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태환 전 한국노총 충주지부장이 사망한 지 꼭 10년이 흘렀다. 그는 2005년 충주지역 레미콘노조 파업에 연대하다 회사가 대체투입한 레미콘 차량에 치여 숨졌다. 김 전 지부장의 죽음은 특수고용직 투쟁에 불을 붙였다. 정규직이었지만 살아생전 비정규직을 조직하고 스스로 헌신해서 이끌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각별하다. 한국노총은 추모사업회를 설립해 매년 김 전 지부장을 기억한다. 13일에는 서울역광장에서 10주기 추모문화제가 열린다. <매일노동뉴스>가 김 전 지부장을 기억하고 현재 의미를 찾는 이들의 목소리를 3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김동만(사진 왼쪽) 한국노총 위원장과 고 김태환 전 한국노총 충주지부장.
시간의 무게는 강산도 바꾼다고 한다. 인간의 기억도 마찬가지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기억은 우리 삶 속에 침식하지만 퇴적하지 못하고 풍화돼 결국 선택적으로 남게 된다. 2005년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 3권 쟁취를 위해 싸우다 숨진 노동운동가가 있었다. 고 김태환 전 한국노총 충주지부장. 10년이 지난 오늘, 그와 그가 외쳤던 이야기들을 기억하기 위해 가상의 대담 자리를 만들었다. 대담은 지난 5일 ‘김태환 열사 10주기 추모문화제’ 준비팀과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의 인터뷰, 그리고 2005년 6월 김 전 지부장의 발언과 기록을 재구성한 것이다. 김동만 위원장은 2008년부터 김태환 열사 추모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동만 : 지면으로 김태환 열사를 만난다는 것이 어색하긴 합니다. 오늘 대담을 통해 열사에 대한 기억이 다시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 잡고, 비정규직 문제를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김태환 : 먼저 감사부터 드려야겠네요. 매년 저를 기억해 주시고, 비정규 노동자들을 위한 투쟁을 다짐하는 자리를 마련해 주신 김 위원장께 감사드립니다.

김동만 : 김 지부장과 저의 첫 만남은 2005년 5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비정규직법 개정을 앞두고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을 할 때인 걸로 기억합니다. 충주에서 올라오셔서 처음 인사를 나눴지요. 당시 노동운동에 대한 의지가 상당히 강한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김태환 : 노동운동의 의지는 노동조합을 하는 모든 분이 갖고 계시겠죠. 노동조합의 가장 기본은 소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쉬운 것은 2005년 5월에 충주지부 홈페이지를 개통하고 더 많은 소통을 하고자 했는데, 두 달도 안 돼 그만….(그는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대부분의 글에 답글을 썼다)

김동만 : 그랬군요. 10년이 지나다 보니 당시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2005년 6월 충주지역 레미콘 노동자들은 일체의 교섭을 거부하는 사측에 맞서 노동 3권 보장과 운송단가 인상,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김 지부장이 선봉에서 파업투쟁을 진행했지요. 그러다 사측에서 동원한 대체인력 차량에 치이게 됐고 그 자리에서 그만 숨을 거두셨습니다.

김태환 : 특수고용직은 사용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임금을 받고 지시를 받고 일하는 노동자일 뿐입니다. 당시 저에게는 노동자 권리가 인정받는 사회에 대한 간절한 바람이 있었습니다.(2005년 6월14일 발언)

김동만 : 그때 사측과 정권은 김 지부장의 죽음을 단순 사고로 몰아가려고 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사고 당시 상황을 한국노총이 촬영했습니다. 당시 제가 맡고 있던 직책이 대외협력본부장이었습니다. 끔찍한 장면이 담긴 테이프를 들고 국회와 시민·사회단체를 찾아다니면서 울분을 쏟아 낸 기억이 납니다.

김태환 : 그날 제가 집회에서 외쳤던 구호와 발언이 아직도 또렷이 생각나네요. "우리 충북지역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현안임을 직시하고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하자"고 얘기했습니다.

김동만 : 역설적이게도 그 발언은 김 지부장의 죽음으로 현실화됐습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문제를 다시 전국적인 쟁점으로 만드는 촉매 역할을 했지요. 그 뒤로 한국노총은 정부를 상대로 전면적인 투쟁에 들어갔고, 한국노총 사상 가장 뜨거운 여름을 만들었습니다. 그해 7월7일 서울 광화문광장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조합원뿐 아니라 시민·사회단체의 분노의 함성으로 가득 메워졌습니다. 한국노총이 그처럼 광범위한 사회적 연대를 만들어 낸 것은 2005년이 처음이었습니다.

김태환 :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쓴 <당신의 정의>라는 시로 정의를 얘기하고 싶어요. ‘당신의 정신이 살아 숨쉬기에 우리의 투쟁은 멈출 수 없고 세상의 정의가 서지 않는다면 차라리 이곳에서 모든 것을 묻으리라. 노동자를 업신여기는 자들의 말로가 어떤지를 반드시 보여 주리라.’

김동만 :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정의는 미완입니다. 여전히 대한민국의 비정규직들은 차별과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때보다도 상황이 열악해졌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김태환 : 가슴 아픈 일입니다. 당시 저와 함께 투쟁하던 김동환 대흥레미콘지부장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세월만 보냈지 나아진 것이 하나도 없다, 안 한 것만 못하다”고 하더군요. 이 말이 저를 더욱 슬프게 만들었습니다. 전태일 열사의 말씀을 빌리자면 ‘결국 나의 죽음은 헛된 것이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노동자의 단결이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정규 노동자들을 조직화해야 합니다. 정규 노동자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지요.

김동만 : 맞는 말씀입니다. 지난 노사정 협상의 걸림돌 중 하나가 바로 비정규직 문제였습니다. 정부와 사용자가 ‘영원한 비정규직’을 만드는 정책을 내놓는데, 어떻게 노동조합이 동의할 수 있겠습니까. 정부의 잘못된 비정규직 정책에는 단호하게 맞설 것입니다. 노동조합 역시 비정규직 문제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시혜적인 입장을 가지고 다가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정부 정책과 다를 바 없지요. 조직화가 안 되면 근본적인 문제를 풀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조직화에 정규직 노동조합이 함께해야 합니다.

김태환 : 1천만 장그래의 눈물을 닦아 주는 활동을 펼치겠다는 김동만 위원장의 말씀에 감사드리고, 기대도 갖고 있습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공장과 지역의 벽을 넘어 하나 되는 노동자를 만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김동만 : 김 지부장의 바람처럼 꼭 그렇게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산 자의 노력과 죽은 자의 염원이 함께한다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짧은 대화가 아쉽지만 아무쪼록 편하게 계시길 바라고, 한국의 노동운동이 옳은 길로 갈 수 있도록 기원해 주시길 바랍니다.
 

[약력] 고 김태환 전 충주지부장

1992년 수안보 파크호텔 입사
수안보 파크호텔노조 설립 및 노조위원장 역임
1999년 한국노총 충북지역본부 충주지역지부 의장
2001년 전국관광노련 부위원장
2005년 6월14일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 3권 보장 및 비정규 노동자 처우개선을 위한 투쟁 현장에서 산화
2005년 12월 전태일 노동자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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