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제조업 노동자들은 40대부터 임금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은 30대부터 임금하락을 겪기 시작해 40~50대가 되면 20대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 중인 임금피크제가 산업단지 노동자들에게는 이미 준용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정부가 임금피크제 도입 이유로 내세우는 정년연장 효과는 찾아보기 어렵다. 직업경력이 길어져도 근속연수는 늘지 않고, 외려 임금수준만 낮아지는 상황이다. 고용유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열악한 노동환경은 장시간노동으로 귀결되고 있다. 민주노총이 전국 8개 지역 16개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노동자 1천437명을 설문조사해 16일 발표한 결과다.

◇임금체불 경험 58.5%=산업단지 노동자 10명 중 9명은 근로기준법 위반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전체 응답자의 58.5%가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시간당 임금이 최저임금에 못 미친다는 응답자가 34.8%, 약정근로시간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면서 정작 연장근로수당을 받지 못했다는 응답자는 36.1%나 됐다.

산업단지 입주기업들의 불법휴업 실태도 심각하다. 근로기준법 제46조(휴업수당)는 “사용자의 귀책사유로 휴업하는 경우에 사용자는 휴업기간 동안 그 근로자에게 평균임금의 100분의 70 이상의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민주노총 조사 결과 물량이나 자재 부족 같은 회사 귀책사유로 휴업했는데도 법에 따라 수당을 받은 경우는 2.2%에 그쳤다. 휴업기간 해당 노동자의 연가휴가를 소진시키는 방식으로 ‘휴업수당도 안 주고, 연차수당도 안 주는’ 사례가 15.7%나 됐다.

근로계약서를 체결하고도 해당 노동자에게 교부하지 않은 경우는 67.5%로 집계됐다. 산업단지 노동자 대다수가 자신의 노동조건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근로계약서를 받았다는 노동자를 고용형태별로 재분석했더니 눈에 띄는 결과가 나왔다. 기간제 노동자 비중(92.2%)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온 것이다. 적정 임금과 휴일 보장이라는 근로계약서 교부 취지가 퇴색하고, 근로계약서가 근로계약기간을 채운 노동자를 해고하는 용도로 활용되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초과근로로 생계비 벌충=임금수준이 낮을수록 노동시간이 길어지는, 다시 말해 초과근로수당으로 부족한 생계비를 메우는 노동자도 적지 않았다. 조사에 응한 노동자들의 1주일 평균 노동시간은 49.7시간으로 올해 3월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서 확인되는 노동자 평균 노동시간(41.9시간)을 훨씬 웃돌았다. 반면 응답자들의 평균임금은 월 192만3천원으로 전국 평균(231만4천원)에 못 미쳤다.

이런 상황에서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 노동자들의 1주일 평균 노동시간은 53.5시간이나 됐다. 거꾸로 주 40시간을 일하는 노동자의 시간당 평균임금은 8천289원으로 조사됐다. 실질임금 상승 없이 노동시간단축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산업단지 노동자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3.4년에 불과했다. 전국 평균(5.8년)에 한참 못 미친다. 고용형태별로는 비정규직 2.4년, 정규직 4.3년에 그쳤다. 정년을 보장받는 정규직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정규직 중 근속연수가 10년 이상인 노동자는 12.8%에 머물렀다. 이 역시 전국 평균(20.7%)에 미달한다. 대다수 노동자들이 이 공장에서 저 공장으로 뺑뺑이를 돌고 있는 셈이다. 산업단지에 들어와서 일한 직업경력이 길어지더라도 근속연수가 늘지 않는 이유다. 더구나 산업단지 노동자들의 임금곡선은 30대에 정점을 찍은 뒤 하락하는 특성을 나타낸다.<그림 참조>

박준도 노동자운동연구소 기획실장은 “고용노동부가 추진하는 임금피크제가 산업단지에서는 이미 실현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정년연장이나 고용확대 효과는 찾아보기 어렵다”며 “6천280원(20대 평균시급)으로 입사해 6천666원(60대 평균시급)으로 정년을 맞는 것이 공단 노동자들의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