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6일은 국제가사노동자의 날이다. 2011년 같은날 국제노동기구(ILO)는 100차 총회에서 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협약(189호)을 채택했다. 이날 전국가정관리사협회·한국가사노동자협회·한국YMCA연합회는 정부에 협약 비준을 촉구했다.

ILO의 가사노동협약은 가사·보육·요리 등을 제공하는 가사노동자에게 적용된다. 이 협약은 최소한 하루 이상의 정기휴일, 산업재해 발생시 보상절차, 노동조합 결성 등을 가사노동자에게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고용인이 가사노동자를 고용할 경우 급여·노동조건·노동시간이 명시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필리핀·독일 등 17개국이 이 협약을 비준했으나 한국정부는 거부하고 있다. 정부가 가사노동협약 비준을 주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이 가사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부인하고 있는 탓이다. 가사노동자도 아니고 ‘가사사용인’이다. 근로기준법 제11조에 따르면 가사사용인은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자로 분류된다. 가사사용인의 근로제공은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부분이라 국가가 감독하거나 개입할 수 없다는 명분이다. 가사사용인은 근기법은 물론 산재보험·고용보험 등 4대 사회보험을 적용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맞벌이 가정이 늘면서 가사노동자의 수요는 급격히 늘었다. 국내 가사노동자는 약 50만명에 이르며, 민간부문에만 3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비공식적으론 돌봄서비스 분야의 종사자는 100만명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가사노동자의 평균 연령은 50대 초반이며, 월평균소득은 최저임금보다 적다. 그야말로 쥐꼬리보다 적음에도 민간직업소개소는 그들의 임금에서 소개료를 어김없이 떼어간다. 노동시장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음에도 가사노동자는 근기법 사각지대에서 신음하면서 노동자도 아닌 ‘유령’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그것도 1953년 근기법이 제정된 이래 61년 동안이다.

물론 ILO가 가사노동협약을 채택한 후 국회와 정부가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했다. 지난 2012년 9월 김춘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발의한 '가사노동자 협약 비준동의안 제출 촉구 결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가사사용인의 근기법 적용제외 조항을 삭제하는 법안도 발의됐다. 하지만 정부는 이 협약 비준을 미루면서 ‘대체입법’을 추진했다. 박근혜 정부는 올해 2월 ‘가사서비스 이용 및 종사자 고용촉진을 위한 제도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가사노동자는 정부가 인증한 서비스제공기관에 직접 고용된다. 정부로부터 쿠폰을 구입한 가정에 가사서비스가 제공되며, 서비스제공기관은 정부로부터 해당 비용을 받는다. 서비스제공기관에 직접 고용된 가사노동자들에 대해 4대 사회보험 적용을 하되, 정부는 보험료 일부를 지원하기로 했다. 노동부는 지난 5월부터 ‘특별법’ 형식으로 입법한다는 계획 하에 서비스제공기관으로부터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

노동부의 이런 행보는 당초 예고한 것보다 미뤄진 것이다. 애초 노동부는 올해 3월 입법예고하고, 관련 법률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내년부터 가사서비스 제도화 방안이 시행된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상반기가 지나고 있음에도 노동부는 국회에 관련 법안을 제출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노동부는 가사서비스의 고용관계는 제도화했지만 가사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은 개선방안에 명시하지 않았다. 가사사용인의 근기법 적용제외 조항은 그대로 둔 채 특별법 형식으로 입법한다는 구상이다. ILO의 가사노동협약에는 가사노동자의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가 규정돼 있지만 노동부는 특별법을 마련하면서 이를 제외한 것이다.

가사서비스 고용관계를 개선하고, 사회보험을 적용한다는 것은 종전보다 진일보한 것이다. 그런데 가사사용인 근기법 적용제외 조항과 특별법은 상충된다. 박근혜 정부가 ILO 가사노동협약 비준을 주저하는 까닭이 가사노동자의 노조결성을 막기 위함이었던가. 이런 판단이 기우에 그치길 바란다. 노동부가 기왕에 가사서비스 고용관계를 개선하기로 했다면 ILO 협약에도 명시됐듯이 노조결성의 자유도 보장해야 하지 않겠나. ILO 협약 취지에 따라 가사사용인의 근기법 적용제외 조항도 삭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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