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후 2시에서 저녁 늦게까지 서울 남영역 인근 ‘슘’에서 스타케미칼 해복투 투쟁기금 마련 후원주점 ‘연대의 밤’이 열렸다. 행사의 구호는 “굴뚝의 봄, 연대의 힘으로!”였다. 행사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스타케미칼지회가 주최한 것이 아니라 지회 해고자들의 '자주적' 단결체인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가 주최한 것이었다. 경북 구미3공단에 위치하는 스타케미칼에서는 차광호 해고자복직투쟁위 대표가 지난해 5월27일부터 지금까지 1년이 넘게 45미터 굴뚝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그리고 11명의 해고노동자들이 굴뚝이 보이는 공장 정문 앞 공터에서 천막을 치고 그와 함께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사람들은, 사회와 정치는, 언론은, 그리고 특히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도 이 투쟁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굴뚝농성이 309일을 넘기고 310일이 됐을 때 ‘세계최장기 고공농성’이라며 진보언론에서 잠시 관심을 보였을 뿐이다. 그리고 1년을 넘겼을 때 “굴뚝 위 1년 ‘슬픈 신기록’ … 최장 고공농성”이라며 조금 보도했다. 하기야 정리해고와 노조탄압에 저항해 민주노조 활동가가 목숨을 바쳐도, 취직이 되지 않아 미혼의 세 자매가 집단자살을 해도, 세상은 이들의 아픔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스타케미칼 해고자들의 투쟁에는 남다른 중요한 것이 있다. 그래서 세상이, 특히 노동운동이, 이 투쟁에 주목하고 연대할 것을 촉구한다. 우선 투쟁의 슬로건이 남다르다. “해고는 살인이다”가 아니라 “청춘을 다 바쳤다”가 그들의 구호다. “(해고자와 비해고자가) 함께 살자”가 아니라 “민주노조 사수하자”가 이들의 구호다.

구호대로라면 이 동지들은 민주노조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자본이 복직시켜 준다 하더라도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고용과 임금 같은 실리에 앞서 ‘우리들의 해방터’인 민주노조를 지키기 위해 “죽을 수는 있어도 질 수는 없다”고 외쳤던 선배 노동자들을 계승하고 있다. 이들에게 청춘을 다 바쳐 일궈 온 민주노조가 없는 고용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운동 활동가들도 왕왕 이들이 무모한 투쟁, 비현실적인 투쟁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미 폐업을 결정한 회사에 공장 재가동을 요구하고, 복직을 요구하고, 민주노조 승계를 요구하는 게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비정규직 철폐나 정리해고 철폐는 현실적인가. 겉으로 그런 구호를 내걸지만 사실은 자신이 정리해고되지 않는 것이나, 자신이 정규직이 되는 것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요구를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리해고나 비정규직 제도는 철폐되지 않았으나 완성차 공장에서 실제로 정리해고자가 복직되기도 했고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기도 했으니까.

그러면 이른바 ‘노동시장 구조개악 저지’ 투쟁은 현실적인가 비현실적인가. 독점대기업 정규직들은 이 투쟁을 자신의 사활이 걸린 일로 보지 않는다. 심한 탄압으로 중소·영세 사업장에는 민주노조가 들어서지 못해도 독점대기업 정규직에게는 민주노조가 허용됐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노동시장 구조개악이 이뤄지더라도 독점자본이 자신들에게는 함부로 대우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반면에 총파업을 하더라도 총자본이 밀어붙이는 제도개악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조합원과 나아가 활동가들까지 현실을 이처럼 몰사회적·몰역사적으로 협소하게 바라보기 때문에 노동시장 구조개악 저지 총파업이 힘 있게 조직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이 만들어 놓은 핵심노동자-주변노동자로의 분할통치 체제에 길들여진 노동운동은 투쟁을 할 수도 없고 요구를 관철할 수도 없다. 현실적이라는 이름으로 독점자본이 허용하는 틀 안에서 요구하고 투쟁하는 것으로는 사회 양극화와 노동 안에서의 양극화를 극복할 수 없다. 노동운동은 독점 대사업장 정규직 노동자들의 사적이익 보호장치로 전락하고 노동운동은 무력화된다.

노동운동이 실리를 위한 명분용으로 대의를 소비할 때 실패는 예고돼 있다. 개발독재 시대에는 노동 안에서의 분열과 조직노동자의 사적이익과 사회 대의의 괴리가 지금처럼 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이번호에서 스타케미칼 차광호 동지의 고공농성을 보도하면서 지적하고 있듯이, 산업화가 이뤄진 한국 노동자들에게도 선진국의 경우처럼 노동 안에서의 그런 분열이 이미 현실화돼 있다.

스타케미칼 노동자들의 구호인 “청춘을 다 바쳤다. 민주노조 사수하자!”는 민주노조를 사수해서 내 고용과 임금이라도 챙기자는 실리적 구호가 아니다. 민주노조를 사수해서 이 차디찬 착취와 억압의 땅을 모든 노동자와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으로 바꾸자는 대의의 구호다. 변혁을 위한 진지를 지키자는 구호다. 노동운동이 더욱 힘 있게 연대해야 하는 이유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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