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노사정 대표들이 제104차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서 노동시장 구조개선에 대한 현격한 입장차를 드러내며 설전을 벌였다.

노동시장 구조개선 소개, 예민한 정책은 언급 안 해

포문은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열었다. 이 장관은 10일 오전(현지 시간) ILO 총회가 열리는 스위스 제네바 유엔유럽본부에서 연설을 통해 노동시장 구조개선 정책을 소개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노사정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임금피크제 실시를 위한 취업규칙 지침 개정, 비정규직 사용기간 확대, 일반해고 가이드라인 제정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한국 특유의 호봉 중심 연공형 임금체계·장시근 근로·비효율적인 노동시장 규제 등 낡은 노동시장 구조가 청년 취업난과 좋은 일자리 부족, 노동시장 격차 심화를 가중시키고 있다”며 “노동시장을 개혁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성장하는 일터,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가 줄어드는 노동시장을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이어 “대기업 이익의 일정 부분을 중소기업 근로자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사용하도록 하고, 불공정거래 관행을 근절해 지속가능한 성장체계를 공고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능력과 성과 중심 채용·보상·승진시스템 구축 △일·학습 병행제 추진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와 시간제 일자리 확산 △실업급여 지급기간 연장 같은 사회안전망 확충 정책도 설명했다.

“한국 정부·사용자, 노조 탄압하고 쉬운 해고 추진”

같은날 오전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은 한국 정부의 핵심정책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며 정부와 재계를 강하게 비난했다. 김 위원장은 “ILO 설립 100주년이 다가오는 이 중요한 시점에도 한국의 정부와 사용자는 노조를 진정한 파트너가 아닌 노동통제와 탄압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그는 “기획재정부는 저성과자 해고 등 해고요건을 완화하려 하고, 노동부는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해고와 임금삭감을 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며 노조를 압박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또 정부의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과 파견업종 확대 정책을 거론하면서 “비정규직을 양산하려 하고, 고령자 고용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특히 전교조에 대한 노조아님 통보와 단체협약 시정명령 같은 노동부 조치가 ILO 권고와 협약에 어긋난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의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수차례에 걸친 ILO의 권고를 무시하면서 교사의 노동기본권을 전면부인하고 있다”며 “정부가 개입해 단체협약을 후퇴시키려는 것은 명백한 결사의 자유 원칙 위반”이라고 말했다.

“노조가 조합원 이익만 대변”

이날 오후에 연설을 한 박병원 한국경총 회장은 한국 노동계를 비판했다. 박 회장은 “청년 일자리 문제 해소를 위한 사회적 대화가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조의 협력이 절실하다”며 “노조가 이미 고용돼 있는 근로자 조합원의 이익만을 도모하고 풀타임 정규직의 이익만 대변하는 역할만 한다면 다양한 방식으로 고용을 늘리는 과정에서 (기업들이)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ILO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사정의 역할과 바람직한 변화 방향에 대해 다뤄 주기를 바란다”며 “노조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에 대해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ILO가 새로운 사업을 시행할 때 고용창출에 미칠 영향을 사전에 검토하는 ‘고용영향 평가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한편 민주노총은 이날 논평을 내고 “이기권 장관이 ILO 권고와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일언반구 반성도 없이 모호한 말로 노동시장 구조개악 정책을 홍보하며 국제사회를 우롱했다”고 혹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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