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에선 신음 소리가 나왔고, 또 한편에선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야구장일까. 아니다. 지난 2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과 서초구 서초동 사람들의 분위기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자 여의도동 1번지 국회에선 탄식이 흘러나왔다. 전날만 해도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도 있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과 가뭄으로 흉흉한 민심을 추스르는 일이 우선이어서다. 그런데 역시나였다. 박 대통령이 ‘배신’ ‘심판’이라는 단어를 쓰며 여야 정치권을 향해 화살을 쏘아 대자 여당은 고개를 숙였고, 야당은 격앙했다. 국회는 순식간에 정쟁의 회오리에 휩싸였다.

반면 같은날 서초동 대법원 청사 주변 분위기는 달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주노동자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근로자”라는 판결을 확정하자, 초조하게 기다리던 이주노동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은 만세삼창을 하며 환하게 웄었지만 이내 볼에는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주마등처럼 지난 시간이 스쳐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했다는 이유만으로 모진 냉대와 멸시 그리고 강제추방을 온몸으로 견뎌 냈다. 무려 10년 동안의 세월이다. 대법원이 태도를 바꾼 게 아니라 그들이 세월의 무게를 이겨 내며 얻어 낸 값진 성과다.

대법원 판결은 2심 고등법원 판결 내용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고등법원은 “취업자격이 없는 외국인이라도 노조법상 근로자의 범위에 포함된다”고 판결했고, 대법원도 이 내용을 그대로 준용했다. 단, 대법원은 “시대 변화에 맞춰 취업자격이 없는 외국인 근로자의 노조설립과 가입을 허용하더라도 그 부작용을 극복할 만한 여건과 국가적 저력을 갖춘 상황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서울노동청이 상고한 후 무려 8년 동안 판결을 미룬 배경을 설명한 것이다. 국제사회의 빗발치는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곳이 대법원이다. 대법원의 변명치곤 이처럼 궁색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조는 이른바 ‘노조법상 노조이자 합법노조’라는 이름을 얻은 것일까. 소송의 당사자인 고용노동부는 노조설립신고 절차의 원점으로 돌아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즉, 대법원 판결에 따라 자동으로 노조법상 노조로 인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조설립 요건과 규약 등에 문제가 없는지 검토해 조치하겠다는 얘기다. 이것은 자격심사를 하듯 노조설립요건과 규약에서 꼬투리를 잡겠다는 식으로 느껴진다. 노동부의 이런 반응은 의외다. 노동부는 통상임금 관련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바탕으로 행정지침까지 만들었다. 이번 이주노조 관련 대법원 판결에 대한 태도와는 대조적인 셈이다. 노동부가 패소한 소송 당사자라서 그런가.

애초 서울노동청은 노조설립신고 요건에도 없는 ‘조합원 명부’ 제출을 요구하며 설립신고서를 반려했다. 10년 법정분쟁의 단초를 제공했다. 노동부는 또다시 이런 소모적인 행정조치를 취하려는 것인가. 이것이 기우이길 바라지만 그렇지 않다면 10년 동안 이주노동자 투쟁과 대법원 판결에 재를 뿌리는 격이다. 대법원조차 “노조활동을 포함한 근로자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국제적 기준”이라고 했음에도 노동부만 ‘마이동풍’인 셈이다. 버티던 대법원이 국제기준을 따랐음에도 노동부만 구시대적 몽니를 부리는 것이다.

신규노조는 행정관청에 노조설립신고서 외에 규약과 설립총회 회의록만 추가로 제출하면 된다. 행정관청이 조합원 명부 제출을 의무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 이는 노조설립 ‘신고제’를 ‘허가제’로 변질시킬 뿐만 아니라 노조설립자유주의 취지를 훼손한다. 대법원도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조 실체를 인정해 노조법상 노조로 인정한 만큼 노동부도 이런 취지를 따르면 된다. 노동부는 설립신고증만 내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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