진기능 강화가 담긴 종합 개편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 장관이 백지화된 정부 제안을 살릴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고용보험을 개선하더라도 실업의 어두운 그늘을 다 지울 수는 없다.

고용보험은 어디까지나 가입자만 지원한다. 가입했더라도 비자발적으로 퇴직한 노동자만 실업급여를 받을 자격이 있다. 자발적 퇴직자는 물론 구직급여 수급기간이 끝났지만 취업하지 못하는 이들은 아예 배제된다. 청년·장년층 등 취업취약계층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와 달리 유럽 국가들은 고용보험에서 배제된 이들을 위해 실업부조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노사가 낸 보험료로 운영하는 고용보험과 국가(일반회계)가 지원하는 실업부조로 실업자들을 두텁게 보호하고 있다. 특히 독일 사례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독일의 경우 실업자가 고용보험 실업급여 지원이 끝나도록 취업하지 못할 경우 실업부조를 받을 수 있다. 지급대상에는 청년과 미취업자도 포함된다. 물론 구직노력을 하는 것을 전제로 실업급여와 실업부조가 적용된다.

올해 5월 청년실업률이 10%를 넘어섰다. 97년 외환위기 이래 처음으로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전국 청년층 실질실업률은 30%에 육박한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이젠 우리나라도 실업부조를 도입해야 할 때다. 20주년을 맞는 고용보험 운영경험을 토대로 실업자를 위한 이중보호망을 갖추자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실업부조에 대한 논의는 낯설지 않다. 2013년 노사정은 ‘고용유인형 사회안전망 합의문’을 채택했는데,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이 포함됐다. 최근 정의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조성주 후보는 “최악의 청년실업률에 대응하기 위해 청년 실업부조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이런 제안이 더 이상 유야무야돼선 안 된다. 이젠 실천을 해야 할 때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불안정성이 강화되고 있는 만큼 서둘러 실업부조를 도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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