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올해 산별교섭을 앞둔 보건의료노조의 고민은 더욱 깊다. 병원들의 피해와 혼란이 큰 만큼 교섭 또한 난항이 예상된다. 신규 확진환자는 줄어들고 있지만 구멍난 방역체계와 무너진 의료시스템으로 감염이 재확산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유지현(47)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메르스의 교훈은 병원을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며 "노조와 병원·국가가 산별교섭과 사회적 논의과정을 통해 함께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사무실에서 유 위원장을 만나 메르스 사태로 확인된 의료시스템의 문제점과 그 해법을 들었다.

- 현재 병원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

“초기보다는 안정을 찾고 대응하고 있다. 치료병원들은 아직 전쟁터다. 인력은 운영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족하다. 중증환자를 다룰 수 있는 숙련된 간호인력이 적어서다. 시설과 장비 문제도 크다. 부족한 곳은 여전히 부족하다. 인력과 시설·장비는 한 번에 확충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가 공공병원을 천덕꾸러기 취급하면서 공공병원 시설은 이미 너무 열악해져 있다.”

메르스 확산은 '인재' … 정부 책임져야

유 위원장은 “확진환자 치료는 의료의 영역이지만, 방역은 행정과 정치의 영역”이라며 “정부는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 병원들이 초기에 큰 혼란을 겪었던 이유는 뭔가.

"평소 예산 투입과 훈련이 없던 병원에서는 매뉴얼이 작동하지 않았다. 국립중앙의료원은 평상시 보호장구 착용, 감염환자 대응 훈련을 해 왔다. 보호장구도 매뉴얼보다 높은 C등급을 착용했다. 그래서 혼란 없이 대응했고, 중증환자를 수용했는데도 감염자가 없었다. 그러나 평택성모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은 그렇지 않았다. 그 와중에 정부가 선제적 방어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니 정보공유나 빠른 대응이 불가능했다. 정부 감염병 대응의 핵심은 감염 확산 방지와 국민 혼란 방지다. 정부는 다 실패했다. 정부가 현실에 맞지 않는 매뉴얼만 갖고 경직된 대응을 했다. 전문가집단을 내세웠지만 이들도 실제 현장을 확인하고 현실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결국 환자가 확산됐고, 이는 정부의 잘못된 판단과 뒷북 대응에 의한 인재다."

이제는 메르스 이후를 고민해야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의료공급체계 개편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정부와 정치권이 뒤늦은 대책을 내놓고 있으나, 긴급히 추진된 만큼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유 위원장은 “양질의 공공병원 확대, 감염안전 시스템, 의료인력 확충이 의료공급체계 개편의 핵심”이라며 “이것들이 담기지 않은 대책은 단기처방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 노조는 메르스 재발방지 대책으로 4대 방향 11개 과제를 제시했다. 핵심은 무엇인가.

"4대 방향은 국립중앙의료원 주도의 공공의료체계 정비 및 강화, 인력확충, 보호자 없는 병원을 포함한 병원 안전시스템 강화, 병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다. 정부가 보호자 없는 병원 같은 포괄간호서비스 시범사업을 앞당겨 추진한다고 했는데 매우 환영한다. 다만 정부가 노조의 실태조사나 현장 의견을 적극 수렴하고, 국가 차원에서 의료인력 수급 계획을 수립해야 실현가능하다. 그런 차원에서 올해 하반기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 제정이 절실하다. 그 외에도 질병관리본부의 위상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나라 질병관리본부는 보건복지부 산하 부처로 3개 부서 157명의 작은 조직이다. 미국은 독립된 중앙부처다. 해외에 파견 가능한 인력만 3천여명이다. 최근 신종 감염병이 6년 주기로 발생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본부를 강화해 대응해야 한다."

- 병원 안전시스템이란 구체적으로 뭔가.

"인력 외에도 감염환자와 비감염환자를 구분하는 시설, 감염관리가 가능한 인력구조 구축이다. 예컨대 병원마다 음압병실을 의무화하고 감염병 환자 이동통로를 따로 두는 거다. 의료기관 평가인증에도 감염관리 부문을 포함해야 한다. 감염관리 전문간호사를 의무적으로 배치하고 정부가 이를 지원하거나, 감염병 환자의 1인실 음압시설 이용에 건강보험을 적용해 비용 걱정 없이 치료하도록 해야 한다. 병원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시행하고, 감염병 환자 치료 뒤에는 특별검진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 메르스 피해 보상 기준 마련도 민감한 문제다.

"의료진들이 상당수 감염됐고 감염 위험에 노출돼 있다. 또 병동 폐쇄 후 강제휴가를 간 사람들은 내년 연차까지 다 소진하고 있다. 메르스는 국가 재난사태인 만큼 폭넓고 적절한 보상대책이 필요하다. 노조가 메르스 사태 피해보상 및 의료대란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을 요구한 배경이다. 최근 복지부가 병원 전체를 코호트 격리하고도 환자가 발생한 병동만 보상하거나 환자 경유 병원은 보상하지 않는다는 식의 얘기가 들린다. 보상 기준 마련을 위한 전문가·시민사회단체와 노조의 의견수렴이 필요하다."

▲ <정기훈 기자>

"병원들, 산별노조와 함께 의료산업계 변화 모색해야"

- 노조는 오는 8일부터 산별 임금·단체협약을 개시한다. 올해 산별교섭 쟁점은 뭔가.

"노조는 올해 환자 존중·직원 존중·노동 존중 3대 캠페인을 주요 사업으로 결정했다. 산업안전보건대책 강화, 폭언폭행 근절, 오버타임 근절, 인력확충 같은 문제를 개선해 환자와 노동자의 안전을 지키자는 거다. 이를 위한 법·제도적 뒷받침은 정부와 국회에, 병원 문화 개선은 사용자에 요구할 것이다. 이 3대 캠페인에 위배되는 5대 문제 사업장을 선정했다. 이들 사업장 문제 해결을 위해 7~8월 동안 매주 수요일 집중집회를 여는 등 투쟁 역량을 집중할 것이다. 이 밖에도 교섭을 해태하거나 임금피크제 도입 같은 개악안을 내놓은 곳도 집중타격한다. 메르스 사태로 드러난 의료체계의 문제는 곧 안전의 문제고, 3대 캠페인의 핵심도 이것이다. 이번 교섭을 병원과 의료체계 혁신 투쟁의 기점으로 삼을 것이다."

- 병원들이 메르스 사태를 겪은 뒤라 교섭이 어려울 것 같은데.

"쉽지 않을 거다. 그러나 안전을 협상할 수는 없다. 노조는 민주노총 요구안(8.2% 인상)보다 낮은 수준인 6.8% 임금인상 요구안을 제시했다. 절대 양보가 아니다. 8%와 6% 사이의 간극은 노조가 안전을 위해 투자한다는 것이다. 사용자들도 어렵다고만 하지 말고 노조의 진정성을 받아들여 건설적인 논의를 했으면 한다. 이번 교섭은 메르스 사태에서 불거진 의료공급체계와 인력·안전 문제를 보건의료산업 차원에서 어떻게 극복할지를 함께 논의하고 정책 변화를 모색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 정부가 비밀주의를 내세우면서 병원과 병원노동자들도 메르스 관련 정보공개를 꺼렸다. 그럼에도 메르스 사태에 대응해 병원현장의 실태 전반을 조사하고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할 수 있었던 것은 산별노조이기 때문이다. 국내 산별노조운동이 더 발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나 사용자·노동계 모두 이를 긍정적으로 보고 산별노조와 함께 공공의료 개혁 대책을 마련했으면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