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아부다비 정부가 100% 지분을 보유한 국제석유투자공사(IPIC)와 그 자회사 하노칼이 한국에 보낸 국제중재 의향서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더니 국세청이 비공개 통지서를 보냈다. 지금 막 도착했다. 정부는 론스타와 마찬가지로 투자자-국가소송(ISD)에서 비밀주의로 일관하고 있다.”

이른바 만수르 ISD로 불리는 사건이다. 아랍에미리트(UAE) 부호 만수르가 회장으로 있는 IPIC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를 제기했다. 하노칼은 네덜란드에 적을 둔 페이퍼컴퍼니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 이어 한국 정부가 상대해야 하는 두 번째 ISD 사건이다.

ISD는 해외 투자자가 투자대상 국가의 법령이나 정책으로 피해를 볼 경우 국제중재를 통해 손해배상을 받도록 한 분쟁해결 제도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과정에서 국내외 전문가로부터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히며 폐지 논란이 일었지만 끝내 살아남았다. 결국 먹튀 대명사인 론스타가 ISD를 제기한 데 이어 제2·제3의 론스타가 창궐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수륜아시아법률사무소에서 송기호(52·사진)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민변 국제통상위원장을 맡아 론스타 ISD 대응의 최전선에 서 있다.

“론스타 외환은행 인수부터 매각까지 모두 미스터리”

-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부터 얘기해 보자. 무엇이 가장 큰 문제였나.

“핵심은 금융기관을 운영해 본 적이 없는 론스타가 어떻게 외환은행 대주주가 될 수 있었느냐다. 당시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산업자본(비금융주력자)은 은행을 인수할 수 없었다. 그런데 금융당국은 인수를 허용했다. 나중에서야 한국 법원은 론스타가 대주주 자격을 유지할 수 없다고 확인했다. 또 하나의 본질은 대주주 자격이 없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허용한 한국 금융관료다. 론스타는 이번 ISD에서 한국 금융관료가 이랬다저랬다 일관성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론스타가 2003년 외환은행을 인수하고 2012년 매각할 때까지 한국 금융관료가 법과 원칙에 따라 일관되게 처리했더라면 이번 ISD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미스터리다.”

미스터리는 또 있다. 론스타는 한-벨기에 투자협정에 근거해 ISD를 제기했다. 벨기에 페이퍼컴퍼니에서 소송을 제기하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소송 쟁점인 국세청의 세금부과 행위와 승인은 한미 FTA가 발효되기 이전 일이라 소급해서 소송을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론스타는 페이퍼컴퍼니를 투자자 보호대상에서 제외하지 않은 한-벨기에 투자협정을 활용했다.

송 변호사는 “2006년 12월 한-벨기에 투자협정 개정 서명식이 있었는데 당시 ISD 관련 논란이 불붙고 있었을 때라 페이퍼컴퍼니를 보호대상에서 제외하는 조항을 넣을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며 “당시로서는 표준적인 조항이었는데도 투자협정에 집어넣지 않은 것은 미스터리”라고 밝혔다.

2003년 첫 한-벨기에 투자협정 체결 당시에는 ISD의 중요성을 몰랐다고 해도 2006년 재협상 국면에서는 한국 사회가 들썩일 정도로 갈등을 일으킨 한미 FTA 협상이 진행 중이었다.

“과연 한국 금융관료가 몰랐을까. 한-벨기에 투자협정 덕에 론스타가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국제중재 회부 권리를 새로 갖게 된 것이다. 페이퍼컴퍼니를 보호대상에서 제외했다면 5조원대 론스타 ISD는 출발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마치 누군가 정교하게 기획한 것 같다.”

“정부는 론스타 요구 5조원대 근거 공개해야”

- 론스타가 제기한 5조원대 요구의 근거는 뭔가.

“론스타의 손해배상 요구액은 46억7천900만달러(5조1천300억원)다. 문제는 그 계산식을 모른다는 것이다. 내역을 요구했는데 정부가 거부했다. 론스타가 ISD를 제기한 때가 2012년 12월이다. 2년6개월이나 지났는데도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곧 비공개 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 론스타의 ISD 소송사유는 타당한가.

“론스타가 의향서에서 제시한 것과 똑같은 내용으로 재판이 진행 중인지조차 확인할 수가 없다. 의향서에서는 론스타가 여러 차례 외환은행을 매각하려고 했으나 한국 정부가 승인을 지연하는 바람에 손해를 봤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 탓으로 돌려서는 곤란하다. 당시 홍콩상하이은행(HSBC)에 팔려다가 못 판 것은 미국발 금융위기 때문이었다.

론스타는 한국 정부의 과세가 잘못됐다는 주장도 했다. 그런데 론스타는 이미 한국 법원에 과세와 관련한 소송을 진행 중이다. 그러면 ISD 회부가 어렵다. 의향서만으로는 론스타 주장의 실체가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론스타와 한국 금융관료들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다. 론스타가 어떤 주장을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혹시라도 서로 거래가 있었다면 이것이 변수가 될 것이다. 어쩌면 한국 정부가 일관되게 밀실주의를 고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수 있다.”

론스타 ISD 2차 심리는 이달 29일부터 미국 워싱턴DC 국제투자분쟁중재센터(ICSID)에서 열린다. 1차 심리는 지난달 15일부터 22일까지 같은 장소에서 열렸다. 민변은 이달 1일 ICSID에 2차 심리 참관신청서를 제출했다. 1차 심리 참관 요구는 거부당했다.

- 2차 심리 참관 요구에 대한 답이 왔나.

“ICSID 규칙에 따르면 당사자가 반대하지 않으면 참관할 수 있다. 현재까지 한국 정부는 아무런 답이 없다. 정부는 민변의 2차 심리 참관에 동의해야 한다.”

엘리엇·한중 FTA … 한국 정부 상대 ISD 봇물?

- 론스타 ISD 같은 사례가 잇따를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데.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당장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반기를 든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있다. 두 회사 합병비율을 평가할 때 자산가치가 아닌 주가로만 하는 게 공평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엘리엇이 이 같은 합병비율을 담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시행령이 투자가치를 훼손한다고 보고 ISD를 제기할 수 있다는 보도까지 나온다. 엘리엇이 ISD를 제기한다면 한미 FTA를 근거로 삼을 것이다. 국제자본이 한국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뒤흔드는 상황이다.”

한중 FTA에 대한 우려도 이어졌다. 송 변호사는 “한중 FTA는 ISD 중재절차를 대중에게 공개하는 투명성 조항조차 없다”며 “시장개방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그 개방을 정교하게 관리해 나가는 우리만의 모델이 없다”고 비판했다.

- ISD 재발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은 없나.

“론스타 ISD와 만수르 ISD에서 우리가 원치 않는 결과가 나온다면 한국의 금융·조세정책에 대해 ISD 소송이 광범위하게 발생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굉장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의 정책 자율성과 입법권·사법권이 위축되고 후퇴되는 것이다. 왜 국제자본에게만 각 나라의 국민주권조차 뛰어넘을 권한을 주는가. 개방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인권과 노동권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하지 않는가. 이런 개방은 불평등하다. 이런 것을 두고 ‘금융자본의 세계헌법화’라고 표현한다.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ISD 재검토해 금융자본 질서 깨뜨리자”

- 어떤 방향으로 재검토해야 할까.

“우리가 먼저 이런 질서를 깨뜨려야 한다. ISD에 반대하는 우리 내부에 민주주의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에 따라 제도를 재검토해야 한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그러고 나서 우리가 새로운 경제질서를 선택하면 된다. 브라질은 ISD를 수용하지 않았다. 인도는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이 밖에도 많은 나라가 그 대열에 있다.”

- 금융노조 외환은행지부는 론스타에 대한 문제제기를 끊임없이 해 왔다. 노동계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우리가 지금까지 론스타에 대한 사실관계를 말할 수 있는 것도 외환은행지부의 노력 덕분이다. 론스타가 대주주 자격유지에 필요한 서류를 제대로 내지 않았다는 법원 판결을 이끌어 냈다. ISD 폐지를 통해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데 중요한 자산이다. 시민과 노동자도 론스타 ISD에 맞서 국민의 알권리를 계속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 앞으로 활동계획을 소개해 달라.

“국회에 2차 심리 참관이 성사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호소할 생각이다. 민변의 참관에 동의하는 국회의원들의 서명을 받아 정부에 제출할 것이다. 국회가 계속 관심을 가져 줬으면 좋겠다.”

글=연윤정 기자
사진=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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