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최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과 관련해 유급휴가를 권고하고 실업급여 수급기간을 연기하는 대책을 내놓은 가운데 보다 근본적인 보호대책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잇따르고 있다. 예컨대 질병휴가제를 신설하거나 대응 매뉴얼을 사전에 확보해 신종질환이 발생·확산할 때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채비를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외국에선 질병휴가, 우리나라는 '사업주 선의' 호소

9일 양대 노총은 성명을 내고 “질병유급휴가 제도를 도입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는 병가에 대한 규정이 별도로 없다. 대신 취업규칙 혹은 단체협약에서 유급 또는 무급으로 병가를 보장하는 사업장은 있다. 최근 노동부가 지방노동관서에 내려보낸 ‘메르스 관련 업무처리 지침’도 메르스 의심자나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 취업규칙과 단협을 준수하거나 관련 규정이 없더라도 가급적 유급휴가를 주라고 권고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메르스 사태가 아니라도 취업규칙이나 단협에 휴가 규정이 없는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이 장기간 치료를 받으려면 남은 연차를 소진하거나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

현재 질병에 걸린 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규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45조(질병자의 근로 금지·제한)와 동법 시행규칙 제116조(질병자의 근로금지)에서 전염병·정신질환, 심장·신장·폐질환에 걸린 노동자의 노동을 금지한 뒤, 회복하면 복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사용자들이 노동자를 해고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여지가 있어 노동부가 관련 규정을 매우 엄격하게 적용하는 실정이다.

노동계는 지난해 4월 한정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를 요구하고 있다. 개정안은 노동자가 업무상 외의 일로 다치거나 질병에 걸려도 최대 30일의 병가를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을 포함해 145개 국가에서 시행 중인 제도다.

한정애 의원은 “우리나라에서 질병에 걸린 노동자가 치료를 받으려면 사업주의 선의나 단협에 기댈 수밖에 없다”며 “근기법 개정안을 시급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노동부는 한 의원이 발의한 근기법 개정안에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정지원 근로기준정책관은 “질병에 걸린 근로자는 보호해야 한다”면서도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 노사정 논의를 거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메르스 사태, 보이지 않는 노동부

메르스 사태처럼 국가적 차원의 질환이 발생했을 때 산업현장 관리를 비롯한 노동부의 개입력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메르스 사태 대응을 총괄하고는 있지만 사업장 노동자들이 질환에 걸렸을 때에는 감염확대 예방조치를 노동부가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병원 노동자들이 메르스 감염 위험에 노출됐는데도 노동부는 별다른 대책이나 입장을 내놓은 적이 없다. 수천명이 일하는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서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현장 노동자들의 감염 여부 확인이나 지역사회 감염 방지와 관련해서도 노동부는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기권 장관은 8일 기자간담회에서 쌍용차 평택공장 메르스 대책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부처에서 개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이달 5일 각 기업에 메르스 대응지침을 보냈다. 2009년 신종플루가 발생했을 때에도 대응지침을 내려보냈다. 하지만 대부분 사후 일회성 조치에 그쳤다.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은 "보건복지부는 작업장 노동자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며 "노동부가 평소에 질환 예방·확산 방지계획을 세우고 노동자 보호대책을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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