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지난해 12월 민주노총 직선제로 한상균 위원장 지도부가 들어선 지 6개월이 지나간다. 직선제를 만병통치약처럼 밀어붙였던 세력이 내세웠던 논리인 직접민주주의를 통한 조합원 참여와 조직력 강화가 조금이라도 이뤄졌는가. 시간이 모자랐다면 박근혜 정권처럼 앞으로 2년 반 남은 임기 동안 선거 때 신열에 들떠 공언한 바가 이뤄지겠는가.

선거라는 제도 자체가 본질적으로 간접, 즉 대의(representation)민주주의 성격을 띰에도 직선제의 '직'자가 같다고 이를 직접민주주의라 우긴 무지함은, 전체 국민을 투표권자로 해서 뽑힌 대통령에게 국회도 갖고 있는 입법권이 대통령한텐 왜 없냐고 징징대는 박근혜 정권의 무지함과 별 다를 바 없다.

자신이 정부 수반으로 최종 책임자임에도 "잘못한 정부는 반성하라. 나를 뽑은 국민은 나의 권한에 도전 말라. 사사건건 발목 잡는 국회는 딴지 말고 협력하라"는 교시 하달에 여념 없는 유체이탈 박근혜 대통령처럼 민주노총 지도부도 직접민주주의 강화에 실패한 것은 '간선제'로 뽑힌 대의원들 때문이라며 다음 선거에서는 지도부 직선제로는 부족하고 대의원도 '직선제'로 뽑아야 한다고 유체이탈 주장을 펼쳐 놓을 게 확실해 보인다. 대의원 직선제도 무용함이 드러나면 그때는 민주노총 조합원도 직선제로 뽑자는 황당한 주장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대통령을 국민 직선제로 뽑는다고 한국의 민주주의가 강화되는 것이 아님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사례가 아니라도 누구나 경험하는 상식이다. 일본 아베 수상과 독일 메르켈 수상, 영국 카메론 수상은 국회에서 '간선제'로 뽑혔지만 이들 나라의 민주주의가 한국보다 못한 건 없다. 직선제 하면 민주주의가 강화된다는 논리는 아이가 크면 어른이 된다는 말보다 의미 없는 주장이자, "이 약 먹고 전봇대에 오줌 눠 봐, 전봇대가 그냥 자빠져"라고 나발 부는 시장통 상술과 다를 게 없다.

민주노총보다 조합원수는 훨씬 많지만 대의원수는 훨씬 적은 북유럽 국가들의 노총 위원장이 대의원 ‘간선제’로 뽑혀 민주노총 위원장보다 민주성과 현장성이 떨어지는가. 모두 대의원 간선제로 뽑히는 노동운동 강국의 산별노조 지도부가 모두 직선제로 뽑히는 한국의 산별노조 지도부보다 조직 헌신성과 조합원 충성도가 떨어지는가.

선거가 끝난 지 6개월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평가회 하나 열린 게 없고, 평가서 하나 나온 게 없다. 선거 결과 공개의 투명성은 최악이다. 엑셀 파일 몇 줄이 전부다. 모든 정보는 민주노총 일부에 의해 독점되고 통제되고 있다. 한 표를 던진 조합원들이 자기 표가 제대로 개표에 반영됐는지 파악할 길이 없다. 내가 속한 사업장 혹은 선거구, 내가 조합비를 내는 산업별 연맹이나 노조에선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정보를 독점하는 자리에 있는 일부 관료들 빼곤 도통 알 길 없다. 정부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그랬으면 부실·부정 시비를 걸었을 텐데, 자기 일이라 쉬쉬한다. 위선이자 자기기만이다.

이젠 조합원들을 파업 총투표로 내몬다. 총투표 결과 공개도 불투명하긴 마찬가지다. 그래서일까. 파업 참가자 통계도 허위와 과장이 난무한다. 사정이 이러니 총파업 평가는 애초에 불가능하고, 할 필요도 없다. 다음 총파업 일정만 잡으면 된다. 대의원한테 물어볼 필요도 없다. 조합원 사정을 고려할 필요도 없다. 직선제로 당선된 지도부가 알아서 하면 된다.

뭘 하든 조합원 직선제와 총투표를 통하면 된다던 사람들이 최근 공무원연금-국민연금 합의에 대한 전국공무원노조의 조합원 총투표 논란에는 입을 다문다. 민주노총이 어떻게 정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냐고 입에 거품 물던 사람들이 지도부가 됐는데도, 재정 자립화 계획은 제시된 게 없다. 오히려 더 받았으면 하는 이들도 있는 것 같다.

한국노총과의 연대도 그렇다. 어용노조라며 한국노총과 연대하자는 목소리를 폄하하던 자들이 이제는 노동계급 연대 운운하며 한국노총과 산하조직을 들락거린다. 사회적 대화는 또 어떤가. 조선업종 노조에서 터져 나오는 노사정 3자 사회적 대화 요구를 누구도 비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적 대화를 둘러싼 조건과 환경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보다 나빠졌는데도, 조선업종의 사회적 대화 요구를 신자유주의 들러리라 비하하지 않는다. 박근혜 수준의 ‘유체이탈’이자, ‘건망증’이자, ‘타자화’라 아니할 수 없다.

민주노총 직선제를 평가할 때가 됐다. 평가를 하려니 선거 결과를 투명하게 보여 주는 정보가 필요하다. 정보공개 수준에서 민주노총은 박근혜 정부보다 한참 후진적이다. 그런데 입만 열면 조합원이고 현장이다.

직선제를 위한 직선제는 한 번이면 족하다. 민주주의의 기초는 투명한 정보다. 조합원 직접민주주의란 조합원이 웬만한 정보는 직접 볼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선거로 왕을 뽑는 게 아니다. 민주노총은 선거 결과 데이터를 선제적으로 투명하게 공개하라.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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