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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일본화, 노동운동은 다를 수 있을까
▲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한국경제의 일본화가 이슈다. 잃어버린 20년으로도 불리는 일본의 장기침체 초기 상황과 한국경제의 최근 움직임이 비슷하다는 주장이다. 일본은 지난 20년간 실질 순소득이 연평균 0.4% 증가(OECD 평균은 2.6%)에 불과했고, 노동가능 인구도 1995년부터 계속 줄고 있다. 저성장·고령화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같은 기간 청년실업·노인복지·소득격차·혐오범죄 등 사회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됐고, 민주당이 몰락하고 자민당 극우세력이 세를 확장하는 정치적 보수화도 공고해졌다.

한국경제가 일본을 닮아 가고 있다고 진단하는 근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구조적인 저성장과 인구감소다. 올해 3% 성장률이 무너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단지 올해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1~2% 성장이 이어질 것으로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단지 수출경기 변화 같은 단기적 변수 때문만은 아니다. 생산에 투자되는 자본과 노동생산성 자체가 지속적으로 줄고 있는 것이 문제다. 98년 이후 고정자산스톡 증가율이 꾸준하게 줄어들어 현재는 80년대의 절반 수준에 불과해졌다. 노동생산성 증가율 역시 80년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부동산·주식시장 거품 붕괴로 시작됐지만 일본의 20년 장기불황의 핵심 원인이 투자와 노동생산성 증가율 하락을 반전시키지 못한 것에 있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크다.

인구감소는 지난 10년간 세계 꼴찌 수준을 기록한 출산율만 봐도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인구감소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충분한 노동생산성이 담보되지 않는 이상 인구부양을 위해 사회적 부의 더 큰 부분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 많은 부가 생산되며 복지가 늘어나면 상관없지만 사회적 부를 생산하는 능력이 떨어지며 고령인구에 대한 분배를 늘리게 되면 세대 간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생산을 위한 나라 전체의 투자에도 영향을 받는다. 일본과 유럽 국가들이 연금 문제로 사회적 갈등을 겪는 것이 대표적이다.

한국경제의 저성장 고령화에 대해 박근혜 정부가 몇 년간 내놓은 정책은 간단하다. 임금피크제·성과급 확대 등으로 고령노동자 임금을 낮춰 기업이 더 오랫동안 노동자를 쓸 수 있도록 하고, 단시간근로 확대,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등으로 기업이 더 쉽게 저임금 노동자를 쓸 수 있도록 하며, 부족한 노동력은 아예 해외에서 데려올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역시 정부는 상식적 해결책보다는 기업들의 단기적 이해만을 챙겼다. 보육과 교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높여 출산율을 높이고, 기업들의 생산적 투자와 저임금 문제 해결로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식의 ‘상식적’ 해결책 대신 철저하게 기업들의 단기적 이해만 고려한 것이다.

기업들이 노동력을 더 싸고 편하게 이용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해결책이 될 수 있으면 그래도 낫겠지만, 일본 사례를 봐도 이는 전혀 사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난 20년간 일본은 파견법을 확대하고, 임금체계에 성과급 부분을 확대하며, 평생고용 대신 구조조정을 늘렸지만 결코 저성장·고령화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최근에는 아베노믹스라는 이름으로 파격적인 재정·통화 정책까지 썼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경제정책에서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한 아베 정부는 사회적 불만을 동아시아에서의 군사적 긴장감 확대로 완화해 보려고 갖가지 무리수를 두고 있다.

그렇다면 저성장·고령화가 예상되는 시기에 노동운동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역시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을 것 같다. 일본 노동운동은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되기 직전에 진보적 노동운동을 지향하던 ‘총평’이 해산되고, 실리주의 노동운동 편향의 ‘렌고’로 재편되는 격변을 겪었다. 대기업 중심 기업별노조 운동, 경제적 실리주의 경향이 더 강화된 것이다. 그 결과 장기불황 국면에서 노동운동은 사회적 발언력을 잃었다. 기업별로 실리를 챙기거나, 기득권을 보호하는 것 이상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불황이 심해지면서 이조차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이 오랫동안 주장해 왔던 초기업적 노조, 사회운동적 노조, 비정규직에게 노조할 권리를 줄 수 있는 노조, 계급을 대표하는 요구와 투쟁을 만드는 노조가 절실하다. 경제의 일본화만이 아니라 노동운동의 일본화 역시 현재 진행 중이란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한지원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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