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원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산업혁명 후 노동운동 역사는 노동시간단축 투쟁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노동절은 하루 8시간 노동쟁취의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하루 8시간 노동하고, 하루 8시간 가족과 보내고, 하루 8시간 달콤한 휴식을 취하자"는 노동자들의 요구는 결코 과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노동법은 하루 8시간 1주 40시간을 일하면 최저생활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우리 몸은 스위치만 켜면 돌아가는 기계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8시간 사이에 1시간은 쉴 수 있는 호사를 부여했다. 직장에서 1시간 더 머물게 됐지만 우리에겐 주말이 있기에 용서해야 할 것 같다. 내 초보 노동상식은 여기까지다.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에 있다 보면 많은 노동자와 조합원을 만나게 된다. 내 담당이 교육공무직노조다 보니 학교에서 일하는 비정규 노동자인 경우가 많다. 그날도 나이 지긋한 어르신과 내 나이 조금 넘는 분이 함께 들어왔다. 사연을 들어보니 학교에서 야간과 주말을 이용해 당직근무를 서는 분들이었다. 내어 보이는 계약서를 꼼꼼히 보며 들려주는 설명을 듣자니 내 귀가 의심스럽고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저녁에 학교 교문이 닫힐 쯤 이분들은 그제야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그리고 밤새 근무를 서고 다음날 아침 학교 교문이 열릴 때쯤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한다. 어림잡아도 16시간 넘게 학교에서 야간당직을 서는 것이다. 주말은 한술 더 떠서 금요일 오후에 들어가서 월요일 아침까지 무려 64시간 롱런을 뛰고 당일 아침에나 가족과 상봉할 수 있다. 128시간. 이것이 실로 한 주에 이분들이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다. 노동강도의 경중을 떠나 홀로 야간과 주말을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이분들에게 학교는 35시간만을 근로시간으로 허락하고 있다. 참으로 놀랍기 그지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나치게 많은 휴게시간을 부여한 까닭이다. 4시간에 30분만 주어도 될 휴게시간을 법이 규정한 6배를 부여한 것이다. 산업혁명 시대에는 상상도 못했을 혁명에 가까운 발상의 전환이 이뤄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교육청과의 교섭에서도 "휴게시간을 줄이고 노동시간을 늘리라"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진다고 한다. 이는 명백한 신종 노동착취다.

내가 만난 분들은 일하는 학교에서 집까지 거리가 꽤 떨어져 있어 명목상 11시간이 넘는 휴게시간이 있어도 집에 다녀올 수 없는 처지였다. 물론 집이 가깝다고 순진하게 집에 머물다 온다면 그곳에서 오래 일하기란 포기했다고 봐야겠지만. 노후보장제도가 열악한 우리 사회가 값싼 인건비로 어르신들의 등골을 빼먹고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 법은 지나치게 일을 많이 시키거나 휴게시간 없이 일만 시키는 것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데 급급했다. 사용자들은 이제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휴게시간을 지나치게 부여하는 방식으로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다. 사업장에 머무는 시간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근로한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 노동자가 사업장에 머무는 이유는 사용자가 노동력 제공을 원했기 때문이다. 일터를 떠나 가족과 보내고 싶은 마음,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가치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