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가 내년 최저임금 요구안으로 시급 1만원을 내걸었다. 주 40시간(월 209시간) 기준으로 월급 209만원이다. 올해 최저임금은 5천580원이다. 최저임금 언저리에서 한 달 100만원 남짓으로 살아가는 노동자들은 “숨만 쉬고 살아야 한다”고 하소연한다. <매일노동뉴스>가 최저임금으로 살아가는 이웃들을 만나 가계부를 들여다봤다.<편집자>

 

▲ 정기훈 기자


“기자님은 월급 30만원 받아서 살 수 있으세요? 이 돈으로 집세 내고, 세금 내고, 휴대폰 요금 내고, 먹고, 입고, 자고…. 그럴 수 있으시겠어요?”

1년에 최소 두 달을 월급 30만원으로 살아가는 노동자가 있다. 서울 상계동의 한 초등학교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용순옥(48·사진)씨 얘기다. 용씨는 지난해 8월 30만6천160원의 임금을 받았다. 방학이 끼어 있는 달은 방학일수만큼 급여가 까지기 때문이다. 용씨를 고용한 교육청은 “무노동 무임금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돈으로 생계를 꾸려야 하는 당사자들은 말 그대로 억장이 무너진다.

이달 3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용씨는 “월급쟁이라면 당연한 꿈들, 예를 들면 ‘김치냉장고를 사야지’, ‘외식을 해야지’하는 식의 희망을 품어 본 적이 없다”며 “미래가 없다고 느껴지고, 이런 세상이 이해가 안 된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학교비정규직 3년 만에 제 발로 노조 찾아간 사연

용씨는 교무실무사다. 예전에는 교무보조로 불렸던 학교비정규직이다. 전입생·전출생 학적서류를 정리하거나 각종 행정문서를 수발하고, 학부모 민원전화를 받거나 학교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일이 그의 몫이다. 노조가 생긴 뒤 많이 없어지긴 했지만 차 접대나 다과 접대가 업무로 떨어지기도 한다.

“딸아이 낳기 전에는 백화점 본사 매입본부에서 일했어요. 그러다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쯤 퇴사했죠. 당시 아이 학교에서 자모회 활동을 했는데, 그 인연으로 학교에서 일을 하게 됐습니다. 막연히 학교에서 일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학교에 대한 로망 같은 것도 있었고….”

로망이 깨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예전에 어떤 교장선생님은 당뇨가 있어서 급식실에서 나오는 흰쌀밥이나 반찬을 드실 수가 없었어요. 꼬박 3년을 제가 직접 현미밥을 지어 드렸습니다. 매일 급식실에 부탁해서 조리되지 않은 야채를 따로 받아서 가져다 드렸고요. 밥 지으러 학교에 나온 것도 아니고 매일매일 처리해야 할 업무도 있는데…. 그 일을 겪고 나서 노조를 찾아갔습니다.”

에피소드는 끝이 없었다. 이른바 ‘떡 셔틀’도 그런 일 중 하나다. 결혼이나 돌잔치 같은 경조사를 치른 교직원들이 답례의 의미로 떡을 주문해 나눠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시루째 배달된 뜨거운 떡을 자르고, 담고, 나르는 일은 비정규직의 몫으로 전가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하지 않던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현장에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은 권위주의의 단면이다.
 

 


방학이 없는 달도 40만원 적자인생

용씨는 오랜 별거 끝에 올해 1월 남편과 이혼했다. 현재는 학업을 중단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딸과 둘이 산다. 이혼하기 전 사업에 실패한 남편 때문에 용씨 앞으로 6천만원의 빚이 남았다. 법원에서 개인회생 결정을 받고 매달 40만원씩 상환하는 중이다.<가계부 참조>

방학이 없는 달에는 160만원 수준의 월급을 받는다. 한 달 지출 가운데 개인회생 상환비용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 다음이 매달 35만원씩 내는 월세다. 보험·저축·문화비용은 ‘0원’이다. 이렇게 살아도 40만원 적자인생이다.

“개인회생 때문에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수가 없어요. 정말 급한 돈이 필요할 땐 대부업체에서 빌려야 하는데 이자율이 35%나 돼요. 대부업체에 가기 싫으면 누군가 신용보증을 서 줘야 합니다. 요즘 세상에 누가 빚보증을 서 주나요.”

그래도 빚 없이는 생계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방학이 있는 달은 더더욱 그렇다.

“그런 달은 월세도 못 내죠. 전기세·가스비가 아까워서 맨몸으로 집을 나와 하염없이 걷거나, 우리 같은 비정규직의 유일한 쉼터인 노조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엄마는 학교로, 딸은 아르바이트로 뿔뿔이 흩어져요. 두 모녀가 외식 한번 해 본 적이 없네요.”

“꿈이 없다, 내일이 없다”

용씨의 연봉을 12개월로 나눈 월평균 임금은 114만5천894원이다. 이를 시급(월 209시간 기준)으로 환산하면 5천482원이다. 올해 법정 최저임금인 5천580원보다 적다. 중간에 방학이 있어 교육청이 최저임금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비난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용씨 같은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이 나라에서 정한 생계비의 마지노선에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경조사는 전혀 못 챙기죠. 사람 도리를 못하고 사는 거예요. 남편과 별거한 뒤에는 친구들도 못 만났어요. 매번 맨입으로 얻어먹고 올 수는 없잖아요. 어쩌다 한 번씩 절에 가서 기도를 하고 오는데요. 초라도 하나 올리려면 1만원은 있어야 합니다. 소원 빌러 가면서 빈손으로 갈 수 없잖아요. 과일이라도 사야 하는데 그것도 돈이에요.”

최저임금위원회가 이달 4일 제3차 전원회의를 열고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한 본격적인 심의에 들어갔다. 노동자위원들은 ‘최저임금 1만원으로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용씨와 같은 저임금 노동자들이 생계의 압박으로 질식하지 않도록 숨통을 틔워 주자는 것이다.

“최저임금이 1만원으로 올라 봤자 월급으로 환산하면 209만원이에요. 제 가계부를 보면 아시겠지만 이미 그만큼 지출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업체에 손을 내밀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만…. 그래도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되면 적어도 대부업체를 찾아가는 일은 없어지겠죠.”

최저임금이 1만원으로 오르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뭐냐는 흔한 질문에 용씨는 고개를 저었다. 먹고 싶은 것도, 사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일도 없다고 했다. 그저 “꿈이 없으니 미래가 없다”는 얘기를 덤덤하게 털어놓았다. 누가 그에게서 내일을 빼앗아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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