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태환 전 한국노총 충주지부장이 사망한 지 꼭 10년이 흘렀다. 그는 2005년 충주지역 레미콘노조 파업에 연대하다 회사가 대체투입한 레미콘 차량에 치여 숨졌다. 김 전 지부장의 죽음은 특수고용직 투쟁에 불을 붙였다. 정규직이었지만 살아생전 비정규직을 조직하고 스스로 헌신해서 이끌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각별하다. 한국노총은 추모사업회를 설립해 매년 김 전 지부장을 기억한다. 13일에는 서울역광장에서 10주기 추모문화제가 열린다. <매일노동뉴스>가 김 전 지부장을 기억하고 현재 의미를 찾는 이들의 목소리를 3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10년 전인 2005년 6월14일은 김태환 열사가 돌아가신 날이다. 한국노총 충북지역본부 충주지부 의장이었던 김태환 열사는 레미콘노동자 노동 3권 인정과 운송단가 인상, 단체협약 쟁취를 위한 투쟁결의대회를 마치고 사조레미콘으로 이동해 투쟁을 전개하던 중 사측이 동원한 대체용역 레미콘 차량에 치여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당시 충주지역 레미콘노조들은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일체의 교섭을 거부하는 레미콘 사측에 맞서 파업에 돌입했고, 김태환 열사는 선봉에서 파업투쟁을 이끌다가 변을 당했다. 결국 열사는 노동기본권 자체가 박탈당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권익보장을 위해 싸우다 희생된 것이다.

나쁜 일자리 독버섯처럼 퍼져

비정규직 1천만명 시대다. 비정규 노동자는 1997~1998년 외환위기를 분기점으로 급속히 늘어났다. 다수의 정규직이 비정규직으로 추락했고, 경제위기가 극복된 후에도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했다. 노동자들의 고통전담 속에 비정규직은 자본의 논리에 따라 다종다양하게 분화됐다. 신종 비정규직 고용형태 중에서도 최악이 바로 특수고용이다. 아예 노동자성 자체가 부정돼 노동기본권이 박탈된 나쁜 일자리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과 점증해 온 노조 조직화도 특수고용과 간접고용으로 대표되는 비정규직 고용형태의 전반적인 하향 평준화를 막지는 못했다. 신자유주의 한국의 노동시장은 진짜 사장이 숨어 있거나 진짜 노동자가 가짜 사용자로 위장돼 있는 사기천국이다. 자본 편익 극대화 우선으로 급속하게 재편되는 과정에서 생겨나 최근까지 급증해 온 특수고용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한국 사회 정상화는 불가능하다.

주요 특수고용 비정규직 직종만 열거해도 얼마나 심각한지 단박에 알 수 있다. 학습지 교사, 보험모집인, 골프장경기보조원, 레미콘 기사, 덤프트럭 기사, 화물트럭 기사, 펌프카 기사, 대리운전 기사, 퀵서비스 기사, 영업용구난차 기사, 고소작업대차량 기사, 택배기사, 심부름 기사, 간병인, 카드모집인, 대출상담사, 채권추심인, 텔레마케터, 수도·가스검침원, 정수기방문점검원, 야쿠르트 판매배달원, 화장품 방문판매원, 아동도서 방문판매원, 객공(미싱), 케이블·방송통신 AS 기사, 학원차량 기사, 애니메이터, 방송작가, VJ(독립·외주 PD), 연극배우, 헬스·골프레슨 강사, 헤어디자이너, 관광가이드, 자동차 판매원, 의류판매 중간관리자, 재택우편택배원, 직업훈련 강사, 청소년 상담사, 신문광고 영업사원, 상조회사 영업사원 등 헤아리기도 어렵다. 지금도 여러 직종에서 특수고용 비정규직이라는 나쁜 일자리가 독버섯처럼 빠르게 번지고 있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의하면 지난해 8월 기준 특수고용 비정규직 규모는 58만여명이다. 현재 노동조합이 조직된 직종의 조직가입 대상 특수고용 노동자만 합쳐도 150만명이 훌쩍 넘기 때문에 대단히 심각한 수준으로 과소추계돼 있는 것이다. 2011년 노동부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더라도 250만명 내외로 추산되고, 최근 급증해 온 추세를 염두에 둔다면 300만명이 넘을 거라는 노동계 일각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분명한 것은 1천900만 노동자 중 1천만명에 달하는 비정규직 규모 중 3분의 1에서 4분의 1 정도가 특수고용일 정도로 비중이 증가해 왔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심각한 자본 편향 노동시장 구조 속에서 조직노동의 약세와 중앙정부의 반노동정책이 복합돼 만들어진 우울한 결과다. 법·제도 보호에서 배제된 채 노동인권 사각지대로 내몰린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급증은 한국 사회의 천민자본주의화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가 되고 있다. 상황이 심각한 만큼 중앙정부와 국회 차원에서 보다 정확한 특수고용 규모 추계와 함께 전반적인 종합대책 및 다양한 특수고용 직종별 세부대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입법적·정책적 대안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특수고용직 노동 3권부터 보장해야

우선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 3권부터 온전하게 보장해야 한다. 개인사업주로 위장된 채 헌법이 정한 노동기본권이 박탈되는 문제부터 개선하는 것이 순리다. 근본적으로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아야 마땅하겠지만, 당면해선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되는 것이 시급하다. 이미 여러 특수고용 직종에서 노동조합이 결성돼 실질적인 노사관계 당사자로 자리 잡은 만큼 변화된 현실에 부합하는 최소한의 법·제도 개선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사용종속성 중심의 특수고용 노동자성 판단지표에 치우친 법원 판례도 개선해 독일과 프랑스처럼 조직종속성과 경제종속성 지표까지 고려해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 소모적이고 불법적인 특수고용 노동조합 탄압이 김태환 열사를 비롯한 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을 가져온 직접적인 요인이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지 않고도 노동조합을 만들어 자신의 권익을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산재보험 사각지대도 해소해야 한다. 건설기계나 대리운전·퀵서비스·택배처럼 특수고용 종사자 직종에는 대단히 위험한 일들이 많다. 중대사망사고도 잦다. 따라서 노동자성이 인정되기 전에라도 산재보험 적용이 전면화돼야 마땅하다. 부실한 법·제도 때문에 일하다 다치거나 심지어 죽어도 아무 보상도 못 받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지금도 빈발하고 있다. 현재 6대 직종에 한정해 시행되고 있는 산재보험을 확대해야 한다. 그리고 독소조항으로 지목받아 온 당사자 보험료 분담과 임의탈퇴 조항은 시정하고 폐기해야 한다. 유명무실한 산재보험은 하지 않은 것만 못하고,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우롱하는 것밖에 안 된다. 산재보험 적용 실효성 제고 여부는 현재 꽉 막힌 특수고용 비정규직 문제 개선의 시금석이 되고 있다.

김태환 열사 10주기를 맞았지만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처지는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다. 오히려 심각하게 후퇴했다. 더 나은 일자리로 바뀌기는커녕 온존된 채로 다른 직종으로 번져 규모가 급증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어렵게 결성된 특수고용 노동조합들도 투쟁만으로 돌파하기 어려운 조건 속에서 정체되거나 축소됐다. 명맥만 유지하는 노동조합도 여럿이다. 노동자임이 분명하고 이미 노조가 결성돼 실제 임금과 단체협약을 체결했는데도 합법적인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덤프연대나 화물연대처럼 가장 대표적인 특수고용 노동조합이 ‘연대’를 떼고 당당한 노동조합 직함을 명패로 걸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을 비롯한 비정규직 문제가 최우선 과제로 강조되고 있는 지금도 특수고용 비정규직 문제는 논외 취급을 받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열사 정신계승은 현실의 구체적인 변화가 가시화될 때 의미가 있다. 수백만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헌법과 노동법이 실제로 인정하는 진짜 노동자로 거듭나는 날, 주기적으로 맞는 의례적인 추모를 넘어설 수 있다. 열사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산 자들의 노력이 여전히 무겁게 요구되는 나날이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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